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제발요… 이 대사는 몸으로 말합니다

입력 : 2013.10.18 00:29

마임축제 참가작 '알츠하이뭐?'

마임(mime, 무언극)은 말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아우성의 감옥을 벗어날 열쇠를 건네준다. 마이미스트는 침묵과 침묵 사이에 다리를 놓아 세상에 없던 것을 존재하게 한다. 손으로 공중을 짚으면 책상이 생기고, 목마른 얼굴로 고개를 젖히면 물컵이 보인다. 마이미스트 이경렬(44)씨가 아들로, 동료 배우 박영희(44)씨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로 출연하는 '알츠하이뭐?'(26일 오후 5시)는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몸짓으로 응축해 던져준다.

작품은 "이제 돌아가셨으면"과 "제발 살아 있기를" 사이를 하루에도 수백 번 왕복하는 일상을 그려나간다. 기억에 사로잡혀 과거로 도피하는 어머니는 집을 떠나려 하고, 견디지 못하는 아들은 어머니를 집에 가두려 한다. 죽고 싶도록 괴로워 모친의 얼굴을 물에 처박거나 천장에 목을 매달려 하는 장면도 있다.

지난 14일 마임극 ‘알츠하이뭐?’를 연습 중인 마이미스트 이경렬(왼쪽)씨와 박경희씨. /김지호 객원기자
지난 14일 마임극 ‘알츠하이뭐?’를 연습 중인 마이미스트 이경렬(왼쪽)씨와 박경희씨. /김지호 객원기자
그렇다고 고통을 전시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지난 14일 영등포구 연습실에서 만난 이경렬씨는 "6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는 부친을 돌보다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가족의 파괴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을 말하고 싶다"며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부친 덕분에 가족이 삶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박영희씨는 "후배의 모친이 어느 날 '나쁜 놈!'이라며 소홀한 대접에 항의하는 것을 봤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근본적인 인간성은 그대로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뭐?'는 아들과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껴안는 장면으로 끝난다.

'알츠하이뭐?'를 포함한 10여 편이 오는 18~27일 마임 축제인 '한국 마임 2013'(주최 한국마임협의회) 참가작으로 대학로 아트센터K 등에 올라간다. 서정주의 시 '문둥이'를 두루마리 휴지로 표현한 '문둥이'(유홍영 등), 도종환 시인의 '꽃'을 표현한 '원앙부인의 꽃밭(조성진) 등 시(詩)를 옮긴 작품도 있다. 대부분 20분 안팎이다. 짧지만 강하게 다가가는 '몸의 힘'이다. 문의 (02)743-9226~7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