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지켜본 우리 셋, 서로 눈빛만 봐도 알아요

입력 : 2008.12.06 03:20   |   수정 : 2008.12.06 07:44

'트로이카' 박정자·손숙·윤석화의 유쾌한 수다

지난 4일 서울 삼청동에서 박정자(66)·손숙(64)·윤석화(52)를 만났다. 학력 파문 뒤 연극 《신의 아그네스》(연출 한지승)로 2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윤석화를 격려하는 자리였다. 박정자는 이 연극의 원장수녀로, 손숙은 정신과 의사로, 윤석화는 아그네스로 기억된다. 아기를 낳아 목졸라 죽인 수녀의 이야기를 담은 《신의 아그네스》는 1983년 윤석화의 출세작이었고, 지난해 박정자에게는 대사를 여러 번 놓쳐 상처로 남은 작품이다. ‘트로이카’로 불리는 세 배우는 12월 각자 다른 무대에 서지만 만나자마자 “왜 이렇게 이뻐졌어?” “표가 두 장밖에 안 팔려 비상 걸렸다” “목걸이를 경매에 내놓았는데 털 있는 남자와 털 없는 남자가 다투다 25만원에 팔렸지롱” 같은 수다를 주고받았다.


윤석화 =왜 이렇게 이뻐졌어? 나만 고생하고 있네.

박정자 =한참 넋두리 하고 오는 길이야. 배우 팔자는 참… (공연도 하고 표도 팔아야 하니) 북치고 장구쳐야 되니까.

손숙 =난 내일이라도 연극 그만둘 수 있어. 40년 연극 했는데 이젠 (사람들 만나며) 배우가 표 팔아야 하는 공연은 안 할 거야. 

=나도 그 말은 입밖에 안 나오더라.

=난 골프를 안 쳐. 골프 치는 사람들은 인생의 0순위가 골프잖아. 연극은 안 봐. (자기 목걸이 가리키며) 이거 생각나? 니가 사준 거.

=거액 들었어. 백금이야.

=넌, 형님은 저런 거 사주고.

=언니는 남자친구 많잖아.

=아무 실속없다 야. 

=표가 400장 팔렸대.

=브라보(bravo)!

=《잘자요 엄마》는 신통해. 첫날부터 죽 매진이야.

=입선전이 중요해. 석화야 넌 공연 때문에 내 공연 못 오잖니?

=16일 화요일? 그날 난 행사 있어요. 

손숙, 윤석화, 박정자(왼쪽부터)는“우리가 이렇게 사진 찍으면 좋아할 사람 많다”고 했다. 각자 누군가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손숙, 윤석화, 박정자(왼쪽부터)는“우리가 이렇게 사진 찍으면 좋아할 사람 많다”고 했다. 각자 누군가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두 사람이 공연 안 봐주니 너무 서운해. 손숙의 《잘자요 엄마》는 내가 딸(어머니를 맡은 손숙의 상대역) 바뀔 때마다 봤고, 《신의 아그네스》는 첫날 갈거야. 오래 살다보니, 너무 욕심은 내지 말자. 절제.

=여백이 필요해.

=이번 작품에 여백 많습니다. 무대에 아무것도 없어요.

=몇년 전이지? 우리 셋이 지독하게 연극할 때야. 우리가 이렇게 지하 구석에서 살아서 되겠냐 싶어서 우리랑 윤소정씨 하고 ‘우리가 우리를 빛내주는 자리를 마련하자’ 했어. 가장 좋은 옷, 멋지게 차려입고 좋은 데서 밥먹고….

=그때 입었던 옷 기억난다. 가슴 다 드러낸 드레스.

=그런데 소정이는 챙 넓은 모자 쓰고 엉뚱한 호텔에서 기다렸잖아. 다른 사람들은 우리더러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외우냐’ 하는데, 우리는 대사 외울 줄밖에 몰라. (웃음)

=노래방 사건도 있었다. 아나운서 김동건 선생님 모시고 우리 셋이 가라오케를 갔는데 김 선생님이 그랬잖아. ‘여기 술먹을 줄 아는 사람 없으니 콜라 한 잔씩 가져오고 밴드 불러!’ (일동 웃음)

=이 여배우들 데리고 멋진 데서 식사하자는 말 꺼내는 멋진 남성이 한 명도 없으니 우리끼리 그랬던 거지.

