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9.03 17:57
프리즈 서울 4년 차, 아시아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
아시아 갤러리의 재발견
6일까지 삼성동 코엑스




프리즈(FRIEZE) 서울 부스에는 천장이 있다. 반투명한 천으로 천장을 덮고 골조를 설치해 가벽에만 조명을 매다는 것이 아닌, 천장 어디서든 조명을 달아 작품을 비출 수 있도록 했다. 프리즈가 열린 삼성동 코엑스는 컨벤션센터 특성상 넓은 공간과 함께 높은 층고가 장점이지만, 얼핏 창고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프리즈는 부스 시설에 신경을 쓴 덕분에 더욱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사전 기자간담회에서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 패트릭 리(Patrick Lee)는 “올해로 4회를 맞는 프리즈 서울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미술계에서 서울이 문화적 중심지로 자리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이번 페어는 아시아 전역에서 활동하는 갤러리의 참여가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국제적인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창작 커뮤니티의 저력과 이곳에서 이어지는 의미있는 교류를 함께 할 수 있어 뜻깊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해외 갤러리의 비중이 줄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갤러리의 비중이 늘었다. 주변에서는 “‘네임드 갤러리’가 불참해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 않았다. 3일, 국내외 정상급 120여개 갤러리가 참여한 프리즈에서는 타데우스 로팍의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대작은 10미터 밖에서도 시선을 끌었고, 가고시안에 내걸린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의 대작 ‘A Picture of the Blessed Lion Who Nestles with the Secrets of Death and Life’(2014)는 여러 겹의 채색을 덧입히고 갈아내기를 반복하는 ‘케즈리(kezuri)’ 기법을 활용한 가라지시(karajishi, 중국사자) 신화를 정교하게 표현해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밖에도 국제갤러리는 하종현·박서보·양혜규·강서경·장파·갈라 포라스-김(Gala Porras-Kim) 등을 선보였고, 글래드스톤은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살보(Salvo) 등 세계적인 작가를 한데 모았다.
함께 열린 키아프(Kiaf)의 약진도 돋보였지만, ‘프리즈는 프리즈’였다. 이날 만난 갤러리 관계자는 “확실히 예년에 비해 관람객이 늘었다. 이미 판매된 작품도 있고, 활기찬 분위기가 어느정도는 돌아온 듯하다”라고 밝혔다.



이번 프리즈는 아시아 갤러리의 재발견이었다. 상하이의 안테나 스페이스(Antenna Space), 베트남의 갤러리 퀸(Galerie Quynh), 홍콩의 키앙 말링게(Kiang Malingue), 싱가폴의 에스티피아이(STPI), 일본의 타케 니나가와 (Take Ninagawa), 타카 이시이 갤러리(Taka Ishii Gallery), 타로 나수(Taro Nasu), 토미오코아먀 (Tomio Koyama), 필리핀 마닐라의 더 드로잉 룸(The Drawing Room)이 그간 세계 미술의 주류를 이루는 서양 갤러리에서는 보지 못했던 내러티브와 기획력으로 관람객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홍콩의 드 사르트(de Sarthe)는 마크투(MAK2)·미첼 찬(Mitchell F.Chan)·러브-러브(Lov-Lov)·종 웨이(Zhong Wei)의 작품을 소개했다. 드 사르트의 네 작가는 인터넷 디지털 환경과 현실이 혼재하는 현상에 주목해 자신만의 언어로 개성강한 작품을 선보였다. 아시아 예술과 디지털 디아스포라를 표현하는 네 작가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스타일의 키치하면서도 발랄한, 그러나 묵직한 메시지를 작품에 담았다. 이렇듯, 프리즈는 다양한 국가의 갤러리를 통해 한국 안에서의 시선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시각에서 미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프리즈 기간 동안 서울 전역에서는 프리즈 라이브(Frieze Live),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Frieze Seoul Artist Award), 프리즈 필름(Frieze Film), 프리즈 뮤직(Frieze Music), 토크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협업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을지로, 한남, 청담, 삼청동 등 서울의 주요 갤러리 밀집 지역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갤러리들이 문을 여는 ‘프리즈 나잇(Frieze Night)’이 열리며, 도시 전체가 예술로 물드는 한 주, ‘프리즈 위크(Frieze Week)’가 시작된다. 이와 더불어, 서울을 포함한 국내 주요 미술관에서도 수준 높은 전시가 이어진다. 프리즈 밖에서도 프리즈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프리즈 페어의 총괄 디렉터 크리스텔 샤데(Kristell Chadé)는 “프리즈 서울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미술계에서 예술적 목소리를 확장하는 데 핵심적인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프리즈의 글로벌 캘린더 안에서도 서울은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프리즈가 이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근 엑스포 시카고(EXPO Chicago)에서 키아프와 함께한 공동 프로그램은 서울의 문화 생태계가 어떻게 국제적인 연대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으며, 앞으로도 프리즈는 서울과 아시아 전역의 예술 커뮤니티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프리즈는 6일까지 열린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