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관객이 적어낸 멜로디 '즉석 연주' 건반 위의 대화

입력 : 2008.11.03 03:27

피아니스트 로버트 레빈 연주회

"오늘은 2008년 10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여러분이 선율을 적어주시면 제가 그 자리에서 즉흥 연주를 하면서 아름다운 밤을 만들어볼까요(웃음). 예술은 무엇보다도 소통(communication)에 대한 것입니다."

지난 10월 31일 호암아트홀. 무대 위로 올라온 피아니스트 로버트 레빈(Levin)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레빈의 말은 간단한 인사말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의 연주는 악보를 그대로 재생산하는 걸 뜻하지만, 모차르트의 당대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든 연주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음표를 그 자리에서 집어넣으며 더욱 풍부하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10여 분간 계속된 해설로 리사이틀은 연주 이전에 먼저 뜨거운 열강(熱講)이 됐다.
관객들이 적어낸 멜로디를 즉석에서 연주한 피아니스트 레빈. /호암아트홀 제공
관객들이 적어낸 멜로디를 즉석에서 연주한 피아니스트 레빈. /호암아트홀 제공
1부에서 피아노 소나타 15번과 '반짝반짝 작은 별'로 친숙한 〈'아, 어머님께 말씀드리지요'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등 모차르트 자신이 직접 즉흥적 요소를 써넣은 작품을 들려준 레빈은 2부에서 실제 관객들이 멜로디를 적어준 쪽지 더미에서 '복권 추첨'하듯이 4편을 골라냈다.

1~2부 사이의 중간 휴식 시간에 공연장측이 마련한 필기구와 쪽지에 관객이 간단하게 멜로디를 적을 수 있도록 했으며,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실제 모차르트가 즉흥 연주하던 장면의 선율을 재치 있게 써넣은 관객도 있었다. 레빈은 "음, 이 선율은 제게 무척 친숙하군요. 오늘은 다장조가 많네요"라고 웃으며 말한 뒤, "(즉흥 연주를 시작할 테니) 안전벨트를 꼭 묶어달라"고 말했다. 객석에선 다시 웃음이 터졌고, 레빈은 관객들의 쪽지를 바탕으로 조성과 박자, 강세와 뉘앙스를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며 '각본 없는 피아노 드라마'를 펼쳤다.

곧이어 모차르트가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피아노 소나타들까지 레빈 자신이 완성한 버전으로 들려줬다. 레빈은 즉흥 연주나 미완성 작품을 자신의 버전으로 완성하면서 음악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연결하는 '인디애나 존스'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냈다.

피아니스트 이대욱 교수(한양대)는 "징그러울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기계적이거나 판에 박힌 연주를 언제나 비판하면서 자기 자신의 생각과 상상력을 불어넣는 연주자"라고 말했다. 혁신인지 이단인지는 단언하기 힘들었지만, 연주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연주였다는 점에서 분명 '잊을 수 없는 10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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