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CF 프리미엄 리포트] 6편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다, 백남준·세실리 브라운·이사라·윤종석

  • 김현 객원기자

입력 : 2026.04.08 17:30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다, 백남준·세실리 브라운·이사라·윤종석
[2026 ACF, AVENUEL ART FAIR]
4월 22일부터 잠실 롯데百 에비뉴엘
국내외 블루칩 작가 등 28인

조용히 숨을 고르며 한동안 침체돼 있던 국내 미술 경기가 점차 꿈틀거리며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지난해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은 1405억원으로 최근 3년 중 최고액을 기록하며 반등세를 보이고 있고, 데이미언 허스트(Damian Hirst), 조나스 우드(Jonas Wood) 등 메가스타 작가들의 전시가 연이어 한국을 찾는다. 국내 아트마켓에서는 여전히 블루칩 미술가에 대한 견고한 관심이 지속되며,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청년 작가를 향한 주목이 공존하는 가운데, 동시대 미술의 다양성과 지형도를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조선일보와 롯데백화점이 공동 주최하는 프리미엄 전시형 아트페어 ‘2026 ACF, AVENUEL ART FAIR’가 4월 22일부터 5월 31일까지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에서 개최된다. 유영국, 박서보, 윤형근, 김창열, 백남준, 최병소, 최명영, 이강소 등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얼굴들을 비롯해,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나라 요시토모(Yoshitomo Nara),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등 국제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큰손 작가들의 작품이 내걸린다. 이에 ‘ART CHOSUN’은 전시 개막을 앞두고, 국내외 현대미술의 생성과 전개 그리고 미래를 대표하는 참여 작가 28인의 작업 세계를 조망하는 기획 시리즈를 8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2026 ACF, AVENUEL ART FAIR' 포스터. /아트조선
 
◆아직도 미래, 백남준
 
텔레비전이 쌓이고, 화면이 깜빡인다. 기계 장치가 모여 탑을 이룬다. 저마다의 화면을 송출한다. 마침내 하나의 조형물이 된다. 백남준(1932~2006)은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던진 작가다. 그는 브라운관과 자석, 전자 장치 등을 활용해 기존 미술의 범주를 넘어서는 비디오 아트를 개척했다.
 
1960년대, 존 케이지(John Cage)와 플럭서스 활동을 통해 전위적인 예술 실험에 참여한 그는 음악, 퍼포먼스, 기술을 넘나들며 예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했다. 특히 텔레비전이라는 대중 매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이미지와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를 누구보다 앞서 감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남준, Lamp, 1994, Mixed Media, 56x25x32cm. /아트조선
 
백남준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연결’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이미지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교차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다수의 모니터를 쌓아 올린 비디오 조각은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닌 감각의 체계를 재편하는 매개임을 보여준다. 백남준은 위성 생중계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통해 물리적 거리를 초월한 실시간 예술을 구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전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는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을 예견한 시도로 읽힌다.
 
백남준은 기계와 인간, 동양과 서양,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긴장 관계를 드러내며, 그 사이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질서를 탐색한다. 불상 앞에 텔레비전을 배치하거나, 전통적 상징과 전자 매체를 병치하는 방식은 과거와 현재, 정신과 물질의 공존을 사유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실험을 넘어, 동시대 문명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확장된다. 백남준의 작품은 대중 곁에서 끝없이 회자되고 재평가되며, AI와 양자컴퓨터, 로봇 같은 첨단 기술에 도래한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서히 폭발하는 색채와 육체성, 세실리 브라운
 
“천천히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56)의 작품 앞에 서면 이러한 질문이 떠오른다. 화면 위에서 형상이 생성되고 해체된다. 세실리 브라운의 회화는 재현과 추상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격렬한 붓질과 겹겹이 쌓인 색채는 하나의 장면을 포착하는 동시에, 그것을 흐릿하게 지워버린다.
 
세실리 브라운의 작업은 얼핏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시간을 두고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인물과 신체, 풍경의 일부가 서서히 떠오른다. 이처럼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형상은 관람자로 하여금 능동적인 해석을 유도하며, 각기 다른 이미지를 생성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에 대해 “무엇인가를 붙잡고 그림 속으로 이끄는 요소가 있어 천천히 읽어내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
 
CECILY BROWN, Untitled, 2018, Monotype in oil on Lanaquarelle paper, 78.7x109.2cm. /아트조선
 
또한 세실리 브라운은 고전 회화와 표현주의 전통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며, 회화 매체의 가능성을 확장해왔다. 루벤스(Rubens)나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과 같은 고전 회화에서 발견되는 육체성과 에로티시즘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하며, 화면 속에 은밀하게 스며들게 한다. 이는 직접적인 재현을 회피하면서도 강렬한 감각을 환기하는 방식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끊임없이 붙든다.
 
