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CF 프리미엄 리포트] 3편 사물이 예술로 변모하는 순간, 윤병락·김창열·이상원

  • 김현 객원기자

입력 : 2026.04.01 15:26

사물이 예술로 변모하는 순간, 윤병락·김창열·이상원
[2026 ACF, AVENUEL ART FAIR]
4월 22일부터 잠실 롯데百 에비뉴엘
국내외 블루칩 작가 등 28인

조용히 숨을 고르며 한동안 침체돼 있던 국내 미술 경기가 점차 꿈틀거리며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지난해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은 1405억원으로 최근 3년 중 최고액을 기록하며 반등세를 보이고 있고, 데이미언 허스트(Damian Hirst), 조나스 우드(Jonas Wood) 등 메가스타 작가들의 전시가 연이어 한국을 찾는다. 국내 아트마켓에서는 여전히 블루칩 미술가에 대한 견고한 관심이 지속되며,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청년 작가를 향한 주목이 공존하는 가운데, 동시대 미술의 다양성과 지형도를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조선일보와 롯데백화점이 공동 주최하는 프리미엄 전시형 아트페어 ‘2026 ACF, AVENUEL ART FAIR’가 4월 22일부터 5월 31일까지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에서 개최된다. 유영국, 박서보, 윤형근, 김창열, 백남준, 최병소, 최명영, 이강소 등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얼굴들을 비롯해,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나라 요시토모(Yoshitomo Nara),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등 국제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큰손 작가들의 작품이 내걸린다. 이에 ‘ART CHOSUN’은 전시 개막을 앞두고, 국내외 현대미술의 생성과 전개 그리고 미래를 대표하는 참여 작가 28인의 작업 세계를 조망하는 기획 시리즈를 8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2026 ACF, AVENUEL ART FAIR' 포스터. /아트조선
 
◆사과와 사과가 아닌 모든 것, 윤병락
 
찬란한 빛깔을 머금은 사과가 시야에 가득 찬다. 궤짝 너머로 굴러떨어질 듯 생동감 넘친다. 작품을 실견하기 위해 전시공간을 찾은 관람객은 이 사과를 앞에 두고 쉽사리 작품 앞에서 떠나지 못한다.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붓질과 색의 층이 겹쳐져 있고, 멀리서 보면 사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매끈한 표면과 강한 현실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사과 껍질의 미묘한 색 변화, 반사되는 빛, 표면의 점과 얼룩까지 세밀하게 묘사돼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제 사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내놨다 하면 곧바로 완판되며 없어서 못 구하는 윤병락(58)의 사과 이야기다.
 
“제게 사과란 유년 시절의 기쁨을 동반하는 고향의 향수가 어린 과실입니다. 감상자 개인마다 추억과 기억은 다르겠지만, 행복을 소환하는 매개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햇빛, 비, 바람 등 자연의 수혜 속에 결실을 맺은 사과는 수확의 기쁨이자 풍요로움의 상징이죠. 온 우주의 에너지가 사과 한 알에 응축돼 있는 셈입니다. 햇살을 담뿍 받은 작품 속 사과를 보며 긍정적인 행복의 에너지가 전해지길 기대합니다.”
 
윤병락, 가을향기 YA 2539, 2025, Oil on Korean paper, 191.4x81.5cm /아트조선
 
윤병락은 접시에 놓인 과일을 화면에 옮기는 작업을 이어오다가 2003년경부터 사과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에게 사과는 곧 고향과도 같았다. 부친은 과수원을 운영했고 모친은 소년 윤병락의 교육을 위해 과일 행상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과밭이 지천으로 널린 경북 영천에서 어린 시절을 지낸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윤병락은 ‘사과 작가’로 알려지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과는 일종의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저도 작업 초창기에는 실험적인 것, 새로운 것 많이 시도 했어요”라고 말하는 윤병락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기초 훈련으로도 여겨지는 정물화로 돌아온다. 윤병락이 그리는 사과는 사물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회화의 본질적인 요소인 색, 빛, 표면, 공간, 시각적 인식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또한 직접 제작한 프레임으로 튀어나와 있는 듯한 입체성을 표현한다. 이는 작품이 단순히 평면 회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간을 점유하고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도록 의도한다. 어쩌면 윤병락이 그리고자 한 것은 사과가 아닌 사과 바깥의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상흔을 치유하는 영원의 물방울, 김창열
 
어떻게 보면 물방울은 회화라는 장르와 결합하기엔 다소 낯선 소재일수도 있다. 물감이 마르는 속도를 늦추고 캔버스를 젖게 하며 나무 프레임을 뒤틀리게 만든다. 회화라는 장르에서 물방울을 표현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 김창열(1929~2021)은 다르다. 그의 물방울은 영원하다. 마르지 않는다. 투명하고 다채로우며 이 세상 희로애락 인간사를 담고 있다. 김창열이 물방울에 천착한 배경은 무엇일까.
 
