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내면의 티끌 들여다보는… 기획전 ‘지하실의 먼지’

  • 김현 기자

입력 : 2025.10.22 10:13

작가 송승은·임소담·이연숙·차혜림 4인
평면 18점과 입체 19점 총 37점의 작품

송승은, 파랑새의 조언, 2025, 캔버스에 유채, 227.3x181.8cm. /일우스페이스
 
송승은·임소담·이연숙·차혜림 기획전 ‘지하실의 먼지’가 10월 30일부터 11월 28일까지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린다. 네 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무의식적 기억을 산발적 이미지로 다시 불러내는 조형 실험들을 조명한다. 전시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퇴적된 기억의 형사화를 ‘지하실’과 ‘먼지’라는 두 개의 이접으로 제시하며,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무의식의 문을 열어본다.
 
이연숙,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021, 혼합매체, 퍼포먼스, 가변설치. /대안공간루프
 
‘지하실’은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을 단초로 삼는다. 집의 가장 낮은 층위에 자리한 지하실은 자아의 심연과 맞닿은 곳으로, 억압된 정서와 태곳적 몽상이 잠복하는 장소로 상징된다. 한편 ‘먼지’는 게오르크 칸토어의 수학적 개념에서 차용된 비연속적 집합의 은유로, 이번 전시에서는 결코 하나의 전체로 수렴되지 않는 기억의 파편들을 의미한다. 이 두 개념이 포개지는 지점에서 ‘지하실의 먼지’는 잊힌 정서와 순간들이 다시금 피어오르고, 그것들이 새로운 관계망 속에서 재배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관람자는 완결되지 않은 서사와 파편화된 이미지 사이를 거닐며, 4인의 기억이 먼지처럼 비산하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임소담, 높은 산, 2018, 캔버스에 유채, 192×145cm. /일우스페이스
 
참여 작가 네 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 안의 지하실에 잠들어 있던 먼지를 호출한다. 송승은은 삶의 미시적 기억을 느슨하게 엮어 시간과 존재의 층위가 엇갈리는 그림을 구성하고, 임소담은 기억을 경유한 감각의 파편이 물질과 신체를 따라 미끄러지도록 하여 출처를 알 수 없는 평면과 조각을 만든다. 이연숙은 인간과 비인간이 공유하는 특정한 장소와 기억을 매개하는 설치와 퍼포먼스 영상을 선보이며, 땅과 시간의 거대함을 불러낸다. 차혜림은 자전적 서사와 타자의 존재를 뒤섞어 완결을 유예한 장면을 구성함으로써, 개인과 전체를 연결하는 매개자로 존재한다.
 
차혜림, 이터널 리턴_블랙, 2024, 혼합매체, 가변크기. /피비갤러리
 
‘지하실의 먼지’는 무의식의 소환을 통해 기억과 감각을 해방하는 전지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잔상들이 다시 빛으로 떠오를 때, 망실의 기억에 저장된 상상의 잔여는 새로운 이미지로 변모한다. 이러한 전환의 순간은 창작자와 관람자 모두에게 매혹적 사건으로 각인된다. 자아의 깊숙한 층위에 저장된 기억을 포착하려는 창작자의 시도는 예술이 작동하는 근원적 이유이자, 그로부터 파생된 이미지는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과 호흡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인간의 내면에 퇴적된 기억들이 예술의 언어로 해방시키며, ‘역사가 될 수 없는 이들이 몽상가가 되어 유실된 기억의 조각을 꿰어낸다’는 문장을 현실의 공간 속에 구현한다. 이로 인해 주체와 타자 모두에게 내부의 먼지를 조용히 들여다보게 하며, 그것이 드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부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