CECILY BROWN, Christ Asleep During the Tempest (After Delacroix), 2016, Monotype with watercolor, pastel and pencil on Lanaquarelle paper, 76.2x101.6cm. /아트조선
 
세실리 브라운의 회화는 시간성을 내포한다. 한 번의 제스처로 완성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차례 덧칠하고 지워낸 흔적이 축적돼 있다. 이로 인해 화면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행위와 시간이 응축된 장으로 기능한다. 형상이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과정 자체가 곧 회화의 내용이 되는 셈이다.
 
이번 ‘2026 ACF, AVENUEL ART FAIR’에서는 강렬한 색채와 역동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 출품된다. 감각적인 리듬과 응축된 에너지가 전시장에 깊은 여운을 남기며, 회화라는 매체가 지닌 물질성과 감각적 경험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시선 너머로 확장되는 이사라의 원더랜드
 
이사라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인형의 형상을 재해석한 대표작 ‘Wonderland’로 최근 미술시장을 달구고 있는 작가 중 하나다. 현실에 대한 긍정에서부터 기인한 밝은 색채와 경쾌한 형상으로 판타지와 유토피아를 표현해 온 이사라에게 어릴 적 함께 지낸 인형은 작업에서의 주요한 소재 중 하나로, 행복한 기억의 꿈이자 잠시 쉬어가는 감정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 세계에서 인형이란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는 매개물, 심리적 감각을 촉발시키는 기능을 넘어, 능동적인 존재로 진화해 네온 컬러와 발랄한 분위기의 화면을 완성한다.
 
이사라, Wonderland, 2025, Acrylic on wood, 27.3x34.8cm. /아트조선
이사라, Wonderland, 2025, Acrylic on wood, 27.3x34.8cm. /아트조선
 
미니멀한 형식으로 인물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만화 속에서 볼 법한 구성이 인상적이지만 작업 초창기에는 오히려 사진처럼 대상을 묘사하는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현실에 대한 인식과 인형의 형상을 재해석하게 되며 지금의 작업이 탄생하게 됐다. 작품 속 백색의 장식적 부분을 특히 눈여겨볼 만한데, 이는 이사라가 흰색 물감을 칠한 것이 아닌 조각칼로 긁어낸 자국이다. 평면 회화를 작업하는데 조각칼을 사용한다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반면, 어쩌면 이사라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평면 너머의 세상, 원더랜드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감상이 동반된다.
 
이사라는 서울의 더 트리니티 갤러리, 삼원갤러리, 본 갤러리, 비스타 워커힐 호텔, 더 트리니티 갤러리, 노화랑, 경주 오아르 미술관, 경기 현대백화점 판교점 등의 공간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더현대서울, 서울옥션,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그룹전에 참여했다. 아트페어로는 국내 대표적인 Kiaf, Art Busan, 화랑미술제를 비롯해 대만의 Art Taipei, 독일의 Art Karlsruhe, 홍콩의 Affordable Art Fair에 참여하며 국제적인 아트마켓에서의 호응을 얻었다.
 
◆윤종석의 미술적 응시
 
“본다는 것은 내 몸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감정의 출발점이며, 그 감정의 잔재들이 그림이 된다.”
윤종석(56)은 296일 간의 유럽 여행을 통해 낯선 풍경과 마주하고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을 간직했다가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꺼내 자신만의 시각 언어로 재구성한다. 윤종석은 여행이란 물리적 이동을 넘어 내면을 통과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윤종석은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풍경 속에서 작가는 풀과 나무, 바람, 사물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완벽한 추상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과거에는 주사기를 이용한 점묘화 방식과 사물을 절묘하게 연출하고 조합해 작가만의 개성 있는 화면을 만들어냈었다면, 이번 ‘2026 ACF, AVENUEL ART FAIR’에서는 작가가 느낀 색의 정서를 적극 활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에서 기인한 것으로, 작가의 삶과 작품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고, 이는 다시 현장에서 관람객의 눈으로 재해석되며 예술적 체험이 무한히 재생산된다.
 
한편, 윤종석은 아트이슈프로젝트, 히든엠 갤러리, 갤러리 레오, 호리아트스페이스, 아이프, 도로시살롱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슈페리어 갤러리, 신세계갤러리, 아미 미술관, 뮤지엄 원, 아트스페이스 호서, 오산시립미술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그룹전을 가진 바 있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롯데뮤지엄, 코오롱, 하나은행, 외교통상부, 두바이왕실, 벤타코리아, (주)파라다이스, 아트센터 쿠, 가나아트센터, 보바스 기념병원, 골프존 문화재단, 스텐다드 차타드 은행, GS본사 등에 소장돼 있다. 문의 (02) 724-6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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