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억, 31억, 22억… 그림들이 무섭게 팔려나갔다

입력 : 2013.06.16 23:43

[세계 최대 미술시장 아트바젤을 가다]

'등급화'된 VIP 프리뷰 현장, 미술관급 '고전' 위주로 출품
전시장 밖엔 강연·퍼포먼스… 수준높은 문화 이벤트 열려

"벽에 걸린 저 금빛 작품요, 마담? 루돌프 스팅겔의 '무제'랍니다. 가격은 200만달러(약 22억원), 그런데 어제 팔렸답니다."(가고시안 갤러리 부스) "이 루이즈 부르주아 작품요? 225만달러(약 25억원)인데, 팔렸어요. 같은 가격의 저 작품은 아직 판매 가능해요. 이 작품엔 예약이 3개 걸렸고…."(하우저&워스 갤러리 부스)

세계 최대 미술 시장 '아트바젤' VIP 프리뷰(사전 공개회) 첫날인 11일(현지 시각) 오전 스위스 바젤 메세플라츠. '밀리언(million·100만)' 단위 미술품들이 흥정되고 있었다. 44회째인 이번 아트바젤엔 전 세계 39개국에서 화랑 304곳이 참여했다. 요즘 아시아 시장이 뜨는 덕에 올해 처음으로 싱가포르·필리핀 화랑이 참여했고 한국에선 국제·PKM·원앤제이갤러리가 부스를 마련했다.

안: 냉혹한 '자본'의 공간

'세계적 불경기'란 말은 아트바젤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조안 미첼의 6백만달러(약 67억원)짜리 회화 '무제'(1956)가 프리뷰 첫날 스위스 컬렉터에게 팔렸다. 280만달러(약 31억원)짜리 이브 클랭 작품도, 제임스 로젠퀴스트의 2백만달러(약 22억원)짜리 그림도 이날 다 팔렸다. 그레이엄 스틸 화이트큐브 홍콩 디렉터는 "페어의 성패는 프리뷰 첫날 결정되는데 아주 좋다. 400만파운드(약 70억원)짜리 데이미언 허스트 작품을 놓고 세 명이 경합 중"이라고 했다. 기자와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그의 블랙베리로 끊임없이 메시지가 들어왔다.

아트바젤 프리뷰 기간인 11일(현지 시각) 오전, 하우저&워스 갤러리 부스에 설치된 미국 작가 폴 매카시의 조각‘화이트 스노 #3’옆을 관객들이 지나치고 있다. 이 작품 가격은 280만달러(약 31억원)다. /바젤(스위스)=곽아람 기자
아트바젤 프리뷰 기간인 11일(현지 시각) 오전, 하우저&워스 갤러리 부스에 설치된 미국 작가 폴 매카시의 조각‘화이트 스노 #3’옆을 관객들이 지나치고 있다. 이 작품 가격은 280만달러(약 31억원)다. /바젤(스위스)=곽아람 기자
'아트 페어(art fair)'는 적나라한 '자본'의 공간. 아트바젤 공식 행사 기간은 13~16일이었지만 고가(高價) 작품은 대개 VIP 프리뷰 기간인 11~12일 팔렸다. 이틀간의 프리뷰도 '등급화'된다. 프리뷰 첫날 오전엔 고급 VIP인 '퍼스트 초이스' 카드 소지자만 입장이 가능했다. 한 아트 딜러는 "프랑수아 피노 PPR그룹 창업자나,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같은 세계 최정상급 컬렉터에겐 프리뷰 전에 따로 작품을 보여준다"고 귀띔했다. 마크 스피글러 아트바젤 디렉터는 "미술 시장의 생리는 민주주의와 다르다. 시장을 유지하도록 하는 컬렉터들에게 시간을 벌도록 해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수적인 유럽 컬렉터들을 겨냥한 탓에 시장 가치를 검증받은 작품이 주를 이뤘다. 미국 가고시안 갤러리는 장 미셸 바스키아의 2400만달러(약 270억원)짜리 '무제'(1981)를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었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윌렘 드 쿠닝 등 이미 '고전'이 된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나와 '미술관'을 방불케 했다.

밖: '평등' 표방한 '지적 사치'

시장 '안'에선 '돈잔치'가 벌어졌지만, 시장 '밖'은 수준 높은 지적, 문화적 이벤트가 차지했다. '대담과 살롱' 프로그램이 대표적. 12일(현지 시각) 오전 10시 전시장 옆 회의실에서는 독일 미술가 토마스 슈테와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총감독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대담을 벌였다. 이는 무료로 대중에 공개됐다. 120여석을 채우고 바닥까지 점령한 관객들이 진지하게 귀 기울였다. 지오니는 "어떤 관객들이 작품 값(price)을 묻는 동안 또 다른 사람들은 가격과 상관없는 미술품의 힘(power)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날 밤엔 전시장 인근 극장에서 퍼포먼스 행사 '파르쿠르(Parcours·여정)'의 일환으로 전설적 안무가 머스 커닝햄과 프랑스 안무가 벤자민 마일피드의 춤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 예술'도 한 장르로 포획한 최근 미술계 흐름을 컬렉터들에게 '암기'시키기 위한 포석으로도 보였다.

리스테, 볼타 등 인근에서 열린 위성 페어도 성황을 이뤘다. 이 위성페어들에선 아트바젤에 진입하지 못한 화랑들이 컬렉터 눈도장을 찍으며 전의를 다진다. 맥줏집 건물에서 열린 리스테 분위기는 규격화된 아트 바젤과는 사뭇 달랐다. 담배를 피워 문 화랑 관계자들이 파격적인 작품들을 무심하게 내놓고 있는 이곳에서 오히려 아트바젤 전시장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문화적 향취'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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