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변환의 전범…'신과 함께 : 저승편'

입력 : 2015.07.06 09:43
작가 주호민의 동명 웹툰이 바탕인 뮤지컬 '신과 함께 - 저승편'은 장르 변환의 전범으로 기록될 만하다.

저승∙이승∙신화 3부작으로 구성된 '신과 함께'는 한국의 민속 신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그 중 '저승편'은 저승의 국선 변호사 '진기한'이 평범하게 살다 죽은 소시민 '김자홍'을 변호하는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49일간의 험난한 저승시왕(저승의 10명의 신)과 재판 과정을 그린다.

이와 함께 저승차사(저승사자)가 군 복무 중 억울하게 죽은 '원귀'의 사연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얽힌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CG)이 점철된 영화로 옮긴다고 해도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관객 바로 앞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뮤지컬로는 감당이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당연히 앞섰다. 하지만 서울예술단(이사장 이용진)은 뮤지컬 옷으로 제대로 갈아입은 '신과 함께 - 저승편'을 내놓았다.

웹툰 '신과함께 - 저승편'은 총 740쪽 분량의 단행본 3권으로도 출간됐다. 그런데 러닝타임 170분(인터미션 20분 포함) 안에 대부분의 내용이 절묘하게 압축됐다.

극작을 맡은 작가 정영과 연출을 맡은 김광보의 조합을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구조상 직렬로 갈 수밖에 없는 웹툰의 이야기를 무대라는 입체적 공간 안에서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묘도 발휘한다.

예컨대 김자홍이 불효에 대한 죄를 다루는 한빙(寒氷) 지옥을 지날 때 군대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원귀의 사연을 함께 배치하는 점이 그렇다. 웹툰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순차적으로 읽어내려가야 하는, 나눠진 두 부분인데 무대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를 겹쳐 감동의 여운을 불린다.

이와 함께 웹툰을 보지 않아도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의 군더더기 없이 이미지와 짧은 설명만으로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힘도 좋다.

이를 가능케 한 건 무대의 힘도 크다. 특히 박동우의 무대 디자인과 정재진의 영상 디자인은 근대화 된 지옥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지름 17m 거대한 바퀴 모양으로 윤회사상을 담은 상징적인 무대, 80㎡의 LED 수평 스크린이 설치된 무대 바닥 등이 다양한 지옥을 역동적으로 표현한다. 뮤지컬 무대 바닥에 LED 수평 스크린을 삽입한 건 국내 뮤지컬계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바퀴에는 여러 신문 기사를 오려 붙여놓아 인간의 사건사고, 선악을 상징화했다.

웹툰과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들의 호연도 빠질 수 없다. '예쁜 남자' 캐릭터에서 점차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김다현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짓 연기도 불사하며, 엉뚱하면서도 천재적인 변호사 진기한 역을 능히 감당한다. 평소 연기 톤보다 과장된 연기를 보이는데 본래 만화 캐릭터인지라 넘치지 않는다.

저승차사 중 리더인 강림 역의 개성파 배우 송용진은 이 역과 100% 일치한다. tvN '삼시세끼'의 이서진을 연상케 하는, 겉은 다소 무뚝뚝하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듯한 강림이 그대로 배어나온다. 오글거리는 대사와 과장된 무술 장면 역시 만화라는 설정 탓에 오히려 시너지를 낸다. 평범한 소시민 '김자홍' 역에 김도빈은 안정감을 주는 연기로 극의 중심축을 붙잡는다.

킬링 넘버가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작곡가 조윤정과 음악감독 변희석이 협업한 음악의 질도 나쁘지 않다. 특히 진기한 역에는 좀 더 감정적인 팝, 강림 역에는 좀 더 록적인 음악이 사용되는 캐릭터 별로 맞춤한 넘버의 성격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서울예술단은 뮤지컬을, 한국적인 색깔을 가미한 가무극으로 부른다. 두 용어의 결정적인 차이로 내세우는 부분이 한국적인 군무인데 저승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군상의 동작을 이로 표현한 것이 절묘했다. 서울예술단의 정체성까지 붙잡은 셈이다.

웹툰에도 등장하는 '헬벅스' '김밥지옥' '주글' 등 여러 브랜드를 패러디한 저승 지옥의 생활 라이프는 잔재미를 준다. 기침을 하는 김자홍에게 진기한이 "혹시"라고 묻는 장면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떠올리게 하고, 두 사람이 갑자기 땅 밑으로 꺼지는 부분에서 '싱크홀'을 언급하는 등 사회 풍자적인 면도 자연스레 갖춘다.

무엇보다 원작의 가치관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김광보 연출은 '신과 함께'에 대해 "결국은 착하게 살자는 메시지의 작품"이라면서 "착하게 사는 모습을 반추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천상병 시인이 '귀천'에서 한 사람이 하늘로 떠나는 순간을 '소풍 끝내는 날'로 표현한 것의 바통을 이어 받는 듯, 저승으로 가는 과정을 '소풍'처럼 표현한다. 착하게 잘 산 사람에게 저승은 아마 그러할 듯하다.

그간 다소 대중성과 거리가 있는 작품을 내놓았다는 평을 받은 서울예술단은 마침내 대중성, 작품성, 아울러 가치와 교훈까지 골고루 갖춘 뮤지컬(또는 가무극)을 내놓았다.

12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진기한 김다현·박영수, 강림 송용진·조풍래, 김자홍 정동하·김도빈. 한국무용 안무가 김혜림, 현대무용 안무가 차진엽. 4만~8만원. 서울예술단 공연기획팀. 02-523-0986

장르 변환의 전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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