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2.10 19:59
[크리스 어콜달리티스(Chris Akordalitis)]
누드, 꽃, 열매 어우러진 온화한 사이프러스 풍경
예전에는 전시와 아트페어, 경매 등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작가의 명성과 입지가 좌우됐었다면, 소셜미디어가 주요한 정보 교류와 소통 채널로 자리 잡은 요즘은 온라인에서 작품이 먼저 소비되고 바이럴되며 작가가 주목받는 수순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독창적인 작업과 개성 넘치는 비주얼의 작품을 앞세워 온라인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작가(The hottest artist)’로 급부상 중인 해외의 이머징 아티스트들을 다루는 시리즈 ‘하티스트(hottest) 아티스트(artist)’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누드화라고 도발적이고 선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중해 섬나라 사이프러스 출신 작가 크리스 어콜달리티스(Chris Akordalitis‧33)는 보기만 해도 입꼬리가 쓱 올라가는 사랑스럽고도 위트 넘치는 누드를 그린다.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인물은 유쾌하고도 장난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에 꽃과 열매, 나무 등 자연 풍경이 어우러져 한층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처럼 기분 좋아지는 그의 회화는 미국, 유럽 등 컨템포러리 아트씬에 눈도장을 톡톡히 찍었다. 지난해 말에는 ‘언타이틀드 아트 마이애미 비치(Untitled Art Miami Beach)’에 참가해 좋은 결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리스 기반의 갤러리 디오호리아(Dio Horia)의 전속 작가로서 활동 중인 그는 매년 가시적인 성장을 이어오고 있어 주목할 만한 신진 작가다.
사이프러스에서 나고 자랐지만,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공부하며 독일에서 오래 거주했던 작가는 현재는 사이프러스 남서쪽에 위치한 파포스에서 사진작가인 약혼녀와 함께 작업하고 있다. 마당에 레몬 나무가 있는 그림 같은 아틀리에에서 작업 중인 그와 주고받은 문답이다.
─지난해 말 열린 ‘언타이틀드 아트 마이애미 비치’에 디오호리아와 함께 신작을 들고 참가했다. 디오호리아의 부스는 행사 기간 ‘아트시(Artsy)’가 선정한 ‘꼭 방문해야 할 부스 10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관람객 반응은 어땠나.
“비록 행사장에 직접 가진 못했으나, 디오호리아야 원래부터 고정 팬층이 두터운 덕분에 이번 아트페어 결과도 상당히 만족스럽게 나왔다고 갤러리로부터 전해 들었다. 내 작품에 대한 인지도나 문의가 지난해와는 양상이 또 달라졌다고 하더라.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해당 아트페어에는 두 번째로 참가한 거였다. 그마저도 첫 참가는 팬데믹 때문에 온라인으로밖에 열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현장 행사가 열려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반가웠다.”
─그리스 기반의 갤러리 디오호리아와 2019년부터 일하며 작가로서 국제적인 입지를 다지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행보를 보여오고 있다.
“갤러리 오너 마리나 브래노풀루(Marina Vranopoulou)가 내 작업을 보고 관심 있다며 먼저 연락이 왔을 때 나로서는 너무나 기뻤다. 많은 작가가 공감할 테지만, 갤러리와 협업한다는 것이 언제나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 주고받는 도움과 시너지 덕분에 상호 성장하고 있음을 감사히 여기며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디오호리아를 나의 ‘가족’이라고 불러도 무색하지 않다. 갤러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중 한 곳인 아테네에 위치해 있다.”
─나무와 꽃, 열매, 웃고 있는 사람 등의 모습을 지중해풍의 따뜻하고도 기분 좋은 밝은 색감으로 표현해오고 있다. 이들 컬러가 고향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 추측된다.