23년 ACS(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최된 김창열 개인전, 《물방울 연대(連帶) : The Water Drops from Paris to Korea》전시전경 /아트조선CS(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최된 김창열 개인전 전시전경 /아트조선
 

물이란 순수하고 온화하며 생명력을 지니면서도 강력한 힘과 에너지를 가진 요소다. 액체 상태의 물은 기화돼 기체가 되며, 다시 어딘가에 맺혀 액체로 돌아오길 거듭하며 같은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 김창열은 이러한 물의 여정에서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본다. 김창열은 물로써 상흔을 치유하고자 투명하고 둥근 세계로 관람객을 인도한다. 이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상실감과 잔인한 공허를 경험한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다.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학교 동급생 중 절반 넘게 잃었다는 작가는 “모든 것을 물방울로 용해하고 무(無)로 돌려보내고자 한다. 불안도 공포도 허(虛)로 전복해 평안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창열은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천자문을 작업에 끌어들인다. 천자문은 우주와 자연, 인간 삶의 이치 등에 관한 동양사상의 정수를 담은 고시(古詩)다. 조부로부터 배운 천자문과 유년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문명의 근본과 세상의 이치가 담긴 천자문을 깨치던 배움의 원점으로 돌아가 정신적 수행을 실현하고자 한 작가적 의지가 담겨있다. 그 위에는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물방울이 올려진다. 때문에 물방울의 투명함이 더욱 돋보이며 동시에 문자의 조형미 또한 강조돼 천자문은 김창열 작업 세계에서 주요한 변곡점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2026 ACF, AVENUEL ART FAIR’에서는 천자문이 담긴 작품 ‘SH95007’을 만나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왕성한 활동을 펼친 2000년대, 작고 이전의 2010년대 후반 작품에 이르기까지 김창열 작품의 변천사를 한자리에서 톺아볼 수 있다.
 
김창열, 회귀 Recurrence, 1997, Oil on canvas, 162x130.5cm /아트조선
김창열, SH95007, 1995, Oil and acrylic on hemp cloth, 81x116.3cm /아트조선
한편, 1961년 파리 비엔날레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성공적인 참여를 기회로, 이듬해 뉴욕으로 건너간 김창열은 판화 공부를 하며 당시 뉴욕 미술계의 거센 팝아트의 기세에 눌려 자신의 방향감을 상실했다고 기억한다. 이후 1969년 뉴욕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고 파리 근교의 작업실에서 재활용을 위해 씻어 놓은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이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로써 김창열은 우리가 아는 그 ‘물방울 작가’로 불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김창열은 생명의 근원인 물방울과 조부와의 기억을 환기하는 천자문,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고향의 기억 속의 모래 등을 캔버스로 가져와 자기 근원으로의 회귀를 통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후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다 2021년 92세의 나이로 작고한다.
 
◆행복한 여행자, 이상원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바쁜 현지인의 삶에서 한 걸음 떨어져 휴식처럼 풍경 속에 녹아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이상원(48)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선사하는 하나의 여행이 된다. 이상원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물러난 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을 소환한다. 꾸며내지 않는다. 근사한 척 하지 않는다. 가뿐하고 산뜻하게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이상원 작가 프로필 사진 /아트조선
 

파란 배경 위, 알록달록한 무언가가 보인다. 패턴을 표현한 작품인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보면 화면에 얽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푸른 수영장 수면 위 튜브를 껴안은 사람들이 동동 떠 있다. 물을 첨벙거린다. 개개인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다. 아니 확신한다. 이상원은 미니멀한 구도와 묘사로도 우리 삶의 단면을 포착해 이토록 생생한 감정을 전달해준다.
 
행복한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 풍경은 이런 모습일까? 인위적인 설정 없이 장면을 표현했을 뿐인데 관람객은 풍경 속 인물의 일원이 된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실제로 이상원은 한국, 태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며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바탕으로 군중을 표현해 왔다. 특히 현대인의 여가와 휴식의 풍경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해 온 ‘Restopia’ 연작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동작도, 옷도, 행동도 각기 다른 수많은 사람이 작품 안에 있다. 표정도, 목소리도, 목적도, 생김새도 다를 것이다. 간단한 터치 몇 번에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가 스며들어있다.
 
이상원, Floating People, 2025, Oil on canvas, ø90cm /아트조선
 

이상원, Floating Man, 2025, Oil on canvas, 131x131cm /아트조선
 

한편, 이번 ‘2026 ACF, AVENUEL ART FAIR’에서는 작가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순금 60그램 이상을 사용해 특별 제작한 ‘THE GOLD EDITION’과 협업 위스키가 8개 한정 판매된다. 위스키는 cmgg_spirits에서 제작했다. 이상원의 워킹맨은 사람인(人)자를 모티브로 걷는 형상을 단순화한 입체작업으로, 컨셉이나 형식적으로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기보다 주제를 시각화하는 과정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이엔드 방식으로 제작된 위스키와 함께 작품을 감상하며 작은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상원 작가의 순금 60그램 이상을 사용해 특별 제작한 ‘THE GOLD EDITION’과 협업 위스키 /아트조선
이상원 작가의 워킹맨 입체 작업 / 아트조선
이상원은 금호미술관, 두산갤러리, 영은미술관, 성곡미술관, 도잉아트, 학고재아트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소마미술관 등 주요 기관의 기획전에 참여해 왔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성곡미술관, 금호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문의 (02) 724-6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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