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 - 찬바람 부는 출판·공연·미술계 아우성
"시장 얼었는데 미술 세금내라니…" 거래 줄고 값도 떨어져 화랑가, 집단휴업 항의
지난 7일 서울 사간동·인사동 화랑가 곳곳에 "미술시장 진흥에 역행하는 세제 개편을 즉각 철회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붙었다. 한국화랑협회 소속 화랑들이 정부의 미술품 양도소득세 도입 방침에 항의하며 이날부터 이틀간 화랑 문을 닫고 관람객을 받지 않는 '집단휴업'을 벌인 것이다.
한국 미술계는 요즘 시름이 깊다. ▲정부는 양도세를 도입하려 하고 ▲최대 컬렉터였던 삼성그룹이 〈행복한 눈물〉 파동이후 더는 미술품을 사지 않기로 했을 뿐더러 ▲실물경기가 악화돼 미술시장에 한파가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시장 규모는 '단군 이래 최대 활황'이었다는 2007년에 4000억 원 규모였으나, 올해는 3000억 원을 밑돌 것으로 추정된다(최병식 경희대 교수 통계). 이현숙 화랑협회 회장은 "붕괴 직전이 아니라, 이미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경매시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국내 양대 미술품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은 지난해 경매 낙찰률이 80%를 웃돌았으나, 올해는 60% 안팎으로 떨어졌다. 작년에는 열 점 내놓으면 여덟아홉 점이 팔렸는데 올해는 여섯 점도 겨우 팔린다는 뜻이다.
화랑가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화상 A씨는 지난해 '블루칩 작가'로 불렸던 40~50대 작가들을 실명으로 거명하며 "작년에 그분들 그림을 사간 손님들이 올 여름 이후 '3분의 2 가격도 좋으니 되사달라'고 찾아오곤 한다"며 "본인들 사업이 힘들어서 돈이 급한 경우도 있고, 그림 값이 더 떨어질까 봐 빨리 털어버리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공연 - 외국 연주단 초청 줄줄이 포기… "내년엔 볼 게 없다"
내년 내한 공연 올해의 절반 뚝

"내년엔 볼 것이 없다!"
공연계가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기 침체와 환율 인상이 겹치면서 내년도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은 올해의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서울의 대표적 공연장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을 기준으로, 주요 기획사·공연장의 해외 오케스트라 초청 계획을 집계한 결과, 2008년 25개 악단에서 내년에는 12개 악단(48%)으로 내한 단체의 숫자는 뚝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이 사실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은 무엇보다 환율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 환율이 급등하면서 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은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 가량씩 적자를 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00여 명의 단원과 공연 스태프가 투입되는 '노동 집약형' 산업인 데다, 비행 운임과 공연 개런티 등 예산을 절감하기 힘든 고정 비용 비율이 높기 때문에 내년에는 차라리 공연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한 문화재단 관계자는 "좌석을 모두 매진시켜도 3억원 이상 손해 나는 공연을 굳이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가 없는 민간 공연 기획사들은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최근에는 하나의 공연을 두 곳 이상의 기획사에서 공동 주최하거나, 합병 및 제휴 움직임도 활발하다. A 기획사는 내년 주최 예정이던 모든 공연을 사실상 B 기획사에 일임하고 공동 주관하는 방향으로 사업 방향을 돌렸다. 기획사 관계자는 "소비층인 관객들이 문화 예술 분야에 지갑을 손쉽게 열지 않는 데다, 환율 인상으로 지출 부담은 오히려 늘었기 때문에 '올해만 넘기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부 공연 기획사에서는 감원 등 구조조정까지 검토 중이다.
'IMF 경제 위기' 이후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던 공연 시장이 다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높지만, 공연계의 체질 개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반성의 움직임도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씨는 "그동안 해외 대형 공연 유치와 기업 협찬 등 '몸집 불리기'에만 치중한 경향이 없지 않다. 국내 아티스트 조명과 창작물 개발을 통해 기초 체력과 내실부터 탄탄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출판 - 검증된 저자만 생존 '빈익빈' 현상 심해져
서점가 "올해 판매 30% 급감"

"검증된 저자의 책만이 살아남는다."
올해 출판계는 판매부수가 평균 30% 정도 급감한 가운데 인지도가 높은 저자들의 책만 살아남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10월 31일~11월 6일 교보문고와 YES24 등 전국의 온·오프라인 서점 11곳에서 팔린 부수를 모두 합한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는 이 같은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개밥바라기별》(황석영, 문학동네) 《바람의 화원 1》(이정명, 밀리언하우스) 《하악하악-이외수의 생존법》(이외수, 해냄) 《흐르는 강물처럼》(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잉글리시 리스타트 베이직》(I.A.리처즈·크리스틴 깁슨, 뉴런)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박경철, 리더스북)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황석영, 파울로 코엘료, 이외수, 이정명, 박경철씨 등 국내 출판계에서 두둑한 '판매 부수'를 이미 형성한 유명 저자들의 작품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가수 타블로의 소설 《당신의 조각들》(달)은 출간도 되기 전부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역시 저자 본인의 인지도와 방송에 기댄 측면이 크다. 지난해 방송에 이 소설이 먼저 소개돼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어학습서 《잉글리시…》도 원래는 60년 전에 태어난, 한마디로 '푹 삭은' 책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소비자들의 구매욕은 오히려 명품으로 쏠린다는 보고에서 보듯이 소비자들은 불황기에 검증된 것, 소장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쪽에 지갑을 여는 현상이 출판계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이름 없는 저자는 아이디어와 원고를 가지고도 책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 출판인은 "책 한 권당 보통 2000~3000부를 찍고, 그 후 2쇄, 3쇄 계속 찍어야 이익이 남는데 내로라하는 저자가 써도 1쇄를 다 팔까 말까 한다"며 "자연히 검증된 저자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체 출판시장 판매규모의 50%를 넘는 아동도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하다. 실익을 꼼꼼히 따지는 엄마들이 존 버닝햄이나 앤서니 브라운, 미하엘 엔데 같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들의 책이나 외국 문학상 수상작은 선뜻 구입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국내 창작동화에는 깐깐한 입장을 고수한다. 어린이책 시장에서 번역서가 40%를 차지하고, 그중 절반이 영어권 책인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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