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용쥔 '불온한 사랑'

  • 박민선 에디터

입력 : 2025.10.30 17:27

●전시명: '불온한 사랑'
●기간: 10. 16 ─ 12. 6
●장소: 아라리오갤러리(율곡로 85)
불온한 사랑 Forbidden Love, 2025, oil on canvas, 227x182cm. /아라리오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2025년 10월 16일(목)부터 12월 6일(토)까지 시용쥔(SHIH Yung Chun, b. 1978, 대만) 개인전 《불온한 사랑》을 개최한다. 시용쥔이 한국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으로,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아우르는 작가의 신작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의 3개 층에 다채롭게 펼쳐 놓는다. 전시에서는 인형극 무대의 형태를 띤 입체 연작 , 각각의 무대 속 장면을 소재로 한 회화 연작, 그리고 전체의 서사를 영화적 형식으로 재구성한 영상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일련의 출품작은 호텔 룸과 복도, 거실, 주방, 바, 공연 무대, 도로 등 총 7개의 서로 다른 무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가상의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소재 삼는다. 작가 특유의 상상력에 의하여 환상적으로 연출된 장면들은 전시공간을 모태 삼아 하나의 커다란 세계관을 형성한다.
 
'불온한 사랑' 전시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불온한 사랑' 전시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대만의 경제 부흥기, 군부대 인근의 마을에서 자라난 시용쥔은 가파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빠르게 버려지고, 새롭게 대체되는 것들의 한시적인 가치를 연민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주로 자신의 유년기인 1980년대의 상품 패키지와 신문, 잡지 등에서 발견한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최근 작업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장난감은 시용쥔의 유년기 기억을 소환하는 대상인 동시에, 각자가 비롯된 시대와 장소의 흔적을 은연 중 내비치고 서로 간 복잡다단한 관계망을 형성함으로써 작품세계의 서사를 무한히 확장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시용쥔의 〈토이 세트 Toy Set〉(2025) 연작은 인형극 무대를 연상시키는 모습의 입체 작품으로, 주로 탁상형 규모의 디오라마(diorama) 형태를 띤다. 각각의 무대는 작가가 수집한 빈티지 상품 패키지와 인형, 장난감, 유아용 클레이를 재료 삼아 구성된다. 일련의 무대는 7개의 다양한 장소를 묘사하는데, 그로부터 발췌된 장면들이 회화 연작 및 영상 작품으로 재창조되며 각각의 작품 간 연결성을 드러낸다. 무대 안에 배치된 24개의 인형들은 서사를 전개하는 등장인물로서, 여러 매체로 변주되는 장면 가운데 거듭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명인 《불온한 사랑》은 저마다 다른 시대와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사물들이 하나의 무대 위에서 새롭게 형성하는 낯선 관계에 대한 은유이다. 동시에, 7개의 무대가 상징하는 다양한 관계 안에서의 사랑, 즉 모녀 간의 유대, 연인 간의 애정, 친구 사이의 우정, 꿈에 대한 열정의 이면에 도사리는 배신과 경쟁, 욕망 등 불온한 감정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불온한 사랑' 전시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시용쥔이 장난감을 작품세계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5년으로, 초기에는 주로 회화의 화면 위에서 벌어지는 특정한 상황 내에 장난감들을 배치하는 방법론을 취했다. 이후인 2022년부터 선보인 〈토이 패키징 Toy Packaging〉 연작에서 시용쥔은 자신이 상상한 장면들을 비닐 또는 상자 패키지 안에 압축하여 재포장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그로써 수집된 장난감들은 장면의 서사를 보다 본격적으로 주도하는 동시에, 대량생산된 상품으로서의 본질을 암시하는 역설적 성질을 지니게 된다. 나아가, 가장 최근의 〈토이 세트〉 연작은 장난감 패키지의 형태를 확장하여 인형극 무대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장난감들 사이의 관계 및 상호작용을 보다 강조하는 효과를 드러낸다. 
 
입체적인 무대 장치 속 다양한 인형과 사물들을 활용해 일종의 부조리극과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행위를 통하여, 작가는 사회문화적 현실의 거대한 질서를 스스로의 미시적 우주 내에 재배치한다. 일련의 무대는 선전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회화 연작과 시간성을 지닌 영상의 형식으로 재구성된다. 그러한 작업 과정 가운데, 정지된 사물의 형태 안에 내재하여 있던 실제의 역사는 작품세계 내에서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허구의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시용쥔은 작품을 통하여 단일하고 선형적인 서사를 제시하기보다, 보는 이 각자의 서로 다른 인식에 기반하여 주제의식을 다각도로 해석하고 성찰하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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