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화가의 자화상은 매우 독특합니다.
아마 보통 사람이 이런 자화상을 그렸다면,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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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화상은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고, 포즈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때론 두 사람을 그려 놓은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의 자화상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 속에 있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자신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종의 탐구였던 것이죠.
그래서 그의 자화상은 자신을 정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해체합니다.
그래서 누드로 표현한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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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8살의 짧은 삶 속에서도 100점 정도의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그 만큼이나 자신이 궁금했을까요?
그리고 그의 대상은 남자로 여자로 자연으로 아이들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그의 탐구의 의해 그려진 그림은 우리를 전혀 새로운 시각 속으로 이끕니다.
누구도 갖지 못했던 눈을 가졌던 이 천재화가의 이름은 에곤 쉴레입니다.

사실 에곤 쉴레는 관능적인 작품을 그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정말 많은 누드화들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그의 누드화들은 민망한 것들이 많습니다. 모델들은 적나라하고,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에곤 쉴레의 요구에 따라 모델은 취하기도 힘든 포즈를 하고 있고,, 눈빛도 정상이 아니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그의 누드화는 노골적이긴 하지만, 그다지 에로틱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말씀드렸듯 그는 누드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을 관찰하고 예술을 탐구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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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그렸습니다. '살아 있는' 예술작품 하나로 예술가는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내 그림들은 성스러운 사원 같은 곳에 걸려야 합니다.
어쩌면, 쉴레가 누드화를 많이 그렸던 것도, 그의 입장에서 보면, 옷이란 그림을 방해하는 요서 정도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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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가 그린 꽃은 현실의 꽃과는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매우 인상적이고 세련되고,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그가 그린 풍경화들은 보면 볼수록 눈을 사로잡습니다.
실제로 당시 에곤 쉴레의 작품에 회의적이었던 평론가조차도 그의 그림에 관한
재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인리히 베네슈 라는 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죠. 쉴레가 보여주는 색채와 형태의 아름다움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재능은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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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영상 제공 : 서정욱 갤러리 대표 서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