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적 상상력으로 감각하는 왠지 모를 그리움… 유예림 ‘조상의 지혜’展

입력 : 2022.12.16 17:50

‘허구적 그리움’ 재해석한 회화, 오브제 등 선봬
내년 1월 28일까지 갤러리기체

Ancestral Wisdom(조상의 지혜), 2022, Oil on canvas, 227.3x181.8cm. /윤다함 기자
Ancestral Wisdom(조상의 지혜), 2022, Oil on canvas, 227.3x181.8cm. /윤다함 기자
 
“오래된 사물이나 공간을 마주할 때면 그걸 손으로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손을 대고 있노라면 그의 시간성이, 정신성이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기도, 흥분되기도 하죠. 오래된 물건이 뿜어내는 이러한 기이한 감각을 제 회화에 평평하게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유예림(28)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장소, 날씨, 사람, 감정 등 허구적 향수를 그려낸다. 어떠한 사물 일부를 클로즈업해 보여주거나 특정할 수 없는 어느 장소나 풍경을 담아내는 식인데, 일견 지극히 구체적이며 내러티브적 성격을 띠는 것 같지만 내재된 서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감각하고 싶어 하는 회화적 상상력을 유예림의 독특한 조형언어로서 표현한 결과물에 가깝다.
 
Over My Dead Body(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2022, Oil on canvas, 41x31.8cm. /갤러리기체
Over My Dead Body(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2022, Oil on canvas, 41x31.8cm. /갤러리기체
A Watcher(보는 사람), 2022, Oil on canvas, 90.9x72.7cm. /윤다함 기자
A Watcher(보는 사람), 2022, Oil on canvas, 90.9x72.7cm. /윤다함 기자
 
작가는 어떠한 장소, 건물에 쌓인 시간과 죽음을 떠올리는 행위로써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고 말한다. 그 건물을 세운 인부의 노동이나 그 건물이 딛고 있는 지역의 강수량 따위가 마치 먼지나 각질처럼 축적돼 있을 표면으로부터 침윤하는 지난 시간을 회화로써 표현하고자 한다. 예컨대, 그의 신작 ‘조상의 지혜’(2022)에는 아스팔트 땅 아래 누운 노인의 시체와 지상을 배회하는 영혼 그리고 개 두 마리를 끌고 산책하는 인물이 등장, 이들이 한데 얽혀 빚어내는 복합적 구도는 그러한 작가적 관심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Milk Gone Bad And The Weather Is To Blame(우유가 상한 것은 전적으로 날씨 탓), 2022, Oil on canvas, 193.9x259.1cm. /윤다함 기자
Milk Gone Bad And The Weather Is To Blame(우유가 상한 것은 전적으로 날씨 탓), 2022, Oil on canvas, 193.9x259.1cm. /윤다함 기자
Vintage Lover(빈티지 애호가), 2022, Oil on canvas, 72.7x90.9cm. /윤다함 기자
Vintage Lover(빈티지 애호가), 2022, Oil on canvas, 72.7x90.9cm. /윤다함 기자
 
인물은 유예림의 회화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다. 화면 속 여러 인물은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으며, 대체로 빨간 머리에 파란 눈을 지닌다. 이들은 누구일까. “외형적으로는 남성을 떠올릴 순 있겠으나, 사실 성별은 없어요. 저는 그림에 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요. 그래서 저와는 다소 멀리 떨어진 소재를 갖고 그림을 그리려고 하죠.”
 
모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비슷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구글링으로 얻은 스톡이미지를 레퍼런스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자신이 필요한 인물의 상태, 포즈, 태도 등을 검색해 그중에서 가장 ‘전형적인’ 사진을 택하는데, 이를테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더라도 대중문화 등으로부터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다. “제가 아무리 복잡한 감정을 검색해도 그 결과는 일반화된 이미지로 필터링 돼 나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기도 또 폭력적으로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제 그림 속 인물들이 때로는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A Trustworthy Friend Of Mine(나의 믿음직스러운 친구), 2022, Oil on canvas, 45.5x38cm. /갤러리기체
A Trustworthy Friend Of Mine(나의 믿음직스러운 친구), 2022, Oil on canvas, 45.5x38cm. /갤러리기체
유예림 개인전 ‘조상의 지혜’ 전경. /갤러리기체
유예림 개인전 ‘조상의 지혜’ 전경. /갤러리기체
 
유예림 개인전 ‘조상의 지혜(Ancestral Wisdom)’가 내년 1월 28일까지 갤러리기체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직접 경험하거나 가보지 못한 장소나 대상, 그리고 그곳에 축적된 시간에 대한 허구적 향수를 이미지로 재현한 신작 회화 17점과 입체 오브제 2점을 내건다. 
 
전시 타이틀 ‘조상의 지혜’는 출품작과 동명으로, ‘조상’이나 ‘지혜’와 직접적으로 연관성은 없다. 그저 ‘조상’이란 단어가 주는, 켜켜이 중첩된 시간의 층위를 태연하게 드러내는 듯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고.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먼저 생각해놓은 명제인 만큼, 작가는 제목을 짓는 데에도 큰 의미를 둔다. 작가는 어떤 단어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을 때 귀에 들리는 발음과 같은 청각적 요소에 관심이 많다. 언어 자체의 의미 전달보다는 언어가 사람의 입을 통해 내뱉어 졌을 때의 그 발음과 어감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을 마주할 때 작품명과 대조하며 감상하길 추천하는 이유다.
 
Nice Person(좋은 사람), 2022, Clay, cotton and acrylic paint, 16(w)x25(h)x30(d)cm-1. /윤다함 기자
Nice Person(좋은 사람), 2022, Clay, cotton and acrylic paint, 16(w)x25(h)x30(d)cm-1. /윤다함 기자
 
이번 전시를 기획한 임수영 독립 큐레이터는 “유예림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모호함은 곧 가능성을 의미한다. 정교하게 구축된 이미지는 또 다른 상황 혹은 문장에서 재배치되고 교체되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회화 작업이 정지된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사건 가능성을 내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Facts About Nutrition(영양소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 2022, Oil on canvas, 72.7x116.8cm. /윤다함 기자
Facts About Nutrition(영양소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 2022, Oil on canvas, 72.7x116.8cm. /윤다함 기자
 
한편,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 재학 중이다. 최근 프리즈와 샤넬 코리아가 후원하는 프로젝트 ‘나우&넥스트’ 작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 ‘다시보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에는 페레스프로젝트 밀라노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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