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CF 프리미엄 리포트] 5편 시대에 남을 아이콘, 로버트 인디애나·요시토모 나라·쿠사마 야요이

  • 김현 객원기자

입력 : 2026.04.06 17:50

시대에 남을 아이콘, 로버트 인디애나·요시토모 나라·쿠사마 야요이
[2026 ACF, AVENUEL ART FAIR]
4월 22일부터 잠실 롯데百 에비뉴엘
국내외 블루칩 작가 등 28인

조용히 숨을 고르며 한동안 침체돼 있던 국내 미술 경기가 점차 꿈틀거리며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지난해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은 1405억원으로 최근 3년 중 최고액을 기록하며 반등세를 보이고 있고, 데이미언 허스트(Damian Hirst), 조나스 우드(Jonas Wood) 등 메가스타 작가들의 전시가 연이어 한국을 찾는다. 국내 아트마켓에서는 여전히 블루칩 미술가에 대한 견고한 관심이 지속되며,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청년 작가를 향한 주목이 공존하는 가운데, 동시대 미술의 다양성과 지형도를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조선일보와 롯데백화점이 공동 주최하는 프리미엄 전시형 아트페어 ‘2026 ACF, AVENUEL ART FAIR’가 4월 22일부터 5월 31일까지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에서 개최된다. 유영국, 박서보, 윤형근, 김창열, 백남준, 최병소, 최명영, 이강소 등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얼굴들을 비롯해,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나라 요시토모(Yoshitomo Nara),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등 국제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큰손 작가들의 작품이 내걸린다. 이에 ‘ART CHOSUN’은 전시 개막을 앞두고, 국내외 현대미술의 생성과 전개 그리고 미래를 대표하는 참여 작가 28인의 작업 세계를 조망하는 기획 시리즈를 8회에 걸쳐 연재한다.
 
'2026 ACF, AVENUEL ART FAIR' 포스터. /아트조선
 
◆기울어진 ‘O’로 들여다보는 시대의 감정… 로버트 인디애나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1928~2018)의 작품을 처음 보면 단순한 단어와 선명한 색채만 남는다. 그러나 시간을 갖고 조금 더 바라보면, 그 단순함이 오히려 감정의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사물을 그리기보다 단어를 그렸고, 풍경을 묘사하기보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기호로 만들어냈다. 가장 유명한 ‘LOVE’ 연작은 1964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크리스마스 카드 의뢰를 계기로 대중적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작가는 이 이미지를 회화와 조각으로 확장해 발전시켰다. 현재 이 작품은 하나의 개별 이미지라기보다 시대에 남을 아이코닉한 상징이 됐다. 빨강, 파랑, 초록 같은 강렬한 색과 단정한 알파벳 배열은 멀리서 보면 거의 간판이나 표지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특히 기울어진 ‘O’자는 완벽하게 정돈된 네 글자 사이에서 균형을 살짝 무너뜨리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코 완벽하거나 안정된 상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2026 ACF, AVENUEL ART FAIR’에 출품되는 작품은 ‘HOPE’다, 작품에는 희망이라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지만, 텍스트 자체의 조형미와 색감, 1964년 뉴욕 현대미술관으로부터 널리 알려지게 된 과거의 시대상 등 복합적인 배경이 작품에 매력으로 녹아있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바로 ‘LOVE’와 마찬가지로 알파벳 ‘O'가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이 됐으며, 이번 출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소한 포인트까지 놓치지 않는다면 더욱 입체적인 감상이 가능하다.
 
로버트 인디애나, HOPE, 2009, Fabricated and painted, aluminum, 45.7x45.7x22.9cm
 

/아트조선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업은 흔히 팝아트로 분류되지만, 앤디 워홀이나 리히텐슈타인이 대중 이미지를 차용했다면, 로버트 인디애나는 언어 자체를 회화적 화면으로 끌어와 작품으로 승화했다. 숫자, 짧은 단어, 도로 표지판 같은 요소를 적극 차용해 하나의 물감처럼 사용하며, 동시에 개인적인 기억과 삶의 흔적은 붓이 된다. 그래서 로버트 인디애나의 그림은 밝고 단순해 보이지만 동시에 묘한 고독함을 준다. 또, 명확해 보이지만 쉽게 설명되지 않는 정서가 관람객 주변에 남는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스코히건 회화 조각 스쿨, 에든버러 칼리지 오브 아트 등에서 수학했고, 미국 페이스갤러리, 홍콩 페이스갤러리, 이탈리아 프로쿠라티에 베키에, 영국 요크셔 조각 공원, 미국 매케이 아트 뮤지엄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18년 작고 이후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된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나라 요시토모, Finding Hope, 2013,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paper, 22.8x15.9cm
 
