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원은 인터뷰 도중 '꼭 가보고 싶은 곳'을 묻는 질문에 "영화 '아바타'의 배경인 판도라 행성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같은 질문을 기자가 받았다면, '미니스(Minnie's)'라고 답할 것이다. 김주원이 노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던 바로 그 뮤지컬 '컨택트' 속 재즈바 말이다. 노란 드레스의 그녀는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그리스 신화속 신들이 판도라에게 선물한 아름다움과 예술적 재능이 그녀 안에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노란 드레스의 김주원은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김주원은 24일 인터뷰에서 "부상으로 인해 뮤지컬 '컨택트'와 국립발레단의 발레 공연 두편에 출연하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왼쪽 허벅지 근막 파열이다.
뮤지컬과 발레 팬들로선 한숨부터 나올 소식이다.
'컨택트'는 뮤지컬 마니아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브로드웨이 화제작이다. 2000년 토니어워즈에서 뮤지컬 부문 최우수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한국 초연 무대에서 노란 드레스의 주인공은 김주원에게 돌아갔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그녀는 200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은 바 있는 세계 최정상의 무용수다.
지난 8일 국내 첫 무대에서 노란 드레스의 발레리나는 재즈와 스윙 등 현대 무용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부상 고통 참고 공연 끝내
"지난 16일 공연 도중에 다친 것 같다. 어떤 동작을 하다가 갑자기 근육이 놀라 힘을 줬는데, 허벅지 뒤쪽에 통증이 왔다. 순간 걷지도 못할 정도였는데 공연을 끝까지 하기 위해 참아야 했다. 무대라는 게 신기하다. 긴장하니까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 다음날부터 목발 짚고 다녔다."
김주원은 바지를 살짝 올려 부상 부위를 보여줬다. 다리 뒤쪽에 짙은 멍자국이 올라와 있었다.
부상으로 인해 이달 말까지 열리는 '컨택트'의 남은 공연과, 29일부터 이틀간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선보일 발레 '신데렐라', 다음달 초 공연할 '차이코프스키'의 출연이 불발됐다.
회복에는 한 달 정도 걸린다. 병원에선 입원 재활을 권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김주원은 "저 대신 캐스팅된 후배들을 봐주기 위해 연습실에 계속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재활치료는 아침에 4시간, 저녁에 3~4시간씩 하루에 두 번 받는다. "치료하는데 공을 들이고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빨리 낫는 것 같다. 평소보다 두 세배로 치료를 열심히 받고 있다. 다음 작품들을 위해선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김주원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발레를 했다. 부상은 발레리나에게 끊이지 않는 불청객이다. 부상 때문에 발레리나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적도 있다. 2005년 여름, 왼쪽 발바닥 족저근막염이었다.
병원에선 "수술을 받더라도 앞으로 발레는 절대 할 수 없다"고 했다. 스스로 병에 대해 공부하면서 전문가를 수소문해 수술 대신 힘든 재활의 길을 택했다. "토슈즈를 다시 신는데 반년이 걸렸다. 지금도 약간의 통증은 있다."

▶ 3일을 쉬면 관객이 안다
국립발레단 소속의 김주원은 휴가 기간 중 '컨택트'에 출연했다. 김주원은 "12년 동안 이렇게 장기 휴가를 내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발레리나가 된 이후로 2박3일 이상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몸의 섬세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발가락 사이의 근육 하나하나까지 느낄 수 있어야 내가 원하는 움직임이 나온다.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말이 있다. '하루를 쉬면 자신이 알고, 이틀을 쉬면 주위 동료나 선생님이 안다.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안다'는 것이다. 그만큼 발레는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예술이다."
김주원은 러시아 볼쇼이발레학교 유학 시절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 "유일한 동양인이라 차별 받고, 가족들도 떨어져 있어서 힘든 시기였는데 이 책을 읽었다. 늘 옆에 두고 힘들 때마다 읽는 책이다."
'갈매기의 꿈'을 좋아하는 '김주원의 꿈'은 어떤 건지 궁금했다.
"거창한 계획이나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진 않았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컨택트'를 한 이유도 그렇다. 관객들에게 춤을 보여줄 때 만약 내가 좀 더 다양한 몸의 언어를 안다면 더 많은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12년 동안 똑같은 작품을 100번 넘게 무대에 올려도 관객들이 질리지 않고 찾아주는 이유도 뭔가 새롭거나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변화하고 더 많은 메시지를 담은 춤을 추고 싶은 게 내 꿈이다."
▶컨택트 재공연 제안 온다면
김주원은 스스로 "완벽한 무용수가 아니다"라고 했다. "최고라는 말, 1등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예술에 최고가 있을 수 없다. 100명이 같은 춤을 춰도 100가지의 춤이 나온다. 예술은 자기 자신의 색깔을 찾고 내 표현을 찾아가는 노력의 산물이다. 경쟁의 산물이 아니다."
김주원은 '컨택트'에 더이상 출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끝까지 같이 하지 못해 정말 많이 아쉽다"고 했다. '만약 국내 재공연 때 제의가 들어온다면 다시 하겠나'고 물었다. 김주원은 "다시 불러주신다면 영광이다. 그때 상황이나 여건이 맞는다면 당연히 하고 싶을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