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천상의 맛, 깊은 침묵, 진심어린 박수…

입력 : 2008.11.08 02:55

서울시향 말러교향곡 연주회

세기말의 교향곡 작곡가인 말러(Mahler)는 이승과 작별하기 직전, 마치 유언처럼 "모차르트"를 두 번 외쳤다고 한다. 길고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음악의 대명사로 불리는 말러도 결국은 모차르트의 해맑은 천상의 음악을 꿈꿨던 것일까? 지난 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서울시향의 연주회에서 그 해답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1부에서는 모차르트의 〈구도자의 장엄한 저녁기도 K.339〉를 연주했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의 능력이 빛났다. 지휘자 정명훈은 현악에서 활의 무게를 줄이면서 산뜻한 음색을 추구했다. 이 작품의 소위 '히트 곡'인 〈주님을 찬양하여라(Laudate Dominum)〉의 고귀한 정서가 일품이었고, 마지막 곡에선 모든 성부에 혈류가 통하는 듯 활기가 넘쳤다.

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연주회에서 소프라노 케이트 로열(왼쪽)과 지휘자 정명훈이 관객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연주회에서 소프라노 케이트 로열(왼쪽)과 지휘자 정명훈이 관객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2부 메인 코스로 연주된 말러 교향곡 4번은 작곡가의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온화하고 상냥한 편이다. 1악장은 '전설적(legendary)'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1965년 지휘자 조지 셸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녹음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18세기의 향취를 재현한 듯한 바이올린 파트의 우아한 뉘앙스와 목관의 고급스러운 음색이 돋보였다. 클라리넷 군은 악기를 90도로 치켜올리며 곡에 활기를 더했고, 타악기 군도 빛났다. 정명훈은 말러 교향곡 4번의 변덕스러운 템포와 강약을 체득한 듯이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악단을 자신감 있게 이끌었다.

중간 악장은 다소 모험적이었다. '죽음의 무도'인 2악장은 빠른 질주 속에서 스릴을 느끼게 했으나 앙상블에서 위태로운 순간도 더러 있었다. 더블베이스 파트는 정확도와 기민함이라는 점에서 발전의 여지를 많이 남겨 놓고 있었다. 3악장은 영원 불멸의 관념을 실현하려는 듯 매우 느린 박자를 적용했다. 일부 대목에서 힘겨워하는 기색도 엿보였지만, 속세(俗世)를 벗어난 경지가 느껴지는 마지막 부분에선 현악의 투명함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듯했다. 그 가파른 감정의 등고선을 소화해낸 악단의 저력이 돋보였다.

영국의 소프라노 케이트 로열은 한쪽 어깨를 드러낸 비대칭 블랙 드레스로 지휘자의 바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곡 '천상의 삶'을 전용한 4악장은 소프라노가 부르기에 음역이 너무 낮아 고생스러운 곡이다. 하지만 케이트 로열은 저음에서도 안정적인 발성을 보여주었고, 재치 있는 표정과 둥근 음색으로 천국의 황홀경을 연출했다. 관객들은 마지막 음의 여운이 사라진 한참 뒤에도 지휘자가 손을 내리기 전까지 알찬 침묵을 지키는 지혜를 보였다. 천상의 맛과 깊은 침묵, 그리고 진심 어린 박수가 어우러진 웰 메이드(well-made) 연주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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