“특유의 색감을 통해 발랄하고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상을 자아내고자 했는데, 나는 이를 ‘사이프러스의 색’이라고 부르곤 한다. 나고 자란 고향인 사이프러스에 대한 색, 냄새, 모양 등이 나의 머릿속에 각인돼 캔버스 위로 발현되는 듯하다. 그림 속 캐릭터들은 그러한 과정 속에 탄생됐다. 실제로 사이프러스 곳곳에선 꽃과 열매를 자주 볼 수 있다. 캔버스 안의 인물이나 자연 풍경은 나의 추억에서 시작됐지만,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도 먼 기억 저편의 옅은 냄새나 맛 등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화면 속 인물들은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러한 형상의 인물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지금의 작업은 팬데믹이 시작되며 함께 시작됐다. 2020년 생애 첫 락다운을 겪었을 때, 독일에 있었는데, 집에 갇혀 작업실에 가지 못해 답답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다. 락다운이 해제되고 작업실로 가자마자 그린 그림이 바로 ‘Almost Out’(사진)이다. 실제로도 화면 속 인물은 실내로부터 야외로 나오려는 포즈를 하고 있다. 내 고유의 캐릭터, 인물이 밝고 행복한 바깥으로 나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아마 내 자신이 락다운을 겪으며 느낀 갑갑함을 해소하고자 카타르시스적인 그림을 그린 것 같다. 이제야 말할 수 있지만, 내 작업에 있어 그야말로 터닝포인트가 돼 준 그림이다. 이 그림을 시작으로 내 작업이 현재와 같은 형상을 갖게 됐으니 말이다. 또한 현재의 시리즈가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받게 된 연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락다운 때 사람들이 느꼈을 답답한 심정,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내 그림을 마주한 순간,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거라 짐작한다.”
─도발적인 누드를 다정하고 위트 있게 그려왔다. 나뭇가지와 꽃과 열매는 인물의 발가락과 가슴, 귀와 신체 구석구석 사이로 뻗어간다. 누드는 어떠한 의미인가.
“화면 속 인물들은 발가벗은 채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어 나약해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에너지가 파동 치는 그들의 신체를 소통의 도구로 삼고 있다. 이를테면, 마치 녹아내리듯 나무에 매달려 있는 등 자연과 교감하는 인물의 누드를 통해 장난스러움과 유머러스함을 더욱 배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뒤셀도르프 미술대학 재학 시, 2년간 토니 크랙(Tony Cragg)의 조각 수업을 들었다. 크랙은 당대 국제적인 조각가 중 하나다. 그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다면.
“수업 시간에 많은 연구와 스케치를 하며, 작업의 주제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사용하고자 하는 소재가 무엇인지를 잊지 말고 그에 몰두해야 한다는 뜻이다. 언젠가는 토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잎을 조각하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 잎을 찾아 반으로도 갈라보고 가까이에서 들여다도 보면서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펴봐야 한다’라고 말이다. 이 말이 새삼스레 크게 다가오더라. 토니가 강의실을 가로지르며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유화물감뿐만 아니라, 세라믹도 작업에 있어 중요한 매체다. 페인팅과 조각 사이의 상관성은 무엇인가.
“토니에게 조각 수업을 받을 당시 3D에 대해 배웠던 적이 있는데, 이는 내 회화 작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도 형상을 마치 조각을 하는 듯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를 통해 그림에 더욱 강렬한 느낌과 강조를 줄 수 있는 것 같다.”
─캔버스 앞으로 이끄는 예술적 영감과 동기는 어디에서 받나.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그들의 감정과 경험이 모두 내 작품의 소재다. 때론 고통일 수도, 희망과 사랑일 수도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듣고 볼 때면 나 또한 여러 감흥이 오가며 그야말로 화수분 같은 영감의 원천이 돼 준다.”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 올해 계획을 귀띔해준다면.
“이 인터뷰에서 처음 밝히는데, 다가오는 4월 7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엑스포 시카고(EXPO CHICAGO)에 솔로 부스가 차려질 예정이다. 얼마나 기대되고 떨리는지 모르겠다. 출품작 중 하나를 깜짝 공개하자면, ‘The Girl with the Dragon Fruits’(사진)란 제목의 최신작으로, 약간의 ‘반전’이 가미된 새로운 시리즈다.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요소를 포함한 신선하고도 강렬한 콘셉트의 연작이 될 것이다. 관람객과 보다 상호적으로 교감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