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운율이 느껴지는 회화… 박현정 개인전 ‘슬라임 플러시’

입력 : 2019.12.24 16:32

내년 1월 16일까지 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

<이미지(90)> 70x49cm 종이에 아크릴릭, 펜, 수채 2019 /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
<이미지(90)> 70x49cm 종이에 아크릴릭, 펜, 수채 2019 /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
 
기하학 색면과 정제된 붓질로 감각적인 화면을 조형하는 박현정이 개인전 ‘슬라임 플러시’를 내달 16일까지 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가진다. 에어브러시와 붓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손과 디지털 매체의 협업으로 완성한 이미지는 명료한 색채와 섬세한 표현이 두드러진다. 작가는 온라인 세상에서 낯선 광물 이미지를 긁어모은다. 아무런 목적 없이 수집한 이미지를 작은 단위로 분해해 디지털 파일로 변환한 후 일련변호를 붙여 표본화한다. 의도와 기술이 힘을 겨뤄 만든 형태는 단순한 형상 너머 맥락을 함의한 낱말이 되고, 이에 따라 서사가 명료해진다.
 
최근작 ‘이미지(90)’의 화면 중앙에는 찬란한 청색 타원 다섯 개가 줄지어 서 있다. 그림자와 같은 울림이 주변부에 퍼지고 붓 자국과 금빛 사선이 타원의 앞뒤로 교차하며 깊이를 확장하면서, 작품은 선율과 후렴을 연주하는 악보가 된다. 제작과 구성 단계의 고민이 집약된 덩어리가 구름처럼 떠도는 화폭은 알 수 없는 질서로 정돈된 세계와 같고, 기호학적 이미지가 부유하듯 안착해 얇고 끈끈한 층을 이룬다. 덩어리진 생각은 유연한 몸으로 여러 화면을 넘나들고, 새로운 화면에 들어설 때마다 다른 의미로 변모한다. 자기 복제와 참조를 거듭하며 보다 넓은 풍경으로 팽창할수록 화폭 위 운율은 효과적으로 증폭한다.
 
<이미지(92)> 21x30cm 종이에 아크릴릭, 수채, 레이저 프린트 2019 /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
<이미지(92)> 21x30cm 종이에 아크릴릭, 수채, 레이저 프린트 2019 /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
 
작가의 작업은 회화의 정체를 찾아가는 모험이다. 경험에서 체득한 감각과 이론을 바탕으로 그는 직관을 도구 삼아 그림 그린다. 나름의 체계에 따라 이미지를 배열해 화폭을 채우고, 시각적 만족감이 느껴지면 손을 멈춘다. 완성을 지향하지 않는 화면은 해답을 보류한 채 과정에서 드러나는 운율과 균형으로부터 의미를 발견한다. 전체보다 부분을, 목표보다 과정을 탐색하는 태도로 보편적 감각과 진실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는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직관을 시험하고 경험을 축적한다. 기성 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화면을 유영하는 가볍고도 끈끈한 낱말은 끊임없이 새롭게 관계 맺으며 낯설지만 설득력 있는 시를 쓰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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