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카' 박정자·손숙·윤석화의 유쾌한 수다
지난 4일 서울 삼청동에서 박정자(66)·손숙(64)·윤석화(52)를 만났다. 학력 파문 뒤 연극 《신의 아그네스》(연출 한지승)로 2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윤석화를 격려하는 자리였다. 박정자는 이 연극의 원장수녀로, 손숙은 정신과 의사로, 윤석화는 아그네스로 기억된다. 아기를 낳아 목졸라 죽인 수녀의 이야기를 담은 《신의 아그네스》는 1983년 윤석화의 출세작이었고, 지난해 박정자에게는 대사를 여러 번 놓쳐 상처로 남은 작품이다. ‘트로이카’로 불리는 세 배우는 12월 각자 다른 무대에 서지만 만나자마자 “왜 이렇게 이뻐졌어?” “표가 두 장밖에 안 팔려 비상 걸렸다” “목걸이를 경매에 내놓았는데 털 있는 남자와 털 없는 남자가 다투다 25만원에 팔렸지롱” 같은 수다를 주고받았다.
윤석화 =왜 이렇게 이뻐졌어? 나만 고생하고 있네.
박정자 =한참 넋두리 하고 오는 길이야. 배우 팔자는 참… (공연도 하고 표도 팔아야 하니) 북치고 장구쳐야 되니까.
손숙 =난 내일이라도 연극 그만둘 수 있어. 40년 연극 했는데 이젠 (사람들 만나며) 배우가 표 팔아야 하는 공연은 안 할 거야.
윤 =나도 그 말은 입밖에 안 나오더라.
박 =난 골프를 안 쳐. 골프 치는 사람들은 인생의 0순위가 골프잖아. 연극은 안 봐. (자기 목걸이 가리키며) 이거 생각나? 니가 사준 거.
윤 =거액 들었어. 백금이야.
손 =넌, 형님은 저런 거 사주고.
윤 =언니는 남자친구 많잖아.
손 =아무 실속없다 야.
윤 =표가 400장 팔렸대.
박 =브라보(bravo)!
손 =《잘자요 엄마》는 신통해. 첫날부터 죽 매진이야.
박 =입선전이 중요해. 석화야 넌 공연 때문에 내 공연 못 오잖니?
손 =16일 화요일? 그날 난 행사 있어요.

박 =두 사람이 공연 안 봐주니 너무 서운해. 손숙의 《잘자요 엄마》는 내가 딸(어머니를 맡은 손숙의 상대역) 바뀔 때마다 봤고, 《신의 아그네스》는 첫날 갈거야. 오래 살다보니, 너무 욕심은 내지 말자. 절제.
손 =여백이 필요해.
윤 =이번 작품에 여백 많습니다. 무대에 아무것도 없어요.
박 =몇년 전이지? 우리 셋이 지독하게 연극할 때야. 우리가 이렇게 지하 구석에서 살아서 되겠냐 싶어서 우리랑 윤소정씨 하고 ‘우리가 우리를 빛내주는 자리를 마련하자’ 했어. 가장 좋은 옷, 멋지게 차려입고 좋은 데서 밥먹고….
윤 =그때 입었던 옷 기억난다. 가슴 다 드러낸 드레스.
박 =그런데 소정이는 챙 넓은 모자 쓰고 엉뚱한 호텔에서 기다렸잖아. 다른 사람들은 우리더러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외우냐’ 하는데, 우리는 대사 외울 줄밖에 몰라. (웃음)
윤 =노래방 사건도 있었다. 아나운서 김동건 선생님 모시고 우리 셋이 가라오케를 갔는데 김 선생님이 그랬잖아. ‘여기 술먹을 줄 아는 사람 없으니 콜라 한 잔씩 가져오고 밴드 불러!’ (일동 웃음)
박 =이 여배우들 데리고 멋진 데서 식사하자는 말 꺼내는 멋진 남성이 한 명도 없으니 우리끼리 그랬던 거지.
윤 =(기자에게) 그거 꼭 쓰세요.
손 =요즘 춤을 배워. 나이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윤 =난 피아노 레슨을 받는데 속성반이야. 오늘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치고 왔어.
