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차이무' 이상우 감독 "연극을 왜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

입력 : 2015.10.30 14:03
스승인 연출가 이상우(54·한국종합예술학교 연극원 교수)를 따라 극단 차이무에서 첫 연극을 하게 된 뮤지컬배우 안은진(24)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극단 차이무의 20주년 기념작 중 세 번째 작품으로 이상우 예술감독의 신작 '꼬리솜 이야기'에서 가상의 나라인 '꼬리솜(Korisom)'을 멸망케한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마금보로미 박사를 연기한다

"(한예종 연극원) 학생들은 몇년 동안 휴학을 하고 선생님 공연에 출연하기 위한 오디션을 보곤 한다. 근데 이번에 연극 작업을 할 때 신기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뮤지컬할 때와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배우의 옷이 불편하면 그 옷을 입히지 말라고 한다. 뮤지컬 무대에서도 막내라 주눅들어서 하는데 이번 연극 연습에서는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것이 신기했다. 제가 느끼는 또 다른 점이 있다면 뮤지컬 출연할 때는 다음날 연습을 위해 술을 자제한다. 그런데 이곳은 아니다. 신기하다.(웃음)"

1995년 이상우 예술감독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내내 술만 마시던 송강호, 유오성 등을 보고 "이러다 다들 망가지겠다"고 생각했다. "안되겠다"싶어 배우 문성근과 1000만원씩 출자해 '플레이랜드'를 올린 것이 차이무의 시작이다.

그는 29일 오후 대학로 예술마당 2관에서 열린 '차이무 20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어떻게 하다 보니까 20년이 됐다"며 "1995년 옛날 사진을 뒤져보니까 극단을 만들겠다하고 술을 마신 것이 95년 7월8일이더라.(웃음) 첫 작품으로 문성근, 류태호, 송강호가 출연한 '플레이랜드'를 학전에서 공연했다"고 돌아봤다. '차원이동무대선(船)'이라는 뜻을 지닌 '차이무'는 '관객을 태우고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번역극이 대다수던 창단 당시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정서를 표현해 주목 받았다.

무엇보다 걸출한 배우들을 배출했다. 문성근, 명계남, 송강호 외에 박광정, 류태호, 송강호, 유오성, 강신일, 김승욱, 이대연, 이성민, 민복기, 박원상, 최덕문, 정석용, 문소리, 오용, 전혜진, 박해준…. 등이 이 극단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 중 창단 멤버는 문성근, 송강호, 유오성, 류태호 등. 영화감독 여균동,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로 유명한 드라마 작가 인정옥도 창단 멤버다. "말이야 창단 멤버들이지 함께 술을 먹는 단체였다"고 웃었다.

이 예술감독은 "본인들이 찾아와서 '같이 해주십쇼' 한 적은 없고 '이번에 같이 하자'고 다 내가 유혹하고 꾀어서 했다. 이번에 처음 함께하는 (한예종) 제자들도 다 내가 꾀여서 데리고 왔다"고 싱글벙글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일도 안 챙기는 스타일이라는 이 예술감독은 차이무 20주년이라고 해서 "크게 이벤트를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앞으로는 어땋게 될 지 모른다. (자신의 뒤를 이어 2003년부터 차이무를 이끌어온) 민복기 대표에게도 하는 이야기지만 극단은 영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예술감독은 한국 연극계 전설의 극단인 연우무대(演友舞臺) 1977년 창단 멤버다. 정한룡을 중심으로 서울대 연극회의 졸업생과 재학생이 주축이 된 이 극단에는 김민기 학전 대표, 극작가 김광림 등이 속해 있었다. 그러다 이 연출이 차이무, 김민기가 학전을 꾸리고 나갔다.

"극단 연우무대 창단멤버로 89~90년인가. 그 때 대표를 잠깐 맡았는데 연우 무대를 끌고 갈 것이냐, 해산해야 하나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다 어른이 되면서 자신의 색깔이 강해진 거지. 차이무 역시 그런 시점이 올 수 있겠지. 중요한 것은 극단 자체가 오래 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계속 좋은 연극을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배우, 작가, 연출이 좋은 작품을 계속 내면 계속 가는 것이고. 그런 힘이 소진 되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고."

차이무는 창단 20주년을 맞아 올해 1월 차이무의 첫 뮤지컬 '빛 요정과 소녀', 8월 연극 '거기'를 무대에 올렸다. 11월 6일부터 29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 2관에 올리는 이 예술감독의 신작 '꼬리솜 이야기'에 이어 12월4일부터는 민복기 연출의 역시 신작 '원파인데이', 2016년 1월에는 차이무의 대표작 '양덕원 이야기'로 20주년을 갈무리한다.

