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정조의 비밀편지·김정희 글씨 등 100여점 첫 공개

입력 : 2009.12.26 02:39   |   수정 : 2009.12.26 19:58

'추사를 보는 열개의 눈'화봉갤러리 전시회서

새로 공개된 정조의 비밀편지. 1799년 12월 우의정 심환지에게 보낸 것으로“(내가 준 정보를) 표정이나 말에 드러내지 말라”고 썼다. / 화봉책박물관 제공

정조의 새로운 어찰(御札), 다산 정약용의 미공개 편지, 조희룡이 쓴 일반인 전기의 원본, 조선 후기 인두 그림의 창시자 박창규의 화화(火畵),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歲寒圖)'를 그릴 수 있도록 했던 책….

18~19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사상과 정서가 표현된 전국의 개인 소장 유물 100여 점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내년 1월 9일부터 2월 25일까지 화봉책박물관(관장 여승구) 주최로 서울 관훈동 화봉갤러리에서 열리는 '추사(秋史)를 보는 열 개의 눈' 전(展)에서다.

"절대 표정이나 말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게 어떠한가?(切勿漏示於色辭之間, 如何如何耶) 매번 소홀히 할까 걱정돼 이렇게 당부하는 것이니(每慮疎忽, 有此當付) 어찌 경이 반성할 점이 아니겠는가?(豈非卿自反處耶)"

죽기 6개월 전, 정조는 노론 벽파의 영수이자 우의정인 심환지에게 비밀 서찰을 보내면서도 그가 번번이 정보를 누설하는 것을 질책했다. 2년 전 '생각 없는 늙은이'라 혼냈던 게 별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 편지는 1799년 12월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 어찰로 이번에 처음 확인된 것이다. 이로써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서찰은 올 초 공개된 성균관대 소장 297통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 나온 30통 등 모두 328통이 드러난 셈이다.

소치 허련이 72세 때 부채 위에 그린‘선면소경’
어찰에서 정조는 신하와 짜고 치는 '연출 정치'의 진수를 보여 준다. 정조가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이 직분을 다하지 못한다는 전교를 내리자 심환지는 견책을 자청했다. 정조는 편지에서 "사퇴한다면 직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해야지 관례에 따라 그만둬서는 안 된다"고 코치한다.

정조는 노론 벽파의 한 문신에 대해 "부녀를 몰래 빼앗고 그 아비도 욕하며 무관에게 돈을 요구해 사리를 채웠다니 혀를 찰 노릇"이라며 "시장 사람들이 그 집에 찾아와 욕설을 하고 길 가는 사람도 침을 뱉는다"고 했다.

성균관의 권당(捲堂)에 대해서도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권당이란 성균관 유생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일제히 물러나는 집단시위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학문과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옛 자료 210점이 전시된다. 기획을 맡은 포럼 '그림과 책'의 박철상 공동대표는 "150점 이상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료"라고 말했다.

다산이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당할 때 친족 정수칠에게 보낸 편지도 공개된다. 다산은 편지에서 "죄인은 문을 닫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책을 보며 소일하고 있다"며 "근래 산에 눈빛이 아주 맑아 이따금 문을 열면 마음이 흐뭇해지니 다행스럽다"고 귀양살이의 단면을 토로했다.

상대방이 청한 차(茶)를 동봉한 듯 "이공봉(李供奉·이백)이 하루에 300잔을 마셨다는 얘기는 거짓말"이라며 너무 많이 마시지 말 것을 권한 뒤 "좁은 집에 다낭(차를 넣는 주머니)을 걸어두면 생활에 방해돼 아주 괴로울 것이므로 드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사 김정희의 문집으로 1868년에 간행된 활자본‘완당집’.
필사본만 전해지던 추사파 서화가 조희룡의 '호산외사(壺山外史)' 원본도 공개된다. 중인·화가·승려 등 43명의 행적을 기록한 이 책은 이후 '이향견문록' 등에 영향을 미친 여항인(閭巷人) 전기의 선구적인 저술로 평가되는데, 조희룡이 죽기 전까지 수정을 했던 이 원본은 기존 사본에 실리지 않았던 인물을 포함하고 있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희귀한 양식의 인두 그림도 선을 보인다. 전라도 남원 사람인 박창규의 '매조도(梅鳥圖)'다. 원래 중국에서 젓가락 등에 그림을 그릴 때 쓴 방법인데 인두로 종이에 그림을 그린 건 박창규가 처음이다. 당시 서울의 명문가 중 박창규의 화화를 소장하지 않은 집이 없었다고 한다.

추사의 제자인 소치 허련이 72세 때 붉은색 부채에 그린 그림인 '선면소경(扇面小景)'도 공개되는데, 화취(畵趣·그림의 정취)의 중요성을 논한 청나라 화가 방훈(方薰)의 이론을 그림과 함께 적었다.

추사와 직접 관련된 자료로는 국내에 완질을 소장한 곳이 두 곳밖에 없다고 알려진 문집 '완당집(阮堂集)'이 눈에 띈다. 1868년에 간행된 이 책은 일본인들이 싹쓸이해가 국내에선 매우 귀한 책이 됐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추사의 글씨들도 있다. 김해 김씨 김기종의 재실(齋室)에 있던 현판의 탁본 '귀로재(歸老齋)'는 졸박하면서도 힘찬 추사체의 정수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사라진 추사의 글씨가 사진 속에서 확인된 것도 있다. 시인 천수경은 지금의 서울 옥인동인 옥류동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인왕산 아래 깊숙한 골짜기여서 맑은 물이 흐르고 경치가 뛰어난 곳이었다. 천수경은 자기 호를 따 그곳을 '송석원(松石園)'이라 불렀다.

1817년 추사는 이곳 바위 위에 예서체로 '송석원'이라는 큰 글씨를 썼다. 세월이 흘러 송석원 자체가 땅속에 묻혀 자취를 찾을 수 없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1910년대 초 친일파 윤덕영이 그곳에 별장을 지었을 때의 사진이 공개된다. 놀랍게도 사진 속에선 '벽수산장'이라는 절벽 글씨 왼쪽에 '송석원'이라는 추사의 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 동영상 chosun.com

2010년 1월 9일부터 3월 1일까지 서울 관훈동 화봉책박물관에서 열리는 추사 김정희 연행(燕行) 200주년 기념 전시회 '추사를 보는 열 개의 눈'에서 처음 공개되는 전국 개인 소장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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