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작품중 기증품은 6%뿐(작가·유족 기증 제외)

입력 : 2009.03.31 03:27

미술품 기부문화의 황무지 대한민국
뉴욕현대미술관은 대표작 67%가 기증품
"작품을 돈으로만 여겨 기증자 예우도 부족"

조선일보가 국립미술관과 4개 광역시(市) 미술관의 소장품을 조사한 결과, 국내 국공립 미술관이 개인이나 기업에서 기증받은 작품은 극히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체 소장품 6421점 중 기증(이하 작가나 유족 기증 제외)된 작품이 385점(6%)에 그쳤다. 그 대부분은 개인이 기증한 것이고 기업이나 관련 재단으로는 삼성문화재단과 테트라펙 그룹이 각각 한 점씩 기증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 기증된 작품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높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관계자는 "기증 작품 내용을 보면 드로잉이나 판화가 많고, 유명 작가의 대표작이나 중요 작품은 별로 없다"고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가나아트가 기증한 200점을 빼면 기증작품이 전무하며, 기업으로는 하나은행이 이우환의 작품 한 점을 영구임대한 것이 유일하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재일교포 하정웅씨가 기증한 1865점을 제외하면 역시 개인이나 기업의 기증은 전무하다. 대전시립미술관은 기증받은 작품이 4점에 불과했는데, 최근 재일교포 하정웅씨가 208점을 기증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기증된 파블로 피카소의〈거울 앞의 소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기증된 파블로 피카소의〈거울 앞의 소녀〉
외국 유명 미술관들은 소장품 중 상당수가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기증받은 작품들이다. 유명 컬렉터들이 거액을 들여 수집한 작품을 공공미술관에 기증, 교육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대중과 나눠 갖는 것이다.

세계적인 미술관인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품 중 대표작을 추려 간행한 《모마 대표작(MoMA Highlights)》에 수록된 527점 중 기증 작품(작가나 유족 기증 제외)은 356점으로 전체의 67.6%를 차지하고 있다. 고흐의 〈올리브 나무〉와 앙리 마티스의 <댄스>를 비롯,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마르크 샤갈,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세계적인 거장의 걸작들이 수두룩하다.

경기도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최근 막을 내린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전(展)에 전시된 작품 90점은 모두 영국 애슈몰린(Ashmolean)뮤지엄에서 빌려왔는데 그중 뮤지엄이 자체 구입한 것은 단 두 점이다. 대표작인 '비 오는 날의 튈르리 정원' 등 30점은 개인이, 58점은 피사로 유족이 기증한 작품이다. 아람미술관 심규선 팀장은 "외국 미술관에 작품 기증이 많은 것은 알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기증된 앙리 마티스의〈댄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기증된 앙리 마티스의〈댄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 작품 구입 예산은 34억원으로 작년(43억)보다 9억원이나 줄었다. 다른 국공립 미술관 대부분의 작품 구입 예산도 줄거나 동결되고 있다. 그러나 관람객이 기대하는 작품 수준과 문화적 욕구는 계속 커지고 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이 기무사 터에 서울관을 세우게 되면 기존 소장품보다 훨씬 많은 소장품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국공립 미술관에 개인이나 기업의 작품 기증이 열악한 이유는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한국의 미술품 기부문화를 꼽을 수 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개인의 경우 공공미술관 기증보다는 대(代)를 이어 소유하거나 대부분 본인의 환금(換金)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며 "우리의 전반적인 문화 수준과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 공공미술관에 대한 기증보다는 창업주 가족이 운영하는 기업 미술관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또 작품 기증자에 대한 예우가 미흡한 것도 지적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한 한 컬렉터는 "작품 전시회를 가보면 정작 기증자의 이름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기증할 마음이 싹 가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공립미술관이 작품 기증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유물 기증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박물관이 평소 소장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기증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광수 문화예술위원장은 "외국에서는 공공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기 위해 일부러 작품을 사는 사람도 있다"면서 "기부나 기증을 위한 교육과 사회적인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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