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고(古) 수도원에 울려퍼진 '에밀레종'

입력 : 2009.08.31 03:35

라인가우페스티벌서 서울바로크합주단 공연

900여년 역사의 유서 깊은 고(古)수도원이 근사한 야외음악당으로 변했다. 지난 26일 독일 비스바덴의 에버바흐(Eberbach) 수도원에서 열린 라인가우 페스티벌에 서울바로크합주단(음악감독 김민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이 초청받았다. 12세기 무렵 건립된 이 수도원은 움베르토 에코의 원작을 영화화한 《장미의 이름》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수도원 한복판을 지키고 있는 노목(老木) 곁에 흰색 천막을 드리우자, 어엿한 야외 가설무대로 변신했다. 네 겹으로 둘러선 수도원 건물 벽은 든든한 천연방벽 역할을 했고, 이따금 들리는 새의 지저귐이 효과음을 첨가했다.

무대에 올라선 서울바로크합주단은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 지그문트 크라우제(Krauze)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에밀레종〉으로 문을 열었다. 아기를 시주하여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을 만들었다는 신라 고종(古鐘)의 탄생에 얽힌 전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지난 2000년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위촉과 초연으로 빛을 보았다.

서울바로크합주단(음악감독 김민)이 지난 26일 독일 에버바흐 수도원에서 클라리넷 주자 제바스티안 만츠와 협연하고 있다. /라인가우 페스티벌 제공
서울바로크합주단(음악감독 김민)이 지난 26일 독일 에버바흐 수도원에서 클라리넷 주자 제바스티안 만츠와 협연하고 있다. /라인가우 페스티벌 제공

이 곡(曲)은 현악을 층층이 포개며 신비감을 빚어낸 뒤, '에밀레종'의 비탄을 현악의 흐느낌으로 표현하다가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더불어 고통도 해소된다. 더블베이스가 나지막하게 화성이나 리듬감을 규칙적으로 표현하는 통주저음(通奏低音) 역할을 맡았고, 후반부에는 한국 전통선율을 병렬적으로 가미했다. 서양 현대작곡가의 눈에 비친 동양의 전설에는 낭만적 정취가 가득했지만, 서울바로크합주단은 쉽게 달뜨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따뜻하게 그 사연을 풀어냈다.

라인가우 페스티벌은 독일의 대표적 포도 산지인 라인 강변의 와인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목적을 겸하고 있다. 그래서 축제 로고에도 예쁜 포도송이가 그려져 있다. 올해 음악제에서는 독일 하노버 출신의 23세 클라리넷 연주자인 제바스티안 만츠(Manz)를 발굴했다. 만츠는 로시니의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주, 주제와 변주〉에서 젊은 비르투오소(virtuoso·기교가 빼어난 명인)다운 솜씨와 호흡으로 매끄럽고 우아하게 소리의 선을 이어가면서, 다채롭게 변화하는 변주곡의 장점을 십분 살렸다.

만츠와 잇달아 두 곡을 협연한 서울바로크합주단은 2부에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작품 59-3 〈라주모프스키〉를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들려줬다. 단원 20여명의 통일된 활 놀림은 원곡인 현악 4중주보다 풍성하면서도, 원작만큼이나 날렵했다. 음악감독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민 명예교수는 1부에서는 지휘를, 2부에서는 악장 역할을 하면서 '1인 2역'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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