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이순신, 다시보기

입력 : 2009.04.20 10:25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 vs 뮤지컬 '이순신'

이순신 장군님 맞으세요?

막말하는 전라도 아저씨 VS 고뇌하는 소시민

'영웅을 기다리며'의 이순신은 영화 '황산벌'의 장군들과 '천군'의 주인공 이순신이 짬뽕된 캐릭터다. 그는 '황산벌'의 장군들처럼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툭하면 욕지거리를 난사하며, '천군'의 이순신처럼 엉뚱하고 코믹하다. 하물며 왜군 무사에게 너무 쉽게 생포당해 산속으로 끌려가는가 하면, 먹을 것을 탐하는 '허당'이지만, 드센 처녀 막딸을 만나서는 큰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한다.

'이순신'에 등장하는 이순신의 캐릭터는 위인전 속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던 용맹스런 장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딘지 다르다. 계속되는 전투와 부상으로 인해 악몽에 시달리는가 하면, 학살당한 섬 주민들을 대하며 전쟁광이 되어 미쳐가는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한다. 또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세상에 연민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하는 이순신. 그는 용감무쌍한 영웅의 갑옷을 걸쳤을 뿐 유약한 인간이다.

이순신을 새롭게 바라보는 이유

영웅을 재정의 한다 VS 한국의 아버지를 위로한다


'영웅을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엉뚱하고 코믹한 이순신은 공연이 막바지로 향할수록 숨겨져 있던 칼싸움 실력과 나라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꺼내놓는다. '영웅을 기다리며'가 이순신의 캐릭터를 마냥 희화적으로만 그리지 않은 까닭은 '우리 시대의 영웅상'을 재정의 하기 위해서다. 뮤지컬은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과 별다를 것 없는 이순신의 모습을 통해 '영웅'은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 확고한 의지와 추진력을 가진 누군가가 아닌 꿈과 신념, 가슴 속의 깊은 소리를 듣고 말할 수 있는 평범한 '우리'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순신'이 해석해낸 이순신은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글을 배우고 무예를 익힌 관료로서 더 큰 세상에 나아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사회적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이 부양해야 할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어깨가 짓눌린 가장이다. 이렇게 '이순신'은 이순신이라는 캐릭터를 평범한 행복을 위해 역사의 풍파를 견디고 스스로를 희생해야 했던 '조선의 아비'로 표현함으로써 영웅으로만 그려졌던 인간 이순신을 위로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2009년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과 자연스레 맞물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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