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 석자는 몰라도 제 伴奏는 들어봤을걸요?

입력 : 2013.08.16 02:17

[뉴욕에서도 통한 연주…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
'아이돌 반주'도 즐거운 경험, 강의·연주만 하면 금방 지쳐… 뉴욕 클럽서 月 4~5회 공연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할 때도 “쇼팽 연주에서 팝송 느낌이 난다”는 말을 들었던 송영주는 결국 재즈 메카 뉴욕에서 인정받는 피아니스트가 됐다. /이명원 기자
송영주가 2011년 발표한 곡 '스테이션 125'를 처음 들었을 때 당연히 색소폰 주자가 쓴 곡일 거라고 생각했다. 놓쳐버린 고압 호스의 물줄기처럼 색소폰이 용틀임하며 시작되고, 피아노는 그 뒤에 숨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송영주의 자작곡이었다. 아이돌 노래에 피아노를 연주해주던 그녀의 변신이자 발전은 실로 놀라웠다. 류현진이든 송영주든 역시 큰물에서 놀면 달라진다. 세계 재즈의 전쟁터 뉴욕에 머문 지 3년, 송영주는 1사 1, 2루에서 발목으로 뚝 떨어지는 병살(倂殺) 슬라이더 같은 피아노를 들려준다.

최근 일본 공연 후 잠깐 귀국한 그녀를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귀신같이 알고 연락이 와요. 아이돌 음반에 피아노 쳐달라고요. 지난번에도 잠깐 왔다가 'B.A.P'란 아이돌 음반에 피아노를 쳤는데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 B.A.P 음반에 참여' 같은 기사가 주르륵 뜨더라고요."

지난달 16일 뉴욕 재즈 클럽 '블루노트'에서 2회 공연을 한 송영주는 약간 들뜬 표정이었다. 블루노트는 '빌리지 뱅가드'와 함께 뉴욕 재즈를 대표하는 무대다. 그녀는 작년 5월 일요일 낮 무대에 먼저 서고, 10월에 하루 1회 공연, 이번에 하루 2회 공연을 하게 됐다. "저같은 무명 뮤지션에게 블루노트는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예요. 그런 유명 무대에 섰다는 것은 주요 경력이 되거든요."

귀국 직후인 지난달 30일 밤엔 서울 서교동 재즈 클럽 '오뙤르'에서 트리오 공연을 열었다. 뒤풀이를 마치고 새벽 1시쯤 귀가했는데 부친이 새벽 2시 20분에 별세했다. 목사인 그녀의 부친은 5년 전부터 루게릭병을 앓아 왔고, 최근 급격히 악화됐었다. "블루노트 공연 앞두고 아버지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셨어요. 가족은 공연에 영향이 있을까봐 얘기를 안 했고요. 아버지는 제가 공연을 잘 마치도록 기다리셨다가 가신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교회 피아노 반주를 했던 송영주는 숙명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클래식이 아닌 무엇이든 배우고 싶어서' 졸업 후 미국 버클리음대로 진학했다. 이후 맨해튼음대에서 석사까지 마친 그녀에게 한국 대중음악계가 원한 건 '가요 반주'였다. "'공장음악판에 들어갔다'고 하시는데, 저는 제 음악을 계속 하고 있었고 그들이 재즈 피아노가 필요해서 찾아온 거예요. '가요 반주'도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재즈와는 달리 수입도 좋았고요."

백석대, 서울대, 동덕여대, 서울예대에서 강의를 하던 그녀는 2010년 다시 뉴욕으로 훌쩍 떠났다. "강의와 연주만 너무 많이 하니까 지치고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뉴욕주립대(SUNY)에서 아티스트 학위를 마친 그녀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며 월 4~5회씩 클럽 연주를 한다.

"재즈 피아노는 즉석에서 멜로디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긴장을 풀고 몰입해야 해요. 실제 그런 연주를 하면 내 몸이 어딘가에 갔다가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그녀는 "그래도 키스 자렛 같은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도대체 뭘 먹기에 저렇게 잘 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송영주는 내년 6번째 음반을 낼 계획이다. 그녀의 새 음악을 들으며 "도대체 뭘 먹기에…" 할 사람들이 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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