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윤택 연출 '햄릿'

입력 : 2009.11.12 03:10

"장례식은 즐겁게, 결혼식은 슬프게"… 희극 같은 비극

햄릿(윤정섭)은“죽음은 끝없는 잠, 내가 열렬히 원한 삶의 끝”이라고 말한다./연희단거리패 제공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세상만사 땡이로구나/ 이쁜 년도 못난 년도 (죽으면) 별수 없구나~"

무덤지기(김미숙)가 무덤 속에서 해골을 손에 들고 노래한다. 해골과 물을 가지고 자살과 타살을 설명하는 장면은 희극성이 강해 폭소가 터진다. 무덤에서 퍼올린 흙과 물이 만나 무대는 질척해진다. 이어지는 건 오필리어(신주연)의 장례식. 죽은 오필리어는 천진하게 웃으며 꽃을 뿌린다. 무덤지기들이 삽으로 흙을 퍼 던지고, 흙투성이 오필리어가 무덤에서 일어서는 장면은 잔상이 길었다.

연희단거리패의 《햄릿》(연출 이윤택)은 2001년 예술의전당 공연보다 더 강렬한 연극성으로 돌진해온다. 거대한 석실의 내부처럼 천마도를 그려넣은 배경막은 그대로다. 그러나 내년 4월 루마니아에서 열리는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 초청된 이번 《햄릿》은 더 끈끈하고 힘센 장치들로 표면장력이 커졌다.

상복을 '벗어던지고' 곧장 결혼 연회장으로 이어지는 대목, "장례식은 즐겁게, 결혼식을 슬프게"라는 클로디어스(이승헌)의 대사, 유령과 햄릿(윤정섭)의 만남에 사용한 줄인형극,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무덤, 코브라 같은 독기를 뿜어내는 등 햄릿의 세부 동작, 손전등과 낚시를 이용한 진실 추적이 이 비극을 더 단단하게 뭉쳐줬다. 의상은 현대적이었지만 꽹과리와 징 같은 악기, 죽음을 어루만지는 구음(口音)은 한국적이었다.

햄릿 역의 윤정섭은 에너지가 있는 배우였다. 초반에는 큰 손동작과 진폭 없는 목소리가 거슬렸지만 극이 깊어질수록 수레바퀴 속의 햄릿 그 자체가 되어갔다. 진실성이 전해지는 연기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2001년 무대에서 햄릿·오필리어로 짝을 이뤘던 이승헌·김소희는 클로디어스·거트루드가 돼 드라마에 안정감을 더했다. 특히 강약을 조절하며 매력적인 배역을 빚어낸 이승헌은 역대 최고의 클로디어스 중 한명으로 기록될 것 같다. 김미숙의 희극성과 리듬감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주연의 오필리어는 무르익지 않았고 관객이 기대하는 이미지와도 거리가 있었다.

이윤택의 이번 《햄릿》은 마무리가 인상적이었다. 피의 검투 장면이 끝나고 비극을 덮듯 무대 전체를 가린 천 위로 죽은 이들이 하나 둘 기어올라왔다. 무덤 밖으로 나온 얼굴들은 다 흙범벅이다. 흙먼지가 날리고 "아아아아아~" 구음이 울려 퍼지는데 햄릿이 객석을 돌아본다. 암전(暗轉).

▶22일까지 서울 대학로 눈빛극장. (02)763-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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