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홍광호, 귀를 호강시키는 위로의 목소리…뮤지컬 '빨래'

입력 : 2016.03.18 09:43
홍광호(33)의 달콤한 목소리가 삶의 묵은 때를 빨래하듯 씻겨냈다. 16일 오후 4시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1관 뮤지컬 '빨래'에서 벌어진 마법 같은 순간이다. 풍성하고 고급스런 홍광호의 목소리는 '꿀성대'로 통한다. 꿈결에 들려오는 듯하다. 귀가 호강하는 동시에 위로를 받는다.

홍광호는 '맨 오브 라만차' '지킬 앤 하이드' '노트르담 드 파리' '데스노트' 등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을 통해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영국 런던에서 개막한 '미스 사이공' 25주년 기념 뉴 프로덕션의 베트남장교 '투이' 역을 맡아 '2014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월드닷컴 어워즈' 조연 남자배우상, '제15회 왓츠 온 스테이지' 최고조연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다.

'빨래'는 250석짜리 소극장 창작뮤지컬이다. 홍광호는 앞서 2009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 오른 '빨래'에서 몽골 이주노동자 '솔롱고' 역으로 호평 받았다. 당시 홍광호가 부른 솔롱고 넘버 '참 예뻐요'도 인기를 누렸다. 이후 자신의 콘서트에서도 이 곡을 자주 불렀다. '빨래'에 애정을 놓지 않던 그는 바쁜 스케줄과 높은 몸값에도 7년 만에 돌아왔다.

4월 공연 티켓 13회차가 오픈 동시에 2분, 3월 공연 티켓 12회차가 3분 만에 매진됐다. 평일 낮 공연임에도 이날 역시 객석은 가득 찼다.

대극장에서 공연 전체를 서서히 덮어가며 웅장하게 녹아냈던 홍광호의 목소리는 소극장에서 서서히 번져갔다.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솔롱고와 서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나영' 등 서민들의 팍팍한 인생살이는 관객들에게 저릿저릿 다가온다. 홍광호의 스타성을 확인하는 순간들로 공연장은 터질 듯했다. 초반 솔롱고의 솔로곡 '안녕'을 부르고 2층 무대에서 씨익 웃는 장면은 관객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잔잔한 하모니카 연주는객석을 위한 보너스였다. 나영이를 지켜보며 부르는 '참 예뻐요'에서 다른 등장인물들의 동작은 멈춰 있고 솔롱고만 홀로 노래를 부르는데, 실제 시간도 멈춘 듯했다.

홍광호의 연기력은 한층 탄탄해져있었다. 특히 서점에서 불법해고를 당한 선배를 위해 사장인 '빵'에게 대든 뒤 술을 먹고 취한 나영이 솔롱고의 집주인과 싸움이 붙었을 때가 정점이다. 나영이를 보호하면서 대신 맞는 모습에 객석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능수능란함도 늘었다. 2막 초반 일종의 보너스 장면으로 홍광호가 베스트셀러 소설 '빨래하는 남자'의 작가로 변해, 나영이가 일하는 서점에서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선글라스를 낀 채 건들거리며 사인해주는 모습에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망가진 모습에서도 홍광호는 품위를 잃지 않는 태연함을 보였다.

홍광호는 이처럼 존재감을 발휘했지만 튀지 않는 묘를 발휘한다. '빨래'는 앙상블의 뮤지컬이다. 솔롱고와 나영 외에 반신불수 딸을 돌보는 주인할매, 동대문에서 여자 옷을 파는 과부 등 서민들이 어우러지며 위로를 받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빨래'를 함께 하며 쌓인 때와 그 속의 아픔까지 씻어버린다.

솔로 넘버에서 오롯이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지만 앙상블에서는 다른 7명의 배우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 홍광호는 이처럼 능수능란하게 힘을 조절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이를 통해 새삼 '빨래'가 좋은 작품이라는 걸 환기시킨다. 그가 이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다. 홍광호가 '홍롱고'인 이유다.

지난해 6월 10주년 특별공연을 선보인 '빨래'는 11년차에 들어서도 이 시대에 없어진 것으로 보이는 감성과 정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스타배우와 작은 소극장 뮤지컬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범사례가 됐다.

이번 시즌에서는 어쿠스틱 기타, 퍼커션, 첼로 등 라이브 밴드가 함께 한다. 18차 프로덕션으로 지난 10일 개막했다. 내년 2월26일까지 동양예술극장 1관. 홍광호는 4월24일이 마지막 출연 회차다. 나영 강연정 홍지희, 솔롱고 홍광호, 이준혁, 배두훈, 노희찬. 5만원. 씨에이치수박. 02-928-3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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