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양요의 '참상'은 이러했다

입력 : 2010.12.18 14:52
이틀간에 걸친 공격에서 5개의 조선군 요새를 점령하거나 파괴했으며 이 결과 240여 조선군이 숨졌다. 이 사진은 베아토가 전장터의 참상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조선군의 시체를 한군데 모아놓고 촬영한 것이다. <펠리체 베아토, J. 폴 게티 뮤지엄, 이 사진은 윌슨센터의 일부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
이틀간에 걸친 공격에서 5개의 조선군 요새를 점령하거나 파괴했으며 이 결과 240여 조선군이 숨졌다. 이 사진은 베아토가 전장터의 참상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조선군의 시체를 한군데 모아놓고 촬영한 것이다. <펠리체 베아토, J. 폴 게티 뮤지엄, 이 사진은 윌슨센터의 일부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
호랑이 사냥꾼으로 불렸던 조선군들은 적에 잡히느니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에 미군에 의해 잡힌 조선군 포로는 2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부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로로 잡힌 사진의 조선군 2명은 자신들을 촬영하려하자 이에 완강히 저항하고 있다. <펠리체 베아토, J. 폴 게티 뮤지엄, 이 사진은 윌슨센터의 일부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
호랑이 사냥꾼으로 불렸던 조선군들은 적에 잡히느니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에 미군에 의해 잡힌 조선군 포로는 2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부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로로 잡힌 사진의 조선군 2명은 자신들을 촬영하려하자 이에 완강히 저항하고 있다. <펠리체 베아토, J. 폴 게티 뮤지엄, 이 사진은 윌슨센터의 일부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어재연 장군의 장군기를 배경으로 콜로라도함 선상의 미군 장교들이 기념사진촬영에 나서고 있다. 게티센터측은 사진설명에서 "이 전투는 사실상 (미국이) 실패한 것이며 불필요한 전사자를 낳게 했고 이결과 조선과의 협상이 좌절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 미군의 지원을 받아 기록사진 촬영에 나섰던 베아토는 포획한 조선군 장군기를 배경으로 기록사진을 남김으로써 마치 미군의 승전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라고 아울러 게티센터측은 소개하고 있다. 한편 이 장군기는 136년이 지난 2007년에 대한민국에 임대되는 형식으로 돌아왔다. <펠리체 베아토, J. 폴 게티 뮤지엄, 이 사진은 윌슨센터의 일부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어재연 장군의 장군기를 배경으로 콜로라도함 선상의 미군 장교들이 기념사진촬영에 나서고 있다. 게티센터측은 사진설명에서 "이 전투는 사실상 (미국이) 실패한 것이며 불필요한 전사자를 낳게 했고 이결과 조선과의 협상이 좌절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 미군의 지원을 받아 기록사진 촬영에 나섰던 베아토는 포획한 조선군 장군기를 배경으로 기록사진을 남김으로써 마치 미군의 승전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라고 아울러 게티센터측은 소개하고 있다. 한편 이 장군기는 136년이 지난 2007년에 대한민국에 임대되는 형식으로 돌아왔다. <펠리체 베아토, J. 폴 게티 뮤지엄, 이 사진은 윌슨센터의 일부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
조선 침공에 나선 콜로라도함내 미군 고위장교들이 조선지도 앞에서 작전계획을 짜고 있다. <펠리체 베아토, J. 폴 게티 뮤지엄, 이 사진은 윌슨센터의 일부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
조선 침공에 나선 콜로라도함내 미군 고위장교들이 조선지도 앞에서 작전계획을 짜고 있다. <펠리체 베아토, J. 폴 게티 뮤지엄, 이 사진은 윌슨센터의 일부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
미군측과 협상에 나선 조선 관리들의 모습이다. <펠리체 베아토, J. 폴 게티 뮤지엄, 이 사진은 윌슨센터의 일부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
미군측과 협상에 나선 조선 관리들의 모습이다. <펠리체 베아토, J. 폴 게티 뮤지엄, 이 사진은 윌슨센터의 일부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
신미양요(1871년)의 실상을 담은 기록 사진들이 공개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미 로스앤젤레스 소재 게티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이태리계 영국 사진작가 펠리체 베아토(1832-1909) 특별 전시전에서다.

특히 이 사진들은 구한말 쇄국정책을 펼쳐온 흥선대원군 당시 조선땅에 들어선 서구 세력에 의해 최초로 작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사료로서도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펠리체 베아토: 동쪽의 길을 찾은 사진작가(Felice Beato: A Photographer on the Eastern Road)”라는 주제로 이 특별전에서는 베아토가 생전 찾았던 터키, 중국, 일본, 버마 등의 아시안 국가들의 당시 모습과 함께 신미양요 당시 미 종군 기록 사진사로서 미해군함 콜로라도에 승선해 남긴 기록사진 총 47점 가운데 9점을 소개하고 있다.

이중 조선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과거 공개되지 않은 희귀자료들이다.


베아토 사진전은 내년 4월24일까지 진행된다.

게티센터 운영시간은 화~금요일 그리고 일요일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토요일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월요일과 설날, 독립기념일(7월4일), 추수감사절(11월 넷째주 목요일) 그리고 크리스마스(12월25일)은 휴무다.

주소는 1200 Getty Center Drive in Los Angeles, California. LA 다운타운에서 10번 프리웨이 서쪽 방면으로 가다 405번 샌디에고 프리웨이 북쪽 방면으로 갈아탄뒤 곧 이어 나타나는 게티 센터 드라이브((Getty Center Drive) 출구에서 내려 안내표지판을 따라 가면 된다. 입장료가 없는 대신 주차비가 15달러다.

문의: (310) 440-7300

신미양요의 역사적 배경

쇄국정책을 펼쳤던 구한말 흥선대원군 당시 발생한 조선과 미국 간의 전쟁이다.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1865년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며 입항하려다 이를 침략행위로 간주한 조선군민에 의해 저지되고 이 결과 셔먼호가 소각되고 선원 전원이 처형되자 미국은 이를 빌미로 배상과 통상을 요구하며 1871년 아시아 함대 5척을 동원해 조선 원정에 나섰다. 이것이 바로 신미양요다.

이 결과 조선군민 250여명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비록 조선은 이 전쟁에서 우세한 미군에 패했지만 미국 역시 조선의 끈질긴 저항으로 인해 조선과의 통상이라는 원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40여일만에 중국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이후 조선은 더욱 더 쇄국의 길로 접어들게 되며 서양인에 대한 조선인들의 거부감 역시 더 한층 깊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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