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박세은, 서울국제발레페스티벌 공연차 귀국
오후 3시 강북구 미아동 서울사이버대의 연습실. 박세은은 함께 온 BOP 단원 피에르 아더와 몸 풀기에 들어갔다. 한국발레협회(회장 박인자) 주최로 23일~내달 1일 열리는 서울국제발레페스티벌 공연을 위한 준비였다. 두 사람은 개막날 '로미오와 줄리엣' 2인무로 무대에 선다. 박세은은 "고국 무대에서 최고를 보여 드리고 싶다"며 쉬는 시간도 없이 내리 2시간 30분간 파트너와 호흡을 맞췄다. 오후 5시 30분, 이번에는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리셉션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차에 올랐다. 샤워할 시간도 없었다. 인터뷰는 호텔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뤄졌다.
◇"정단원 되니 불어로 말 걸더라"
'꿈의 발레단'인 BOP 단원이 된 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박세은은 "동료들이 불어로 말을 건다"고 했다. '예술의 도시' 파리의 자존심이자 상징인 BOP의 단원들은 준단원, 즉 이방인인 그에게 영어로 말했다. 합격하고 나서야 불어로 "이제 우리의 가족"이라며 축하인사를 했다. 엄격하고 보수적이기로 악명 높은 BOP에서 외국인인 그가 준단원 1년 만에 정단원이 된 것은 전례가 없던 일. 시험 보기 전에 "잘될 거야"라고 격려했던 동료들은 "정말 될 줄 몰랐다.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다"고 했다.

BOP는 오직 실력에 바탕을 둔 계급 사회이기도 하다. 제일 아래 등급인 카드리유(quadrille)에서부터 코리페(coryphée ), 쉬제(sujet), 프르미에르 당쇠르(premier danseur), 간판 무용수인 에투알(Les étoiles)까지 5단계다. 매 단계마다 승급 심사를 거쳐야 한다. 평소 실력은 고려하지 않고 시험 당일 상태만 보고 판단한다.
승급 시험 즈음, BOP 무용수들은 '아침엔 커피 한 잔, 점심엔 샐러드 한 입, 저녁엔 닭가슴살 한 쪽'만 먹는다. 그런데도 연습할 힘이 난다는 게 박세은의 설명. "살을 빼야 힘이 나요. 제가 원하는 몸의 라인이 나오면 만족을 느끼고, 그게 에너지가 되거든요."
◇"프랑스식으로 웃어라"
가장 까다로운 관문은 프랑스식 발레를 익히는 것이었다.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친 박세은은 러시아 스승에게 배웠다. "러시아 발레는 객석에 에너지를 최대한 뿌리라고 가르치거든요. 프랑스는 절제된 우아함을 강조하고요. 러시아식은 치아 8개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어야 하지만, 프랑스식은 웃기 싫으면 미소만 띠라고 해요."
양쪽 스타일을 다 배우게 된 박세은은 BOP의 에투알 오를리 뒤퐁(39)처럼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싶다고 했다. 뒤퐁은 다른 발레리나에 비하면 팔뚝도 굵고 어깨도 넓고 다리도 튼실하다. 박세은은 "뒤퐁은 신체적 결점이 있지만 보고 있으면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아름답게 춤을 춘다"며 "파리 스타일에 지지 않는 '빡세 스타일'로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