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다 싶을 때까지 기다려라, 몇 년이든"

입력 : 2014.06.03 02:56   |   수정 : 2014.06.03 09:51

-소프라노 홍혜경이 말하는 성공비결
콩쿠르 우승으로 배역 들어왔지만 목소리에 맞는 役 찾고자 데뷔 늦춰
메트 오페라 주역으로 30년 활약… 정상서 지혜롭게 내려올 준비해야

소프라노 홍혜경(57)은 보기와 달리 치밀한 사람이다. 세계 정상의 뉴욕 메트로폴리탄(이하 메트) 오페라에서 30년간 주역으로 활약한 경력만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스물다섯에 메트 오페라 콩쿠르 우승으로 따놓은 배역을 마다하고, 2년간 기다려 "내 것이다" 싶은 역할을 차지했다. 메트 음악감독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하는 모차르트 '티토왕의 자비' 주역 세르빌리아였다. "'커리어 필로소피(career philosophy)'가 중요합니다. 콩쿠르 우승하자마자 '룰루'의 창녀 역이 들어왔어요. 데뷔 때의 이미지가 결정적인데, 왜 짧은 치마 입고 나와 어울리지도 않는 역할을 해야 하나 싶었어요."

홍혜경은 이번 학기부터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마흔일곱에 비올레타를 처음 부르고, 50대에 열여섯 살 줄리엣을 노래한 홍혜경은“학생들이 막내아들 같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주완중 기자
홍혜경은 이번 학기부터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마흔일곱에 비올레타를 처음 부르고, 50대에 열여섯 살 줄리엣을 노래한 홍혜경은“학생들이 막내아들 같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주완중 기자
소프라노 홍혜경(57)은 보기와 달리 치밀한 사람이다. 세계 정상의 뉴욕 메트로폴리탄(이하 메트) 오페라에서 30년간 주역으로 활약한 경력만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스물다섯에 메트 오페라 콩쿠르 우승으로 따놓은 배역을 마다하고, 2년간 기다려 “내 것이다” 싶은 역할을 차지했다. /주완중 기자
멀리 내다보고 기다려라

지난주 만난 홍혜경은 "데뷔 전부터 '어떻게 하면 가수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고 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노래하다 금세 사라지는 성악가들을 많이 봤어요. 1년 또는 3년 만에 목이 상해 떠나는 가수들이 부지기수였어요." 홍혜경이 메트 데뷔를 2년 미룬 것도 목소리와 캐릭터에 맞는 역할을 찾기 위해서였다. '멀리 내다보고 기다린' 홍혜경은 '라 보엠'의 미미, '피가로의 결혼'의 알마비바 백작 부인과 수잔나,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투란도트'의 류 등 주역 가수로 메트에서만 350회 넘게 서는 스타가 됐다.

"1997년 '투란도트' 주인공 칼라프로 메트에 선 파바로티와 류 역으로 함께 공연하면서 파바로티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지만 서글펐어요. '이렇게 좋은 목소리도 가는구나.' 예순이 넘은 파바로티는 계단을 제대로 올라가지도 못했어요. 내려갈 때 잘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요."

자기 배역을 찾아라

홍혜경이 메트 데뷔 후 출연 제의를 가장 많이 받은 배역은 푸치니 '나비부인'의 초초상이었다. 하지만 홍혜경은 한 번도 초초상을 부르지 않았다. "초초상은 '보이스 킬러(voice killer)'예요. 그런 고음을 부르다 목소리가 간 사람을 많이 봤어요. 제 목소리엔 맞지 않는 역이지요." 홍혜경이 '티토왕의 자비'로 데뷔한 이후 고른 작품은 단역에 가까운 '피가로의 결혼'의 소녀 바르바리나였다. "노래는 악보로 2페이지도 안 돼요. 하지만 귀엽고 아름다운 사춘기 소녀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주·조역을 가리지 않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배역을 고른 것이다. 지금 홍혜경의 대표 배역 중 하나인 '비올레타'를 부른 것도 마흔일곱인 2004년이다.

영리하게 내려가도록 준비하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피가로의 결혼’에서 알마비바 백작부인으로 나선 홍혜경. /MET 제공
홍혜경은 "목소리에는 수명이 있다"고 했다. 소프라노의 경우, 25~35세는 자기 배역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35~45세는 성악가로서 국제적 경력을 쌓고, 45~55세엔 전성기를 누리다, 55세 이후엔 내리막길이라는 것.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경사가 더 급하기 때문에, 지혜가 더 필요합니다. 영리하게 노래해야지요."

홍혜경이 12일 메트 오페라 데뷔 30주년 기념 리사이틀을 갖는다. 메트 데뷔작인 '티토왕의 자비'를 비롯, '피가로의 결혼', '마농', '로미오와 줄리엣', '투란도트'와 '라 보엠', '라 트라비아타'의 주요 아리아를 부른다. 중간중간 마이크를 잡고 오페라에 얽힌 인생 얘기도 들려준다. 마지막 곡은 푸치니 '토스카'에서 골랐다. 토스카가 연인 카바라도시를 살리기 위해 경찰청장 스카르피아에게 애원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홍혜경은 "토스카는 무대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내 삶을 말해주는 아리아여서 골랐다"고 했다.

▷소프라노 홍혜경 리사이틀, 12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1577-5266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