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잡은 지 63년… 아직도 음악 얘기 나오면 흥분"

입력 : 2016.10.06 03:00

15년 만에 새 앨범 낸 정경화
"슬럼프·부상 딛고 컴백한 나… 바흐도 칭찬해줄 것 같아요"

"열세 살 때인 1961년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스승 이반 갈라미언 선생님이 첫 과제로 내주신 게 바흐였어요. 파르티타 3번으로 활 테크닉을 배웠는데 그 훈련이 대단히 힘들었죠. 하지만 그 후 55년 만에 평생 꿈꿨던 바흐 여섯 개 전곡 음반을 완성했으니, 이 순간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꿈속에서 사는 기분이에요. 나에겐 지금이 행복이고, 절정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8)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린 여제(女帝) 정경화가 새 음반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워너 클래식)을 냈다. 2001년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녹음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이후 15년 만에 선보이는 앨범이다. 지난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영국 남서부 브리스틀의 성 조지 브리스틀 교회에서 프로듀서 스티븐 존스와 함께 가슴 벅찬 울림을 만들어냈다. 1970년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이츠하크 펄먼을 대신해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 협연하면서 이름을 떨쳤던 원조 '월드 스타'는 5일 "지구에서 딱 하나 내놓을 음악가가 누구냐 하면 바흐다. 그중에서도 기가 막힌 걸작은 파르티타 2번 '샤콘느'. 다른 악기가 아니라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곡이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정경화는 “나는 무대에 올라 연주만 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기운이 솟아나기 때문에 연주를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4년 12월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연주하고 있는 정경화. /크레디아
정경화는 “나는 무대에 올라 연주만 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기운이 솟아나기 때문에 연주를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4년 12월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연주하고 있는 정경화. /크레디아

1720년 바흐는 무반주 소나타 세 곡과 파르티타 세 곡을 작곡했다. 악보엔 지시어 없이 음표만 가득해 기교를 발휘한다 해도 작곡가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으면 도전할 수 없는 난곡이다. 정경화가 이 곡의 일부를 녹음한 것도 벌써 42년 전의 일이다. 연주자는 피아노 반주도 없이 손에 쥔 바이올린만을 벗 삼아 '음악의 아버지'가 쌓아올린 불멸의 역작을 풀어내야 한다. 연주 시간만 2시간20분에 달해 이틀 혹은 사흘에 걸쳐 연주하는 경우도 잦다.

하지만 정경화는 다음 달 19일 예술의전당에서 전곡을 하루에 소화하는 리사이틀을 연다.

"지난 5월 베이징에서 바흐 여섯 곡을 하루 저녁에 해봤어요. 중간에 15분씩 두 번만 쉬었더니 마지막엔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중국 청중 3000명이 숨도 안 쉬고 들었어요. 그때 용기를 냈어요."

완벽주의자로 유명했던 그녀이지만 2005년 현(絃)을 짚어야 할 왼손 둘째 손가락을 다치면서 5년간 악기를 놓았고, 이젠 한결 여유 있는 모습으로 세상살이를 즐기고 있다.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불안하지는 않을까. 정경화가 말했다. "바이올린을 한 지 63년입니다. 슬럼프는 말도 못 하게 많았어요. 내가 다시 컴백해서 연주할 줄은 상상도 못 했죠. 이런 기적은 꿈도 못 꿨기 때문에, 바흐가 나의 이번 음반을 듣는다면 설사 완벽하지 않다 해도 '잘했다' 칭찬해줄 것 같아요. 솔직히 이걸 내가 했나 싶을 만큼 마음에 듭니다."

정경화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끄떡없다"며 열정을 불태웠다. "관객은 냉정해서 연주자가 얼마큼 진심인지 귀신같이 압니다. 내가 이만큼이라도 올 수 있었던 건 조그만 방에 틀어박혀 울고 몸부림치고 데굴데굴 난리 법석을 떨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얻은 음색과 흥분을 무대에 내놓으면 얼마나 좋은지 숨 넘어가는 날까지 놓지 않을 거예요. 이것 봐요, 내 나이가 곧 칠십인데 음악 얘기만 하면 이렇게 흥분하잖아요."

정경화 바흐 무반주 전곡 리사이틀=11월 19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77-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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