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젊은 마법사, 서울을 홀리다

입력 : 2008.03.12 23:34   |   수정 : 2008.03.12 23:37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창단 75주년을 맞은 지난해, 영국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는 겹경사가 있었다. 우선 악단의 둥지인 로열 페스티벌 홀이 3년간의 리모델링 공사 끝에 재개관했다. 그리고 36세의 젊은 러시아 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Jurowski)를 음악 감독으로 맞아들였다. 런던의 공연장을 서울까지 옮겨올 수는 없었지만, 겹경사의 열기를 몰아서 지휘자가 왔다.

러시아의 젊은 마법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휘봉으로 서울 관객들을 홀렸다. 내한 공연 첫날인 지난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자신의 장기인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을 주(主)메뉴로 골랐다. 유로프스키는 40여 분 내내 불필요한 과장이나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대목에서 필요한 악기군(群)에 적확하게 지시를 내리면서, 변화무쌍한 박자의 율동(律動)을 치밀하게 통제했다.

유로프스키의 아버지 미하일 유로프스키도 라이프치히 오페라 극장의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다. 아들은 25세에 영국 로열 오페라 극장에서 '나부코'로 데뷔한 뒤, 영국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 음악 감독과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RNO) 수석 객원 지휘자 등을 거치며 세계 음악계에 급부상했다.
런던 심포니의 지휘자 게르기예프(러시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차기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핀란드) 등 지금 런던 음악계에는 북구 열풍이 불고 있다. 그 중핵에 있는 런던 필하모닉의 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러시아)가 내한 공연에서 강한 매력을 선보였다./크레디아 제공
런던 심포니의 지휘자 게르기예프(러시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차기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핀란드) 등 지금 런던 음악계에는 북구 열풍이 불고 있다. 그 중핵에 있는 런던 필하모닉의 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러시아)가 내한 공연에서 강한 매력을 선보였다./크레디아 제공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게 교향곡 7번이 있다면, 프로코피예프에게는 교향곡 5번이 있다. 2차 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 3월에 초연된 이 곡은 전쟁을 배경으로 작곡가 특유의 직선적인 공격성과 유쾌한 낙관이 녹아있다. 사회주의 모국(母國)에 대한 확신이 담겨있지만, 그 확신은 강요된 것일 수도 있다. 그의 형식주의는 종종 공산당의 비판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날 공연에서 악단이 춤출 때조차 지휘자는 춤추지 않았다. 2악장 흥겨운 춤곡 사이로 현악이 매끄럽게 미끄러져 내릴 때마다, 유로프스키는 직접 총보를 넘겨가며 꼼꼼하게 악단을 제어했다. 런던의 악단들은 때때로 탄탄한 앙상블에 비해 세심한 뉘앙스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군악대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이날 연주만큼은 절도 있고 호방하게 러시아 교향곡을 그려냈다. 1부에서는 영국의 현대 작곡가인 마크 앤서니 터니지(Turnage)의 '저녁 노래'와 월튼(Walton)의 비올라 협주곡을 선보였다. 비올라 협주곡을 협연한 리처드 용재 오닐은 다소 가녀린 음색으로 작품의 서정성을 제대로 포착했다.

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치고 런던의 새 집에 입주한 런던 필이 정작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연주를 가진 것은 의미심장했다. 우리 공연장의 음향 개선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상기시켰다.

(▶1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피아노 협연 백건우, 1577-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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