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시작은 초라했으나… 열정으로 이뤄낸 명품 음반사(社)

입력 : 2009.06.25 03:14
영국 음반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에드워드 페리(Perry)는 은행 대출 1만2000파운드를 받아 1980년 음반사를 차렸습니다. 회사 규모는 작았지만 명칭만큼은 야심만만하게 태양신(神)의 이름을 따서 '하이페리온(Hyperion)'이라고 지었습니다.

밤에는 택시를 몰면서 녹음 비용을 마련하고, 주말에는 집 부엌에서 배송용 음반을 직접 포장하면서 회사 살림을 꾸렸습니다. 중세 성가(聖歌) 음반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자금 여력이 생기자, 페리는 세계 최고의 가곡 성악가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남긴 700여곡의 가곡을 40장의 음반으로 모두 녹음한다는 '무모한 도전'이었지요.

하지만 뛰어난 가곡 반주자인 피아니스트 그레엄 존슨이 프로그램 선정을 맡고 재닛 베이커와 엘리 아멜링 등 노(老)가수들이 참여하면서 계획은 점차 구체화됩니다. 페터 슈라이어, 에디트 마티스, 토마스 햄슨 같은 기성 스타뿐 아니라 이언 보스트리지와 마티아스 괴르네 같은 신진들을 발굴하면서, 15년에 이르는 작업 끝에 2000년 무사히 대장정을 마칩니다.

음반사 ‘아르모니아 문디’의 창업자인 베르나르 쿠타스.
음반사 ‘아르모니아 문디’의 창업자인 베르나르 쿠타스.
폐암 투병 끝에 2003년 71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페리는 피아니스트 안젤라 휴이트의 바흐 건반 음악 전곡 녹음을 비롯해 굵직하면서도 올곧은 기획으로 "클래식 음반업계가 이뤄낸 최고의 성취 가운데 하나"(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라는 상찬을 받습니다.

20세 때 수도사로 종교에 귀의하기도 했던 베르나르 쿠타스(Cutaz)가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아를에서 음반사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를 차린 것이 1958년입니다. '세계의 조화'라는 이름의 이 음반사는 카운터테너 알프레드 델러와 전속 계약을 맺고, 르네상스와 바로크 등 고(古)음악에 전념하면서 외길을 걸었지요. 영국 작곡가 퍼셀의 오페라 《아더 왕》 음반 등 이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들을 집중 조명하면서, 지금은 세계 5개국에 자회사를 내고 3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유수의 음반사로 성장했습니다.

음반 시장이 부침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독립 음반사들은 음악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새로운 연주자를 발굴하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습니다. 베이스 연주자이자 재즈 애호가인 만프레트 아이허(Eicher)가 독일 뮌헨에서 음반사 ECM을 차린 것이 1968년입니다. ECM은 키스 재릿 같은 재즈 연주자뿐 아니라 스티브 라이히와 아르보 패르트 같은 현대음악 작곡가들과 꾸준히 협력하면서, 음반사의 이름을 명품 브랜드로 키워냈습니다. 1973년 스웨덴에서 설립된 비스(BIS)는 초기에 배송 비용을 아끼기 위해 유모차에 CD를 담아 대중교통을 타고 움직여야 할 정도였지만, 시벨리우스·닐센 등 북유럽 작품에서 강점을 보여주는 음반사로 평가받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녹음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대를 이어 음반에 종사하는 이들의 음악 사랑에서 섣불리 '클래식 음반의 죽음'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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