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콩쿠르 우승자들 불운 잇따라… 반 클라이번의 저주?

입력 : 2009.06.11 03:42
1958년 모스크바에서 차이콥스키 피아노 콩쿠르가 처음 열렸습니다.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린 직후, 러시아 예술의 위대함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야심 차게 창설한 대회였지요. 이 대회에서 23세로 우승하면서 일약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사람이 '적국(敵國)'인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입니다.

그 뒤 반 클라이번은 RCA 빅터사(社)와 전속 계약을 맺고,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그래미상까지 수상하며 승승장구합니다. 타임지는 그를 표지 인물로 다루면서 '러시아를 정복한 텍사스인'이라는 제목을 붙였지요.

하지만 반 클라이번은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을 위한 백악관 연주 등을 제외하면 1978년부터 사실상 기나긴 은둔에 들어갔습니다. 지나치게 젊은 나이에 많은 조명이 쏟아지면서 차근차근 성장할 기회를 놓친 탓이라는 분석입니다. 올해 75세인 반 클라이번은 자신의 이름을 딴 콩쿠르에서 우승자에게 시상하는 것 외에는 지극히 제한된 연주만 할 뿐입니다.

195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운집한 소련 청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하고 있다./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195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운집한 소련 청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하고 있다./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비슷한 징크스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수상자에게도 쫓아다닙니다. 1966년 우승자인 라두 루푸(루마니아)와 2001년 공동 1위 수상자인 올가 케른(러시아) 등을 제외하면 뚜렷한 스타 연주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 우승자들에게는 불운이 잇따랐습니다. 1977년 우승자 스티븐 디그루트(남아프리카공화국)는 1985년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폐결핵과 폐렴 등으로 투병 끝에 1989년 36세로 숨을 거뒀습니다. 1989년 19세로 최연소 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알렉세이 술타노프(러시아) 역시 수차례 발작과 왼팔 마비를 겪다가 35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때문에 음악계에서는 '반 클라이번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면 197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본선 2차에서 낙방했던 안젤라 휴잇(캐나다)은 현재 최고의 바흐 연주자로, 1989년 2차 통과에 실패했던 프랑스의 장 에플랑 바부제는 드뷔시 해석의 1인자로 각각 발돋움했습니다. 역시 콩쿠르 성적이 곧 예술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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