입력 : 2022.12.23 18:45
신체 등 소재로 삼아 과감하고 강렬한 화면 구성의 회화


“여성의 욕망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수치심이 들다니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에 부끄러움이 들 수 있던가요?”
입술과 입술이,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다. 헬렌 비어드(Helen Beard·51)는 신체, 그중에서도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소재로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회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화려한 원색을 입은 이들 신체는 비어드의 캔버스 위에서 뒤엉키고 뒤섞인다. 그의 화면에서 여성들은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이지 않다. 여성 스스로 신체에 권력을 부여하고 능동적이며 자주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그의 작업을 보고 누군가는 과도하게 선정적이고 불필요하게 노골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비어드는 오히려 그들에게 되묻는다. 신체와 행위에 대해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을 두고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왜곡된 시선이 아니냐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논하는 것은 금기시하면서 정작 섹스에 관해서는 남성 중심적인 시선에 한정되는 매스 미디어와 이를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대중에게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데미안 허스트가 런던에 직접 차린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Newport Street Gallery)를 통해 미술계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우연히 비어드의 작품을 보게 된 허스트가 첫눈에 반해 자신의 갤러리에서 열리는 그룹전 ‘트루 컬러스(True Colours)’에 비어드의 그림을 내건 것이다. 당시 허스트는 비어드 작품의 독창적인 이미지와 색감에 매료됐다고 밝힌 바 있다.


비어드가 암스테르담 동시대미술 갤러리 리플렉스(Reflex)에서 개인전 ‘The Tulips Are Too Excitable, It Is Winter Here’을 내년 2월 23일까지 가진다. 전시 타이틀에서의 ‘튤립’처럼 한송이의 찬란하며 도발적인 꽃을 연상하는 듯한 압도적인 컬러의 향연이 펼쳐진다. 비어드 고유의 역동적이면서 세밀한 색감과 과감한 화면 구성이 더욱 고조에 이른 회화와 나무 패널 작업 등 신작 30여 점을 한데 선보이는 자리로,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한층 더 완숙해진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림 그리는 것만큼 자신의 반려견 베들링턴 테리어와 함께 걷는 것을 즐긴다는 비어드에게 그의 예술 세계에 관해 몇 가지를 물었다. 현재 작가는 영국 브라이턴에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리플렉스 암스테르담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에서 신작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 작업과 비교해 신작이 지닌 특징은 무엇인가.
“이전 작품들보다 조금 컬러가 어두워진 경향이 있다. 작업 당시 사귀던 이와의 관계가 끝자락에 있어서인지 그림을 그릴 때 지난 시간들에 대한 성찰과 추억에 잠겨 있어 그런 듯하다. 그러나 오히려 톤이 더욱 뚜렷해지고 거의 네온에 가까울 만큼 밝은 컬러로 나온 그림들도 많다. 정작 나는 슬프고 우울했음에도 불구하고 색이 그렇게 나온 것이다.”
─에로티시즘과 섹슈얼리티가 작품에 어떻게 영감을 주게 됐나. 이들을 예술적 소재로 끌어들이게 된 배경은.
“나는 여성의 욕망과 니즈를 긍정적인 방향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수많은 여성들의 건강하고도 즐거운 섹스 라이프를 나의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형상과 색으로 에로티시즘과 섹슈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혹자는 이를 두고 선정적이고 외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나.
“여성의 욕망과 섹슈얼리티를 대변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섹스라이프에 있어서 수치심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인데, 어찌 이에 눈살이 찌푸려질 수 있나.”
─작품이 형형색색의 화려한 컬러로 이뤄지는데, 작업 세계에서 색이 의미하는 바는.
“실제로 나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컬러인데, 감정과 예술적 감흥을 묘사하는 방법으로써 선명한 색을 사용해왔다. 화면 속 색들 대부분 내가 그 순간 직관적이고 즉흥적으로 택한 것이다. 학교를 다닐 때도 교수님들이 언제나 나를 ‘컬러리스트’라고 부를 만큼 색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지녔던 것 같다.”

─작품에서 인물들이 다양한 외형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특정 모델을 따로 쓰거나 하지는 않고, 주로 사진 등을 레퍼런스로 삼는다. 그렇다고 참고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닌, 그저 작업의 시작점이 돼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화면 속 인물은 순간순간 변모하고 변화한다.”

─‘여성’을 예술적 소재로 삼고 있다. 가장 영감을 주는 작가가 있다면.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를 좋아한다. 유년기부터 엄마로서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 전체를 예술적 화두로 삼았던 그의 작업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곤 한다.”
─신년에 예정된 전시나 계획은.
“일단 지금 리플렉스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전시가 내년 2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외에도 런던에 위치한 갤러리 유닛 런던(Unit London)과 함께 목판화 작업을 진행 중이며, 내년 4월 열리는 엑스포 시카고(EXPO CHICAGO)에 작품을 출품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