이 예술감독은 "20년이 되다 보니 재고품을 계속 팔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괴심도 있었다"며 "그래서 이번에 신작을 하고 싶었다"고 알렸다.

물론 좌절도 있었다. "민복기 대표 들어와 초창기인데 적자를 본 적이 있다. 빚을 많이 져서 그만 둬야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좀 쉬어야겠다고 했지. 신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는 작품을 계속 돌리다 보니 탈진을 했다고 해야 하나. 나중에 지나고 보니 잘 되는 공연도 있고 길게 보니 평균이 되더라.(웃음)"

차이무 단원들의 강점은 "개개인의 창작집단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식으로 발전하는 단계로 갔으면 한다"며 "단원 자격증을 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단원이라 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있으면 단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이중 국적자가 많다. 이대연 배우는 신시였다가 옮겨는데 계속 신시이기도 하고. (연기를 잘해서) 다른 사람이 불러줘야 차이무 단원이지 않나라는 생각도 든다.(웃음)"

20년전부터 차이무를 이끌어온 대표이자 '꼬리솜 이야기'에서 비서부장을 연기하는 민복기는 "이상우 선생님이 한예종 연극원 교수로 가시면서 대표를 8년하셨고 제가 12년을 했다"고 웃었다.

"20주년을 맞으니 감회가 새롭다. 선배님들, 후배님들이 같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이다. 점차 나이 든 극단이 돼 가고 있는데 경로당까지 만나서 공연을 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tvN '미생' 등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성민이 비서부장을 번갈아 맡는다. 16~17년 전 차이무 단원이 됐다는 이성민은 "20년이 된 극단인데 여전히 할 말이 많다. 밤새 술을 마셔도 수다가 끊이지 않고. 쉰살이 다 됐는데 여전히 이상우 선생님께 야단을 맞는다"고 했다.

"아직도 선생님을 처음 뵌 30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차이무, 선생님 같이 있는 것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닌가 한다."

능청스런 성격으로 화기애애한 극단 분위기를 주도하는 박원상은 이성민이 말이 길어지자 "좀 길지 않나"라고 눙쳤고 "이성민은 그럼 밤까지 하자. 다들 저녁 먹고 가라"라고 웃었다.

스타 배우가 된 그는 차이무에서 경험이 '소중한 밑거름 됐다"고 긍정했다. "민복기 연출 등과 같이 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어떤 것이 좋은 연기일까 고민한 것이 배우로서 버틸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안은진과 함께 마금보로미 박사를 나눠 맡는 노수산나는 2010년 차이무에서 연극 'B언소'로 데뷔했을 당시 '어마어마'한 선배들과 3개월 동안 연습하며 "매일 울었다"고 돌아봤다.

"스물네살 때 선생님 공연을 같이 하게 됐다. 잘한다고 해서 저를 캐스팅하셨는데 막상 출연하니 제가 땅바닥 개미더라. '내일은 잘하자'라고 울고, 마음을 다지면서 또 울고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씩 발전한 것 같다. 마금보로비 박사는 똑똑한 역할이다. 5년 전에는 제가 똘망똘망하다고 선배들이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희미해졌다고 하셔서 똘망똘망함을 잘 보여드리겠다"고 웃었다.

자유로운 연기와 개성이 돋보이는 전혜진은 차이무가 "자유스럽고 '척'이 없는 극단이라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 생활에서도 100을 번다고 치면 다섯명이서 똑같이 20씩 나눴다. 수익도 다 오픈이 돼 있고. 그 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선배들이 많이 받는데, 똑같이 나누는데다가 후배들이 더 받은 적도 있었다."

'양덕원 이야기'에 출연하는 강신일은 차이무가 창작극 작업을 꾸준히 해온 것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그는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삶을 연기하다 보니 번역극 연기 형태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며 "우리의 것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런 연기가 나오게 됐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이 예술감독은 "연극을 왜 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이 시대를 알아야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다. 그것을 알고 나면 태도가 생길 것이고, 어떤 작품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했다.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다큐인데 신기한 것을 봤다. 1944년 4월11일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 장면인데, 불과 20일 후에 히틀러가 자살한다. 연주회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바그너를 연주하는데 나치 고위 관리들이 멋있는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근데 지휘자가 마르고 젊은 (세계적인 거장 지휘자인) 카라얀이더라."

예술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력에 봉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예술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요즘 학교에서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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