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9.16 13:31
●전시명: 'Seeing Things'
●기간: 9. 24 ─ 11. 7
●장소: 피비갤러리(북촌로 125-6)


피비갤러리는 9월 24일부터 11월 7일까지 릴리안 토마스코의 개인전 《Seeing Things》를 개최한다. 릴리안 토마스코(Liliane Tomasko, b. 1967)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스위스 출신 작가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그녀의 추상 회화는 독특하고 대담한 색채와 유영하듯 흐르는 곡선의 붓질로 구성되어있으며, 시각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와 촉감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20여년 이상 꿈과 무의식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해왔다. 이번전시는 국내에 처음으로 열리는 토마스코의 개인전으로, 2025년의 신작 시리즈 ‘Seeing Things’를 통해 그녀가 강렬한 색채와 생동감 넘치는 붓질로 그려온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선보이고자 한다.
작가는 정신에 대한 탐구를 사적인 공간인 가정에서 시작했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토마스코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근접 촬영한 일상적인 사물들, 예를 들어 사용한 흔적이 남은 침구, 옷, 커튼 등을 바탕으로 작업했다. 특히 정돈되지 않는 침대라는 모티프는 그녀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침대는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감정들과 꿈이라는 내면 세계를 상징하는 물체다. 이처럼 작가의 접근 방식은 물리적 영역에 기반하나 궁극적으로는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이다. 토마스코는 천의 주름과 굴곡의 질감에서 은유적 의미를 포착하여, 점차 이를 중심으로 하는 추상적 형태로 이행했다.

최근의 작업에서 작가는 정신의 내면을 더욱 직관적으로 탐색한다. 이전의 사진 기반 작업과는 달리, 추상 아크릴 회화는 강렬한 색과 빛, 그림자를 통해 무의식의 층위에 접근한다. 작가는 구겨진 천이 만든 선을 따라 아크릴과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해 붓질을 쌓아가며, 최종적으로는 원래의 형상이 지워지고 추상적인 선과 형태가 남는 방식을 선택했다. 토마스코는 익숙한 환경을 활력있고 몽환적인 것으로 표상하면서도, 동시에 의식 아래 잠재된 깊은 감정과 욕망, 두려움의 영역을 회화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행동,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다른 어떤 것, 즉 ‘어두운 물질’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매일 밤 우리는 그 속으로 잠기고 그것과 연결될 기회를 얻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존재하면서도 명명하거나 소유하거나, 공동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언제나 벗어납니다.”

이러한 토마스코의 작품은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현상학을 통해 해석할 수 있다. 메를로퐁티는 추상회화가 재현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즉, 시각이 단순히 외부 세계를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살아있는 몸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는 신체적 경험이라는 것이다. 꿈과 무의식을 추상과 감각의 층위에서 탐구하는 토마스코의 회화는 이러한 사유와 맞닿아있다. 명료함과 흐릿함 사이를 넘나드는 그녀의 작품은 우리가 의식에 도달하는 과정 속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창과도 같다. 피비갤러리는 이러한 탐구의 연장선에서, 토마스코가 20년간 이어온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시각적 사유를 집약해 선보이고자 한다. 관객은 화면 속 색채와 형태의 흐름을 따라가며, 저 너머의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함께 탐구하게 될 것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