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땅에 내 작업실, 中엔 없어… 친구들도 제주땅 보러 다녀요"

입력 : 2013.10.21 03:02   |   수정 : 2013.10.21 18:17

[펑정지에 이어 중국 작가들 잇따라 제주도에 작업실 열기로]

中에선 토지 사유 금지돼 있어… 제주도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중국인 비자면제 등 여건 좋아
베이징 798같은 예술특구 계획 "中 제주러시 예술가가 잇는 것"

'Feng Studio'.

나무 데크에 붉은 글씨로 '펑 스튜디오'라고 적혀 있었다. 18일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인마을. 높이 5m, 넓이 60평(198㎡), 네모 반듯한 흰색 단층 건물이 데크 위에 섰다. 분홍과 녹색으로 외사시(外斜視)의 인물들을 즐겨 그리는 중국 작가 펑정지에(俸正杰·45)의 제주 작업실이다. 베이징, 쓰촨, 싱가포르에도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펑정지에는 이번에 제주도에 네 번째 작업실을 열었다. 중국 작가가 제주도에 작업실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中선 토지 사유화 금지… '영원한 내 땅' 갖고 싶어

"몇 년 전까지 제주도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2011년 치과의사인 한국인 컬렉터에게 이 치료받으러 서울에 왔다가, 기내(機內)의 항공 지도에서 '제주도'라는 곳을 발견하곤 관심이 생겼다."

펑정지에는 제주도가 중국인들에게 비자를 면제해주는 것에 우선 관심이 갔다. 50만 달러 이상 휴양 체류 시설을 매입한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준다는 사실도 구미가 당겼다. 그해 11월, 당장 베이징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박철희(38) 갤러리문 대표와 함께 제주도에 내려왔다. 수려한 풍광, 산뜻한 기후, 한국 예술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끌렸다.

그림 속 외사시(外斜視) 인물은 배금주의에 경도된 현대인에 대한 비판이다. 쓰촨성 출신의 가난한 예술가는 이 그림 덕에 부유해졌다. 제주에 작업실을 지은 펑정지에는“예전보다 여유로워진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호화로움으로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2007년작‘중국인 초상 M 시리즈’앞에 선 펑정지에(위 사진).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들어선 펑정지에의 작업실(아래 사진). /제주=이종현 기자
그림 속 외사시(外斜視) 인물은 배금주의에 경도된 현대인에 대한 비판이다. 쓰촨성 출신의 가난한 예술가는 이 그림 덕에 부유해졌다. 제주에 작업실을 지은 펑정지에는“예전보다 여유로워진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호화로움으로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2007년작‘중국인 초상 M 시리즈’앞에 선 펑정지에(위 사진).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들어선 펑정지에의 작업실(아래 사진). /제주=이종현 기자
"아, 나도 여기에 작업실을 지어야지." 지난해 2월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200평(약 661㎡)의 땅을 매입했다. 당시 시세는 평당 30만~40만원 선. 건축가 강철희씨에게 의뢰해 당장 작업실을 짓기 시작했다. 펑정지에는 "중국은 토지의 사유화가 금지돼 있다. '영원히 내 것인 땅'을 가지고 싶은 건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나"라고 했다. 베이징에서 제주도는 비행기로 2시간, 베이징에서 그의 고향 쓰촨성 청두(成都)까지 거리보다 짧다. 12월 17일까지 제주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펑정지에는 "앞으로는 한라산을 비롯한 제주도 풍광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제주에 中 작가 작업실촌 조성되나

제주에 들어올 중국 작가는 더 있다. 박철희 갤러리문 대표는 "이미 펑정지에의 동료 작가 천페이, 로지에, 쉬저 등 중국 작가 셋이 제주에 땅을 샀다"고 했다. 새 작업실을 보여주려고 친구 60여명을 초대했다는 펑 작가는 "이번에 온 내 친구들도 지금 제주 땅을 알아보러 다니고 있다"고 했다. 박철희 대표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이 중국인들의 습성인 데다, 제주 땅값이 중국에 비하면 소위 '껌값'이라 더욱더 관심이 많다"고 했다.

중국 작가들의 제주도 땅 매입 문의가 쇄도하다 보니 박 대표는 아예 지난 5월 아시아예술경영협의회라는 단체를 세우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 단체는 최근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소유인 휘찬산업개발과 MOU를 맺고 서귀포 안덕면 다빈치박물관 근처 부지에 국제예술 특구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싱가포르, 일본 등 외국 작가의 작업실 조성도 목표 중 하나.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중국 사업가들의 '제주 러시'를 이젠 예술가들이 잇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박철희 대표는 "베이징 798 예술구같은 곳이 제주도에 생긴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 작가들의 제주 진출을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는 일. 펑정지에와 길 하나 사이에 작업실을 둔 박서보(82) 화백은 "중국 작가들이 오는 게 나쁠 건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러다 제주도가 '중화인민공화국'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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