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현재·미래 공존하는 수작… 무대화는 보완 필요"

입력 : 2009.11.03 05:55

장막 희곡 부문 심사평

총 71편의 장막 희곡 부문 응모작 중 심사위원들의 추천에 의해 본심에 오른 작품은 《푸르른 날에》 《극작가 박영호》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진성여왕》 《내일은 챔피언》 《1986 에딘버러》 등 6편이었다. 열띤 토론 끝에 최종 후보작은 《내일은 챔피언》 《푸르른 날에》의 두 편으로 압축되었다.

《내일은 챔피언》은 권투 챔피언을 꿈꾸는 주인공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과 구수한 서민들의 애환을 솜씨 있게 다룬 작품으로 맛깔스러운 대사나 인물 묘사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구성면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산만한 장면들과 주제의 깊이에서 풍속극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약점이 지적되었다.

노경식·임영웅·윤대성(왼쪽부터) 심사위원이 차범석희곡상 장막 희곡 부문을 심사하고 있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노경식·임영웅·윤대성(왼쪽부터) 심사위원이 차범석희곡상 장막 희곡 부문을 심사하고 있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푸르른 날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휘말린 어느 남녀의 사랑과 그 이후의 인생역정을 20여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돌아보는 희곡이다. 그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던 긴 사연들을 현재·과거·미래가 한 무대에 공존하는 구조로 그려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만남은 이미 용서의 경지를 뛰어넘은 화해의 눈물로 치환되는데 승려가 된 주인공이 그 모든 역사의 아픔을 가슴에 안은 채 담담하게 바라본다. 눈물과 감동이 있는 수준 높은 작품으로, 당선작으로 미는 데 심사위원들 모두 이견이 없었다. 단 이 작품이 무대화될 때는 상당한 연출의 기술이 요구되며 그에 따른 희곡의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응모작들을 보면서 많은 작가가 극작술의 기본을 익히지 않고 희곡에 도전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럴듯한 줄거리를 여러 장면으로 토막 내 대사로 쓴다고 다 희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작가가 영상시대의 영향 때문인지 얘기를 종횡무진으로 펼쳐놓기에 급급해 보였다.

긴 이야기는 압축하고, 인물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상적인 대사가 아닌 절제된 대사를 써야 하는 것이 희곡이다. 좋은 희곡을 쓰려면 극작술의 연마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을 남기면서 내년에도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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