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울가의 아뜰리에 일기⑧] 두 가지 재료의 두 가지 얼굴

입력 : 2020.09.03 10:49
◆[최울가의 아뜰리에 일기]는 작가의 작품과 작업 세계에 영향을 주었던 일상의 기록을 소개하는 코너로 Art Chosun에서 매주 2회 (화,목) 총 6주간 연재됩니다.
 
New Infinity Series [Fishbowl Vase Series 2] 162.2x112.1cm Oil on Canvas 2017
New Infinity Series [Fishbowl Vase Series 2] 162.2x112.1cm Oil on Canvas 2017
 
아크릴과 유화.두 재료가 가지는 예술적 가치의 두 얼굴. 그야말로 21세기의 유화를 대신할 혁명적 재료라고 말 할 수 있다. 나도 90년도에는 아크릴을 썼고 뉴욕으로 건너와서는 과감히 그 재료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 아크릴 재료와 유화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 아크릴은 사용 후 10분이면 말라버리는 초스피드 건조함을 가지고 있지만, 유화 즉 오일 페인팅은 첨가물을 아무리 잘 써도 7주에서  3개월까지 걸린다. 그리고 유화의 속 까지 완전히 마르려면 2년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의 컨템퍼러리 모든 작가들에게는 유화 자체는 귀차니즘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크릴 사용을 과감히 중단하고 오일 페인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아크릴에서는 유화  물감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향과 깊이를 결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삼대 경매회사에 올라온 평면 그림은 대부분 90% 이상은 유화이다. 왜 그럴까 ?우선 아크릴 표면은 그야말로 플라스틱이다. 조금만 빛에 노출되어도 반사되어 번쩍거린다. 한마디로 재료가 가지는 100% 화학 성분이다. 초스피드 건조 후에는 그 어떤 냄새도 없다. 반면 유화는 그 냄새부터가 다르다. 합성해서 쓰는 재료도 수도 없이 많다. 아마유 테레핀 종류가 다른 식물성 기름 등 그 냄새도 다양하다. 내가 어릴 때 썼던 싸구려 테레핀은 인체에 치명적이지만 대안이 없었던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 누구의 화실을 방문해도 그 냄새가 진동했었다. 유화의 표면에는 현미경으로 보면 숨구멍이 있다. 물감의 마티에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깊이를 더해감은 물론이고 거침 뒤에 숨어있는 중후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깊고 심오하다.
 
그런데 아크릴은 어떤가? 유화의 표면과는 판이하다. 30년이 지나도 똑같이 표면의 색상과 깊이를 찾아볼 수 없는 비닐 테이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크릴의 그런 것을 탈피하기 위하여 90년대에는 한지를 사용하여 스며들게 하는 기법을 씀으로써 좀 더 유화에 가깝게 가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캔버스 위에서는 얄팍하면서도 깊이감을 느낄 수 없었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뉴욕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나서는 과감히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가끔 이렇게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오일 페인팅 작업을 꼭 해야 하나 하는 유혹도 있지만, 붓이 지나가는 감각적 매력을 알기에 더욱더 놓지 못한다.
 
하지만 수천 가지의 색상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고 야수같은 와일드한 마티에르의 깊이에서 나는 향기는 수많은 색상을 만들어 낼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존재하기에 많은 작가들에게는 영원한 뮤즈의 재료가 아닐 수 없다. 아크릴 물감은 금세 말라버리는 특성 때문에 생각하며 계속적으로 색상을 감지해 낼 수가 없기에 오묘한 수천가지의 색상의 향기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거의 단색적 이미지 색면에 활용할 수 밖에 없다. 아크릴 재료 사용 시에 간단했던 도구들이 유화 사용 시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현대적 감각의 컨템퍼러리 작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여러 가지 재료와 기구가 등장한다. 아무튼 아크릴은 나쁘고 유화가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유화의 복잡한 절차가 있는데도 왜 근현대의 미국, 유럽 대가들은 유화를 고집할까 하는 대목이다.
 
오일페인팅 작업의 기나긴 과정은 너무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큰 거목들은 유화를 버리지 못한다. 냄새가 미치는 건강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일 수가 있는데도 말이다. 아크릴이 가지고 있는 단순함과 스피드 건조함이 가져다주는 순간적 맛이 작업 자체의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지는 몰라도 색의 오묘하고 깊은, 수많은 색을 느껴보기는 정말 턱없이 부족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작가 자신에게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얻은 현상을 그렇게 초스피드로 건조되는 재료로 재빨리 결정하려는 현대인 속성의 한 단면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쩌면 현대인의 세포에 숨어있는 오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작업 형태의 과정을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두려움이 있기에 어쩌면 작가 본인이 스스로 회의를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도 간편함과 재료가 가지는 스피드한 건조, 간편함 이런 달콤한 매력은 작업자 스스로의 두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림을 컬렉션 할 때 제일 먼저 봐야 할 것이 바로 작가가 쓴 재료일 것이다. 그 재료는 작가의 마라톤 감성과 단거리 감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첫 번째 관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가가 가지고 있는 깊이를 측정해 볼 수 있는 작가의 철학적 감성도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대의 초스피드 사회와 화합하는 아크릴 재료가 작품 대량생산을 요구하는 첫 번째 조건일지 모른다. 사람으로 치면 아크릴은 스마트하고 심플하고 멋 떨어진 차림인 반면 유화는 뭔가 고리타분한 촌스러운 행색의 시골스러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이 아크릴로 작업을 했다면 그런 색상과 감성을 표현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다. 한국의 추상화가 유영국, 김환기 선생도 마찬가지다. 오일페인팅이 아니었다면 감히 어찌 그렇게 깊은 색상을 만들 수 있었겠는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재료의 선택은 작가 자신에게 있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고 말 할 수 없지만, 오일페인팅에 대한 열망과 깊이와 향수는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회화의 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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