=(기자에게) 그거 꼭 쓰세요.

=요즘 춤을 배워. 나이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난 피아노 레슨을 받는데 속성반이야. 오늘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치고 왔어.

=내년 연말에 뭉칠까? 넌 피아노 치고 난 탱고 추고.

=그럼 난 탭댄스를 배우겠어!

=관객 섬기는 자세라면 뭘 못하겠어요. 난 사과 광주리도 이겠다.

=난 공연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꼭 밥을 먹어. 왠지 헛헛해서.

=나두 먹어. 김치랑. 공연 전에는 밥이 안 들어가. 무거워져서.

=난 눌은밥. 내가 한창 인기 있을 땐, (웃음) 집에 가면 하는 게 딱 정해져 있었어. 일단 김치찌개를 불에 올려놓고 샤워를 해. 하고 나오면 찌개가 바글바글 끓어. 그리고 계란 프라이 두 개 놓고 눌은밥이랑 먹는 거야. 비디오 한 편 보면서.

=멸치 넣은 김치찌개, 그게 최고야.

=칼칼하지.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 공연 개막이 열흘, 일주일, 사흘 다가오면 소용돌이를 겪지. 내가 지난해 《신의 아그네스》에서 실수할 때 옆에 손숙이 없었으면 어떻게 견뎠을까. 두고두고 고맙다. 윤석화는 손숙보다 마음이 더 쓰이고 가슴이 아프다. 내 식대로 언니 역할이라도 하지만, 그럼에도 두 동생은 나보다 더 똑똑하다. (손숙, 윤석화가 ‘애이~’ 손사래를 친다) 야, 내가 그건 스피커 대고 남대문 시장 앞에서도 말할 수 있다!

=우리 ‘자화자찬 클럽’이라고 만들까?

=내가 가는 고려대 모임에 ‘잘난 여자 모임’이 있어.

박 =두 사람이 뭐 연극에 대한 애정이 식을 때도 있다고 얘기하지만, 그걸 내가 제일 경계하고 미워하고 싫어하지. 왜냐면 난 친구가 없고 기댈 데가 없거든. 우리는 서로 언덕이 필요해.

=우리 셋, 너무 달라요. 박정자 형님은 연극을 위해 태어난 분이죠. (박정자는 ‘어이구, 누구는?’ 한다) 연극 사랑을 따라갈 수가 없는데, 어떨 땐 그게 징그러워. 석화는 타고난 배우, 무대에서 빛날 수밖에 없는 여인이고. 그래도 인생이 좀 더 심플해졌으면 좋겠어. 난 성격이 좀 무덤덤해요. 석화 힘들 때 지켜볼 수밖에 없어 마음이 아팠어.

=두 선배가 없었다면 난 벌판에 혼자 버려져 울고 있었겠지. 선배고 동료고, 다 힘들지 뭐. 눈빛만 보면 어떤지 알고. 숙이 언니는 부러우면서도 안쓰러워. 책임감 때문에 일 맡지 말고 좀 쉬었으면, 편안해졌으면. 난 까칠할 땐 까칠하거든요.

=나는 깍쟁이였는데 10년 전부터는 미움도, 희로애락도 없어졌어.

=(호통치듯) 배우가 왜 그래!

=숙이 언니는 참 귀여워요. 박 선생님은 멋있고.

=나도 귀엽고 싶다.

=석화야, 귀여운 것과 멋있는 건 너무 차이 난다!

=바꿔 그럼, 바꿔! (일동 웃음) 숙이 언니랑 나는 좀 칭얼대요. 그런데 선생님은 자존(自尊)을 가지고 자신을 봐요. 왜 그녀라고 쓸쓸함과 아픔과 외로움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건너뛰어요. 우리에게 많은 걸 주지요.

=형님, 나도 독거노인이야, 소녀가장이고.

=내가 뭘 그렇게 준 게 있는데?

=오이지도 주지, 총각김치도 주지…. (일동 웃음)


▶박정자는 16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뮤직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공연한다. 손숙은 내년 1월 4일까지 원더스페이스에서 《잘자요 엄마》를 공연하고, 정신과 의사를 맡은 윤석화는 6일부터 설치극장 정미소 무대에 오른다. 

'트로이카' 박정자, 손숙, 윤석화의 유쾌한 수다. /이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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