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환희와 비탄… 또다른 비발디의 선율

입력 : 2008.11.01 03:06

카르미뇰라 내한 무대
'사계'연주는 구절구절 정성들여 세공에 힘쏟아
파비오 비온디, 장한나 '비발디 공연'도 줄이어

스트라빈스키는 말했다. 비발디(Vivaldi)는 똑같은 음악을 수없이 반복 양산한, 지루한 작곡가라고. 과연 그럴까.

지난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노 카르미뇰라(Carmig nola)와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내한 무대가 있었다. 이들은 〈현악과 콘티누오(continuo)를 위한 협주곡〉, 〈사계〉 같은, 온통 비발디 작품으로 레퍼토리를 꾸몄다. 〈현악과 콘티누오를 위한 신포니아 G장조〉의 2악장에서는 피치카토로 현을 튕기는 바이올린과 활로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서로 맞물리면서 작고도 영롱한 환상을 빚어냈다. 이들은 13명의 단출한 소(小)편성만으로도 격렬함과 나긋나긋함, 빠름과 느림, 환희와 비탄을 대비시키며 당대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베니스로 청중을 이끄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후기작인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첫 악장에서도 끊길 듯 다시 이어지는 변칙적 리듬감을 통해 '멋쟁이 스타일리스트' 비발디를 그렸다. 과거 비발디의 곡은 모두 똑같다고 하는 건, 오늘날 트로트나 팝 발라드는 판박이라고 하는 것처럼 절반만 진실일지도 모른다.
비발디의 곡으로 내한 공연을 가진 줄리아노 카르미뇰라(바이올린·왼쪽)와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 /유유클래식 제공
비발디의 곡으로 내한 공연을 가진 줄리아노 카르미뇰라(바이올린·왼쪽)와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 /유유클래식 제공
2부 〈사계〉는 작품을 통째로 다시 지어나가는 '재건축'보다는 방 구조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손보는 '리모델링'에 가까웠다. 일부 현대 악기 연주자의 짙은 화장기나 몇몇 '당대 연주'의 공격성 대신, 이들은 구절구절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세심하게 세공(細工)에 힘을 쏟았다.

독주 악기와 통주(通奏) 저음 악기 사이에 일종의 완충 역할로 류트(lute)를 추가해서 부드러움과 정감이 넘쳤고, 가수 이현우의 히트곡으로도 유명한 〈겨울〉 2악장에선 앞꾸밈음처럼 짧은 즉흥 연주로 시작하며 운치를 더했다.

바이올린 명인(名人) 카르미뇰라는 때때로 타악기처럼 구둣발로 가볍게 무대를 차면서 "옛 악기 연주자들은 공부에 비해 연주 실력은 떨어진다"는 편견을 말끔히 씻어냈다. 올가을 '비발디 잔치'는 또 다른 이탈리아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파비오 비온디(Biondi)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Europa Galante), 첼리스트 장한나와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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