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10.30 16:40
차연서·허지은 2인전 ‘sent in spun found’
12월 1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누군가에게 또는 어딘가로 보내지거나, 역으로 보내는 연쇄적 흐름에서 남겨지고 발견되는 것들에 주목한 전시 ‘sent in spun found’가 12월 1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에서 열린다. 뉴욕 기반의 한국계 미국인 작가 허지은과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차연서가 참여한다.
차연서와 허지은은 각자의 사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가족, 종교, 사회적 현상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정동을 독자적인 태도와 시각 언어로 이야기한다. 두 작가의 서사는 직접적으로 교차하지 않지만, 이들의 작업은 ‘특정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경계의 횡단’, 혹은 이를 향한 거듭되는 고리에 기인한다. 허지은의 작업은 더 나은 삶과 종교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태평양을 횡단한 가족사로부터 비롯되며, 차연서의 작업은 아버지가 남긴 것을 재료삼아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많은 존재의 비통함을 위로하고 보살핀다.
전시장 외부 윈도우 갤러리에 자리한 허지은의 ‘라이에로 가는 길’(2025)은 전시의 입구이자 출구의 역할을 한다. 허지은은 자신의 성장 배경인 몰몬교(Mormonism)를 바탕으로, 종교 체계의 유산에 대해 꾸준히 탐구해왔다.
차연서는 몸과 연결된 삶 그리고 끊어진 삶의 주변을 맴돌며 그것들을 다시 연결하고 돌본다. 특히 작가가 최근 몇 년간 집중하고 있는 닥종이 작업은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 후 남겨진 닥종이 무더기를 처리하려는 방도로 시작됐다. 작가에게 떠넘겨지듯 남겨진 아버지의 종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오려지고 직조돼, 서로의 꼬리를 물며 다시 시작되는 다채로운 색의 뱀으로 변모한다.
김언희와 실비아 플라스 (Sylvia Plath)의 시를 참조하고 각색하여 쓰여진 퍼포먼스의 서사와 구성은 서로 엮인 종이들이 만들어내는 패턴과 상응하며, 관능적이면서도 들끓고 가라앉는 파괴와 부활의 순환을 말하는 시의 구절들을 인용한다. 이로써 전시장은 부서진 존재들이 다시 태어나고 각자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장소가 된다. 한편, 차연서는 녹으로 얼룩진 흰 가면을 허공에 매달아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몸들이 그 자체로 이 공간에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낡은 손대패를 지지체로 삼아 만든 ‘혀 조각’과 그에 얽혀 있는 핥기, 씻기, 대패질하여 다듬는 행위를 통해 초대의 제스처를 확장한다. 작가, 퍼포머, 관객을 막론하고 전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몸들의 등장을 환대하는 것이다.
저녁 6시에는 전시장의 빛이 바뀌고 색이 사라진다. 차연서의 영상 속 비평가 양효실의 낭독은 또 다른 작가 아글라야 베테라니(Aglaja Veteranyi)의 글을 불러낸다. ‘sent in spun found’는 시각 정보의 상실을 그대로 드러내며 관객이 이미 익숙해진 지각 방식을 재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만든다. 그러나 하나의 인식 통로가 닫히면 다른 통로가 열린다. 이를 통해 관객은 경험의 또 다른 층위로 건너가게 된다. 이는 한때 허지은의 가족이 속하고자 했던 곳이자 그가 태어난 곳, 오늘의 허지은과 차연서가 경계 사이에서 진동하며 이해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와 닮아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