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을 사랑한 부자의 처절한 운명의 비가

입력 : 2008.11.19 15:34

27일부터 공연하는 서울시 오페라단의 '돈 카를로'

외젠 들라크루아, 산쥐스트 사원의 카알 대제(1831)/사진=세종문화회관
외젠 들라크루아, 산쥐스트 사원의 카알 대제(1831)/사진=세종문화회관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그 아버지와 결혼해야 했던 여인. 사랑하는 여인을 어머니라불러야 했던 남자. 단 한번도 아내의 따뜻한 시선을 받아 보지 못한 아버지. 오페라 ‘돈 카를로’는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욱 옥죄어 오는 운명의 덫에 걸린 불행했던 인물들의 실화를 중언, 또 부언하는 드라마이다.

주인공 돈 카를로는 스페인의 국왕으로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한 카알 5세(카알 대제) 의 손자이다. 돈 카를로의 아버지는 카알 대제의 아들 필리페 2세. 스페인의 왕자 카를로와 프랑스 왕 앙리 2세의 딸 엘리자베타 공주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 그러나 서로 전쟁중이었던 프랑스와 스페인은 엘리자베타 공주를 아들 대신 아버지 필리페2세와 결혼시킴으로서 정략적으로 전쟁을 마쳤다.  

사랑하는 여인이 하루아침에 자기의 새어머니가 되어, 매일 아버지 옆을 지키는 모습은 돈 카를로에게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독선적이고 완고했던 아버지 밑에서 유난히 심약했던 돈 카를로는 태산 같은 조부 카알 대제를 그리며 그의 무덤이 있는 산 쥐스트 사원에 매일 같이 처박혀 있었다.

수도사들의 기도소리조차 조부의 음성인양 언제나 환청에 시달렸다. 한편 왕은 왕비가 결코 자기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왕비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왕비였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미 증발해 버린 듯, 엘리자베타는 언제나 걸어 다니는 종이인형 같았다. 어디 마음 한 구석 의지할 데 없었던 카를로에게 유일한 위안은 어릴 적부터 함께 지냈던 친구 로드리고 후작이었다.
데니스 디드로, 경제와 정치의 백과사전(1751), 엘리자베타와 필리페2세/사진=세종문화회관
데니스 디드로, 경제와 정치의 백과사전(1751), 엘리자베타와 필리페2세/사진=세종문화회관
왕비를 향한 왕자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그는 카를로와 엘리자베타의 밀회를 주선했다.  내궁에서 단 둘이 만난 엘리자베타는 사랑을 하소연하는 카를로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진정으로 당신이 나를 차지하고 싶으면 당신 아버지를 죽이고 그 피뭍은 손으로 나를 결혼 제단으로 안내하라..’ 졸지에 아들의 연적이 되어 버린 왕은 아들에 대한 증오심이 점점 더 불어나기만 했고 아버지는 급기야 아들보다 로드리고를 더 신임하게 되었다.

한편 엘리자베타의 시중을 들 던 에볼리 공녀는 원래 부왕 필리페2세의 정부였지만,왕자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왕자와 왕비가 한때 열렬한 연인 사이였다는 것, 왕자가 아직도 왕비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볼리는 질투에 복받쳐 왕비가 왕자의 초상화를 보관하고 있던 보석함을 슬쩍 왕의 침실에 놔 둬 왕비를 모함했다. 정부는 아들을 짝사랑하고, 아내는 아들을 사랑하였으니 필리페2세의 신세도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아들을 눈엣 가시로 여겼던 아버지는 선친때부터 섭정을 해오던 노회한 종교재판장에게 아들을 죽이겠다고 했다. 종교재판장은 심약한 아들 대신 로드리고를 죽이라고 명한다. 로드리고는 플랑드르에서 마친 창궐하는 신흥 신교도 세력을 등에 업고 국왕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자에겐 위협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밀담이 있은 직후, 로드리고는 이름 모를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다. 친구까지 잃은 카를로는 엘리자베타와 재회하고는 이렇게 노래한다. ‘탄식과 슬픔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에서 우리의 사랑을 다시 이루리…’ 아버지 필리페2세가 아들을 잡으러 사원에 도착하였으나, 순간 카알 대제의 세의 무덤에서 선대왕의 망령이 나타나 카를로를 가로채간다.
알론소 산체스 코엘료, '이자벨라 클리라 유지니아' (1579)/사진=세종문화회관
알론소 산체스 코엘료, '이자벨라 클리라 유지니아' (1579)/사진=세종문화회관
이 작품은 유럽 북부의 ‘리벨룽의 반지’(바그너 작)에 필적하는 남부의 최고 수작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장중한가 하면 서정적이기도 하고, 무거운가 하면 경쾌하기도 한, 변화무쌍한 음악을 구사한 베르디의 공도 크지만 원작자 쉴러가 실화를 조금 변형하여 설정한 인물 한 사람, 로드리고 덕분에 등장 인물들의 입체적인 긴장관계가 그 어떤 역사물 보다도 돋보인다.

그를 중심으로 구교도와 신교도(국왕과 플랑드르), 종교와 정치(국왕과 종교재판관), 연인, 부부 및 내연의 여인간에 긴장 관계가 로드리고를 무게 중심으로 하여 입체적으로 엮이는 걸 볼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한 모든 사람들은 실존인물이다. 단, 로드리고만 제외하고. 로드리고는 바로 쉴러가 창조해 낸 인물이다. 로드리고라는 인물 하나를 더해 넣은 덕분에 쉴러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그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인물간의 역학관계를 명쾌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열 네살에 시집 온 엘리자베타는 비록 과거에는 아들을 사랑했을지 모르나 친정이었던 부르봉 왕가의 가르침에 따라 온화하고 후덕한 왕비의 역할을 무난히 해냈다. 디드로의 저서 ‘졍제와 정치의 백과사전’에 실린 그림에 의하면 필리페2세는 소 젖을 짜고 엘리자베타는 소에게 풀을 먹이는 그림이 있다.

그림에서 까지 왕을 돕는 왕비의 모습이 화목하게 그려졌던 걸 보면 아마도 엘리자베타는 말 그대로 제대로 가정 교육을 받은 부르봉 왕가의 여인답게 왕비로서의 소임을 성심껏 해 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지만 엘리자베타는 필리페 2세와의 사이에 딸도 둘을 낳았다. 

나와 결혼 하려거든 아버지를 죽이고 그 피뭍은 손으로 나를 결혼식의 제단으로 이끌라고 하던 결연한 여인. 이루어 지지 못한 사랑은 아름다운 비탄으로 장식되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남루한 일상만 남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림으로 남겨진 엘리자베타의 평온한 일상에는 오히려 그녀의 깊은 인고의 상처가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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