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기 연주자 김동원
사물놀이 김덕수에게 배우고 클래식 요요마와는 협연도

◆1984년 3월
김동원씨는 자동차 보닛만 열어도 가슴이 뛰던 공학도였다. 중고생 때부터 항공대 교재를 어렵게 구해서 들여다보았고, 평생의 꿈은 비행기 정비였다. 울산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한 김씨는 신입생이던 1984년 3월 우연히 교내 탈춤 동아리의 공연을 보았다.
"사랑에 빠지는 데 따로 이유가 있을까요. 마구 엉클어져 있던 세계에서 탈출하는 느낌이었죠." 신입생 김씨는 동아리에 지원서를 냈고, 대학 시절 내내 풍물을 두드렸다. 1987년부터는 전국 각지로 우리 소리를 배우러 나섰다. 그는 "6년 동안 혼자서 꽤나 까불고 떠돌아다녔다"고 했다.
◆1990년 1월
김씨는 대학 시절만 해도 사물놀이에 비판적이었다. "마을 공동체의 세시 풍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풍물과는 달리, 사물놀이는 무대 공연을 위해 상업화한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애주 교수(서울대)의 '바람맞이 춤'에서 장단을 맡은 김덕수의 사물놀이를 보고 "그만 압도당했다"고 했다. "내공이 없으면 멀리 날아갈 수 없어요. 우리 전통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위대한 '선수들'과 마주친 거죠."
1990년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문을 두드렸지만, 첫 만남부터 스승 김덕수는 "석 달간 장구를 잡지 말라"고 했다. 그때부터 김씨는 한여름 10여 평 남짓의 좁은 연습실에서 온몸의 힘을 빼고 바닥에 널브러지거나, 무릎 꿇고 부모님을 소리 높여 부르며 통곡하는 훈련을 했다. "아버지, 어머니 멀쩡히 모두 살아 계신데 쉽지 않았죠. 이완(弛緩)이 있어야 다시 팽팽하게 조일 수 있다는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했어요." 그때부터 2004년까지 김씨는 '김덕수 사물놀이'의 연구 교육부장을 15년간 맡았다.
◆2000년 8월
서양 클래식 음악과 아시아 민속 음악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꿈꾸며 첼리스트 요요마가 1998년 창단한 실내악단이 실크로드 앙상블이다. 김씨도 2000년부터 이 앙상블에 합류해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일본 아이치 엑스포에서 2주간 공연을 하던 도중, 김씨는 '세계 각국의 타악기 연주자들이 모여서 입으로 장단을 표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한국과 인도인, 아랍과 라틴 음악을 전공하는 미국인 등 세계 각국의 타악기 연주자들이 입을 통해 갖가지 다채로운 리듬을 빚어내는 〈보커션(vocussion)〉은 이렇게 탄생했다. 2005년부터 호주의 프리 재즈 음악인들과 그룹 '다오름'을 결성해서 함께 연주하고 있는 그는 "전통을 옛것이나 박제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핵심(統)을 전한다(傳)'는 뜻"이라며 "전통 문화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동시에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과 호흡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