손 =내년 연말에 뭉칠까? 넌 피아노 치고 난 탱고 추고.
박 =그럼 난 탭댄스를 배우겠어!
윤 =관객 섬기는 자세라면 뭘 못하겠어요. 난 사과 광주리도 이겠다.
손 =난 공연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꼭 밥을 먹어. 왠지 헛헛해서.
박 =나두 먹어. 김치랑. 공연 전에는 밥이 안 들어가. 무거워져서.
윤 =난 눌은밥. 내가 한창 인기 있을 땐, (웃음) 집에 가면 하는 게 딱 정해져 있었어. 일단 김치찌개를 불에 올려놓고 샤워를 해. 하고 나오면 찌개가 바글바글 끓어. 그리고 계란 프라이 두 개 놓고 눌은밥이랑 먹는 거야. 비디오 한 편 보면서.
손 =멸치 넣은 김치찌개, 그게 최고야.
박 =칼칼하지.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 공연 개막이 열흘, 일주일, 사흘 다가오면 소용돌이를 겪지. 내가 지난해 《신의 아그네스》에서 실수할 때 옆에 손숙이 없었으면 어떻게 견뎠을까. 두고두고 고맙다. 윤석화는 손숙보다 마음이 더 쓰이고 가슴이 아프다. 내 식대로 언니 역할이라도 하지만, 그럼에도 두 동생은 나보다 더 똑똑하다. (손숙, 윤석화가 ‘애이~’ 손사래를 친다) 야, 내가 그건 스피커 대고 남대문 시장 앞에서도 말할 수 있다!
윤 =우리 ‘자화자찬 클럽’이라고 만들까?
손 =내가 가는 고려대 모임에 ‘잘난 여자 모임’이 있어.
박 =두 사람이 뭐 연극에 대한 애정이 식을 때도 있다고 얘기하지만, 그걸 내가 제일 경계하고 미워하고 싫어하지. 왜냐면 난 친구가 없고 기댈 데가 없거든. 우리는 서로 언덕이 필요해.
손 =우리 셋, 너무 달라요. 박정자 형님은 연극을 위해 태어난 분이죠. (박정자는 ‘어이구, 누구는?’ 한다) 연극 사랑을 따라갈 수가 없는데, 어떨 땐 그게 징그러워. 석화는 타고난 배우, 무대에서 빛날 수밖에 없는 여인이고. 그래도 인생이 좀 더 심플해졌으면 좋겠어. 난 성격이 좀 무덤덤해요. 석화 힘들 때 지켜볼 수밖에 없어 마음이 아팠어.
윤 =두 선배가 없었다면 난 벌판에 혼자 버려져 울고 있었겠지. 선배고 동료고, 다 힘들지 뭐. 눈빛만 보면 어떤지 알고. 숙이 언니는 부러우면서도 안쓰러워. 책임감 때문에 일 맡지 말고 좀 쉬었으면, 편안해졌으면. 난 까칠할 땐 까칠하거든요.
손 =나는 깍쟁이였는데 10년 전부터는 미움도, 희로애락도 없어졌어.
박 =(호통치듯) 배우가 왜 그래!
윤 =숙이 언니는 참 귀여워요. 박 선생님은 멋있고.
박 =나도 귀엽고 싶다.
손 =석화야, 귀여운 것과 멋있는 건 너무 차이 난다!
윤 =바꿔 그럼, 바꿔! (일동 웃음) 숙이 언니랑 나는 좀 칭얼대요. 그런데 선생님은 자존(自尊)을 가지고 자신을 봐요. 왜 그녀라고 쓸쓸함과 아픔과 외로움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건너뛰어요. 우리에게 많은 걸 주지요.
손 =형님, 나도 독거노인이야, 소녀가장이고.
박 =내가 뭘 그렇게 준 게 있는데?
윤 =오이지도 주지, 총각김치도 주지…. (일동 웃음)
▶박정자는 16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뮤직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공연한다. 손숙은 내년 1월 4일까지 원더스페이스에서 《잘자요 엄마》를 공연하고, 정신과 의사를 맡은 윤석화는 6일부터 설치극장 정미소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