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가는 오케스트라, 한국은 비켜갑니다

입력 : 2013.11.06 23:41

빈 필·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이달 도쿄공연, 그 전엔 베이징
관객층 빈약, 제작비는 부담, 기업 협찬 없인 대부분 적자… 해외악단 초청 어려운 이유

베를린 필, 빈 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유럽의 최고 오케스트라 3곳이 이달 중순, 일본 도쿄에서 '정면 승부'를 벌인다.

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가 16·18일 각각 산토리홀과 도쿄문화회관에서 슈트라우스 교향시 '영웅의 생애'와 스트라빈스키 발레 모음곡 '불새'를 공연하는 데 이어,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이 18·19일 산토리홀에서 배턴을 이어받는다. 크리스티안 텔레만의 빈 필하모닉은 8~17일까지 도쿄에서만 여섯 차례 공연을 갖고 베토벤 교향곡 9개와 피아노협주곡 5개 전곡을 완주한다. 이번 주 파리 관현악단과 도쿄에서 공연한 지휘자 파보 예르비는 29일엔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과 다시 도쿄를 찾는다. 래틀이 오랫동안 조련한 영국 버밍엄 심포니도 18~21일 안드리스 넬슨과 함께 도쿄를 찾는다.

◇도쿄에 몰리는 정상급 교향악단

일본의 클래식 애호가들에겐 매혹적인 '밥상'이다. 최고가 티켓이 4만2000엔(45만2000원·빈 필), 4만엔(43만원·베를린 필), 3만5000엔(37만7000원·로열 콘세르트허바우)이나 하기 때문에 "모두 쫓아다니다간 파산한다"는 '푸념'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닌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영진씨는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총출동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공연을 보려고 알아봤더니, 석 달 전에 다 매진됐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다음 주 내한하는 베를린 필 지휘자 사이먼 래틀(왼쪽)과 다음 달 초 내한하는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 지휘자 파보 예르비. /금호문화재단·빈체로 제공
다음 주 내한하는 베를린 필 지휘자 사이먼 래틀(왼쪽)과 다음 달 초 내한하는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 지휘자 파보 예르비. /금호문화재단·빈체로 제공
관객층이 두터운 일본이 서구 유명 오케스트라와 연주자의 단골 순회공연지가 된 지는 오래다. 2011년 3·11 대지진 당시 연주가 취소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경제가 살아나면서 예전의 호황을 넘보고 있다.

요즘은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공연시장의 새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빈 필하모닉은 지난 주말 일본 공연에 앞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개관한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사흘간 공연했고, 로열 콘세르트허바우도 13·14일 이곳을 찾는다. 티켓을 직접 사는 일반 관객 비율이 낮지만,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찾는 빈 필과 로열 콘세르트허바우는 우리나라는 들르지 않는다. 베를린 필이 11일과 12일 도쿄와 같은 프로그램(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과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들고 서울을 찾고, 예르비의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이 다음 달 내한하는 정도다.

◇클래식 관객층 빈약한 한국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은 민간 공연기획사가 거의 맡고 있는데, 빈약한 관객층 때문에 막대한 제작비(연주료·항공료·숙박비)를 부담하면서 선뜻 공연을 유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주도한 공연기획사 빈체로는 로린 마젤의 뮌헨 필하모닉과 정명훈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공연 유료 관객이 각각 회당 약 1000명, 1300명에 그쳐 공연당 1억원 넘는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오케스트라가 내한하더라도 삿포로·오사카·아이치 같은 지방 도시까지 순회하며 5~6회에서 10회까지 공연 스케줄을 잡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2번 공연이 고작이다. 일본에 비해 클래식 공연시장이 10~20%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티켓값도 올라간다. 물가를 고려하면 국내 공연 티켓이 일본보다 더 비싸다는 불만도 나온다.

베를린 필 도쿄 공연은 석 달 전에 거의 매진됐지만, 다음 주 초 서울 공연 티켓은 이틀 합해 200장이나 남아 있다. 베를린 필 공연을 주최하는 금호문화재단은 "한 달 전 티켓이 20% 넘게 남아 걱정했는데, 공연이 다가오며 그나마 티켓이 등급별로 골고루 나가고 있다"고 했다.

기업 협찬 없이 티켓 수익만으론 공연을 치를 수가 없는 게 우리 현실. 베를린 필 공연 비용은 20억원이 넘지만 이틀 공연치가 모두 매진돼도 티켓 수입은 10억원에 불과하다. 금호문화재단 박선희 차장은 "이번 공연은 협찬사를 구하지 못해 문화재단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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