◆이토록 순수한 저항, 요시토모 나라의 얼굴
 
‘2026 ACF, AVENUEL ART FAIR’에서 경매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고공행진 중인 요시토모 나라(Yoshitomo Nara·67)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지난 3월 31일 열린 서울옥션에서 요시토모 나라의 작품 ‘Nothing about it’(2016)‘이 사상 최초로 100억 원을 넘긴 150억 원에 낙찰되며 국내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추정가는 147억~220억 원이었다.
 
요시토모 나라의 그림 속 아이들은 귀엽지만, 동시에 어딘가 불편하고 낯설다. 큰 머리와 작은 몸,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얼굴, 그리고 정면을 바라보는 눈. 처음 보면 만화나 일러스트처럼 가볍게 보이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그 눈빛 속에 있는 감정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의 아이들은 웃고 있는 것 같다가도 화가 난 것 같고, 울고 있는 것 같다가도 무언가를 참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다.
 
요시토모 나라는 일본의 서브컬처, 록 음악, 만화, 애니메이션 같은 대중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지만, 그의 작업을 단순히 팝아트나 캐릭터 회화로만 보기는 어렵다. 화면 속 인물들은 귀여운 캐릭터라기보다, 외로움이나 반항심, 고독 같은 감정을 품은 하나의 자화상에 가깝다. 작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빌려 어른이 되면서 마음속에 쌓이는 감정, 사회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 그리고 순수함과 분노가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한 내면을 표현한다.
 
한편 요시토모 나라는 아이치현립예술대학과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수학했으며, 일본 요코하마 미술관, 가나가와현립근대미술관,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 미술관, 독일 쿤스트할레 에멘 등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음악이나 문학 같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로부터 영향받으며 성장한 요시토모 나라는 순수하면서도 반항적인 눈빛의 소녀와 동물 이미지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내면의 감정을 표현해 왔으며, 오늘날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요시토모 나라의 작품은 세계 주요 미술관과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는 국제 미술계에서 찬사를 받으며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됐다.
 
쿠사마 야요이, Pumpkin, 2000, Acrylic on canvas, 15.8x22.7cm
 
◆고통의 서사를 아득한 환상으로… 쿠사마 야요이
 
앞서 설명한 요시토모 나라가 사상 최초로 100억 원을 넘긴 낙찰가 150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경매 최고가를 갱신했다면,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97) 역시 같은 날 경매에서 100억 원을 넘기며 함께 주목받았다. 100호 크기 작품 ‘호박’(2015)이 104억 5000만 원에 낙찰됐다. 경매에서 100억 원을 최초로 넘긴 두 작가의 작품이 동시에 탄생한 셈이다.
 
‘백억 호박’의 화려함 뒤에는 감춰진 이면이 있다. 어린 시절, 매우 엄격한 성향의 어머니는 미술을 못하게 막았다. 또한 여러 학대와 스트레스를 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쿠사마 야요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에는 수천 개의 꽃이 자신의 몸을 뒤덮는 환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개인에 있어서는 트라우마가 정신적 착란으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쿠사마 야요이는 이를 미술적 영감으로 전환해 널리 알려진 원형 패턴의 작품이 탄생하는 계기로 치환한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은 다양한 크기의 원으로 뒤덮여있는 모양새다. 표면을 가득 채운 패턴은 단순한 장식적 무늬가 아니라, 작가가 평생 탐구해 온 ‘무한과 반복’의 개념을 상징한다. 하나의 점은 작고 미미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끝없이 반복될 때 개별성은 사라지고 거대한 전체 속으로 흡수된다. 쿠사마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 존재 역시 우주 속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생각, 즉 자아의 소멸과 무한으로의 확장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아트조선
 

쿠사마 야요이는 반복되는 점과 거울, 호박, 무한 공간 설치 작업 등을 통해 현대미술에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1950년대 후반에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전위미술과 퍼포먼스, 설치 작업을 선보이며 당시 미니멀리즘과 팝아트가 형성되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 언어를 확립했다. 1960년대 뉴욕에서 발표한 인피니티 넷(Infinity Net) 회화와 거울을 이용한 무한 공간 설치 작업은 이후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으며, 반복과 증식, 공간의 확장이라는 작업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 퐁피두 센터,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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