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다시 핀 꽃처럼… 사랑합니다

입력 : 2017.09.18 03:01

[올 추석, 가족 위한 연극 '장수상회']

"자식은 부모 가슴 속 돌덩어리" 노년에 활짝 핀 꽃 같은 사랑
극중 세월에 묻힌 비밀 밝혀지며 관객들 눈물샘도 자극해

연극 ‘장수상회’에서 까탈스러운 노신사 ‘성칠’ 역의 신구(왼쪽)와 ‘금님’ 역의 손숙. /스토리피

"사는 내내 기다렸어요. 행복이 오길.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을 때 금님씨가 와줬어요."

세월이 묻어나는 성칠의 주름 사이에 수줍은 미소가 사르르 번진다. 옆집에 이사 온 꽃집 주인 금님에게 그토록 툴툴거렸던 이가 맞는가 싶다. "절대로 넘어오지 마라"며 초등학생 자리 다툼하는 것처럼 바닥에 선을 긋고는 금님이 건넸던 개업 떡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던 성칠이다. 노년에 찾아온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하는 듯했다.

연극 '장수상회(연출 위성신)'는 지난 2015년 강제규 감독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꼬장꼬장하고 까칠한 노신사 김성칠(신구·우상전)이 옆집 여자 임금님(손숙·김지숙)을 만나게 되면서 마음의 문을 여는 순정을 진득하게 담았다. 올 추석, 가족을 위한 공연으로 추천할 만하다.

영화처럼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댈 수 없는 게 무대의 한계라지만, 관록 있는 배우들의 연기는 크게 과장하지 않고도 관객을 몰입시킨다. 성칠이 금님을 처음 만난 장면에서 첫눈에 반했다는 듯 자기도 모르게 빗자루를 놓치는 장면이나, 파스를 혼자 붙이는 시범을 보이려고 웃옷을 훌러덩 벗으면서 금님을 향해 얼굴도 못 쳐다보는 모습 등은 실제 옆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영화 속에선 잠깐 지나갔지만 연극에선 소위 '막핀꽃(reflorescence)' 장면이 도드라진다. 봄에 핀 꽃이 가을에 다시 피는 걸 뜻하는 용어다. 고목 위에 하얗게 피어오른 한 떨기 꽃을 향해 "금님씨 보여주려고 애지중지했다. 우리처럼 다시 한 번 꽃 피우는가 보다"라며 사랑 고백을 하는 모습에서 객석 여기저기서 "예쁘다"라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혼자 큰소리치고 주변과 타협하지 못하는 '어르신'의 등장은 낯설지가 않다. 영화 '그랜 토리노'(2009)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이웃과 담쌓은 참전용사 역할을 해내고, 이순재·윤소정 주연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에서도 주인공 만석은 눈만 마주치면 버럭대며 동네 무서운 '할배'가 된다. '장수상회'의 원작인 영화 '러블리, 스틸'(국내 2010년 개봉)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 풍파를 겪어낸 인생 자체가 극을 묵직하게 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세월에 묻힌 '비밀'이 관객의 마음을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휘젓는다. '장수상회'도 후반에 성칠이 갖고 있던 비밀이 밝혀지면서 관객들을 눈물의 회오리로 몰아넣는다.

극 중에서 "자식은 부모 가슴 안에 묵직하게 들어앉은 돌덩어리"라는 대사가 여러 번 반복된다. 극장을 떠나고 난 뒤 묵직하게 들어앉은 건 가족이란 존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진정성 있는 배우들의 연기다. 연극 '장수상회'는 오는 10월 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157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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