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4.04 18:05
변시지 개인전 ‘바람의 귀환’, 5일부터 용산 갤러리끼
서거 10주기·전작도록 출판 기념전
거센 바람 부는 제주 향토 풍경 담은 작가


“아버지는 일본에 계실 적에도 당시 시류에 휩쓸리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길을 걷고자 하셨습니다. 평생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과 열정을 갈구하고 추구하셨던 분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아버지를 ‘폭풍의 화가’라고 불렀는지도요.”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이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10년간 상설 전시한 것으로 잘 알려진 작가 변시지의 대표작 ‘폭풍의 바다’(1991) 앞에서 변 화백의 아들 변정훈 아트시지재단 이사장이 생전 부친에 대해 설명했다.



우성(于城) 변시지(1926~2013)는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나 1931년 일본으로 이주,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작가는 이후 1956년까지 일본에서 머물며 후기인상주의를 공부하고 빛과 색채의 연관성을 인물화와 풍경화에 집중해 본인의 화법으로 구상하는 데 몰두했다.
변시지의 그림에는 당대 일본인 미술가와는 구별되는 활력과 대담한 자유가 흐르고 있었다. 이런 면모는 일찍이 인정받았는데, 1947년 ‘일본제국미술전’과 ‘광풍회전’에서 첫 입선을 했고, 다음 해에는 당시 일본 최고의 중앙 화단인 ‘제34회 광풍회전’에서 최연소로 최고(광풍)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또한 24세에는 광풍회의 심사위원을 맡아 일본인을 포함해 최연소 수상자이자 심사위원이 됐다.
작가는 1975년부터는 고향인 제주도에 정착해 제주대학교에 재직하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작가가 작고한 2013년까지의 시기를 이르러 이른바 ‘제주시절’이라 칭하는데, 변시지 고유의 황토빛 노란색 화면이 이 시기에 탄생한 것이다.
작가는 제주도에 머물며 일본 시절의 인상파적 사실주의 화풍이나 비원 시절의 극사실적 필법의 화법과는 대조되는 화법을 모색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향토성을 독창적인 화면으로 이루고자 했고, 이에 거친 황갈색조의 바탕 위에 검은 필선으로 제주의 풍토와 정서를 담아낸 ‘변시지표’ 회화가 완성됐다.
변시지의 풍경화는 바다에 에워싸인 섬이란 상황을 가장 실감 있게 암시하기 위해 화면에서 상단은 바다, 하단은 해안으로 구성된 상하 구도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화면은 기법상 황갈색의 전체적 화면으로 구성되거나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변모한 화면 상단의 어두운 톤과 하단의 밝은 톤의 대비를 통한 공간 분할로 이뤄진다. 돌담, 초가, 소나무, 말, 까마귀, 수평선, 돛배, 태양 등 제주의 소재를 작가만의 기법으로 구현해 이전 제주화와는 구별되는 대목이다.


갤러리끼(대표 이광기)와 아트시지재단(이사장 변정훈)은 5일부터 5월 20일까지 변시지 개인전 ‘바람 귀환’을 용산 갤러리끼에서 개최한다. 특히 올해 작가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작가의 전작도록이 출판돼 이를 기념하고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망하고자 마련된 자리로, 그의 제주시절(1975~2013)에 제작된 작품 출품된다. 그중에서도 변시지의 화풍이 확연히 변화하기 시작한 1978년 작품부터 영면하기 전까지의 작품을 폭넓게 선보인다. 전시장에 함께 전시된 전작도록에는 재단 측이 지난 30여 년에 걸쳐 모은 변시지의 작품 5400여 점과 자료 등이 담겨 있다.
이진명 평론가는 이번 전시 서문에서 “변시지가 제주로 오면서 발견한 것은 두 가지이다. 황혼녘이 되면 제주의 바다는 노을로 물들어 온풍경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노을은 모든 사물을 황금빛으로 물들여 피아(彼我)와 피차(彼此)의 차이를 상쇄시킨다. 이때 무차별의 세계가 연출된다. 평등원(平等園)이 열린다. 니체가 ‘우상의 황혼’에서 읊었던 장면이다. 변시지는 니체가 이야기한 장면을 제주에서 목격한다. 황금이 된 순간에 모든 것은 하나가 된다. 그 하나 속에서 진리가 발현한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변시지의 작품 두 점 ‘난무’(1997)와 ‘이대로 가는 길’(2006)이 지난 2006년부터 10년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한국관에 당시 생존 동양인 작가로는 최초로 상설 전시돼 화제가 된 바 있다. 작가의 주요 전시로는 1962년 경복궁 미술관 ‘국제자유미술전’,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미술81전’, 1981년 로마 아스트로라비오(Astrolabio) 갤러리 ‘변시지 초대전’, 1986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 1986년 제주 동인미술관 ‘제25회 출판기념전’, 2005년 제주기당미술관 ‘특별기획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