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8.29 20:23
9월 2일 광화문 ACS(아트조선스페이스)서 개막
절제된 붓질과 템페라 기법으로 기억 속 풍경 형상화하는 송현숙
미니멀한 구조로 의미 해체하고 공간 재구성하는 테아 조르자제
9월 30일까지


나무 기둥을 세운다. 비단 리본을 묶는다. 천을 두른다. 다시. 비단 리본을 묶는다. 또. 비단 리본을 묶는다. 공중에서 비단결이 흩날린다. 캔버스 위로 고향의 풍경이 밀려든다. 송현숙의 어린 시절 기억이 스며든다.
금속판을 접는다. 세운다. 다시 예리하게 접는다. 더욱 예리하게 접는다. 유리 패널 위에 금속판을 올린다. 빛이 표면 위로 흐른다. 막대를 굽힌다. 오브제가 공간을 점유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테아 조르자제의 공간이 피어난다.
9월 2일부터 9월 30일까지 ACS(아트조선스페이스)와 스푸르스 마거스(Sprüth Magers)와 공동 기획한 송현숙(73)·테아 조르자제(Thea Djordjadze·54) 2인전 ‘others vs others’가 서울 광화문 ACS(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송현숙은 절제된 붓질과 반투명한 템페라 기법을 통해 기억과 내면을 응축된 형상으로 그려낸다. 1952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1972년 파독 간호사로 서독에 이주한 뒤,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수학하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송현숙은 나무 발판 위에서 바닥에 캔버스를 두고, 호흡과 명상 속에서 단 네다섯 번의 수행적 붓질로 화면을 완성한다. 이 수행적 행위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며 전통적으로 불투명하게 쓰이던 템페라를 반투명하고 광폭의 붓질로 구현해 물감층의 깊이와 여백 속에서 강렬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작업의 주요 모티프는 항아리, 나무 기둥, 비단 리본, 직조된 천 등으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풍경을 가시화한다. 2023년에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프리즈 마스터스(Frieze Masters)의 공식 책자 표지에 송현숙의 작품이 선정되며 국제 무대에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하기도 했다.

테아 조르자제는 구조와 오브제를 결합해 고정된 의미를 해체하고 공간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설치 작업을 이어왔다. 조지아에서 태어나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조르자제는 전시 공간의 구체적 조건에 반응하며 제작된 구조물과 발견된 오브제를 결합해 작품을 완성한다. 목재, 금속, 종이 마셰, 천, 스펀지, 채색된 유리 패널 등 폭넓은 소재를 활용한다. 조르자제의 작품은 미니멀한 구조 속에서 재료의 미학을 극대화하며, 전시 공간과 상호작용해 관람객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다. 조르자제는 최근 로마 빌라 마시모에서 진행되는 2026년 장학 프로그램에 여덟 명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각 작가의 정수를 담은 작품을 선별해 관람객을 맞는다. 송현숙 작품의 이름은 ‘29 Brushstrokes’처럼 붓질을 의미하는 ‘Brushstrokes’ 앞에 숫자가 붙는 식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작가가 작업을 하며 행한 붓질의 횟수를 의미한다. 다른 출품작 ‘11 Brushstrokes’에서도 마찬가지다. ‘11 Brushstrokes’는 11번의 붓질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최근작에 이르는 주요작 7점을 선보이며, 10호에서 150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로 작가의 예술적 궤적과 템페라 기법의 정수를 한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다.
템페라는 물감에 달갈 노른자 등의 보조제를 섞어 사용하는 고대 회화 기법 중 하나다. 이는 고전적이면서도 깊이있는 색의 표현을 가능케 한다. 템페라는 빠르게 건조된다. 덧칠하거나 지울 수 없고 순식간에 완결시켜야 하기 때문에 섬세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1920년대 조지아 아방가르드 미술의 요소를 차용해 온 테아 조르자제 역시 2010년에 작업한 작품 ‘Trying to balance on one hand, do not forget the center’부터 올해 작업한 신작 ‘Untitled’까지 다양한 오브제로 개념미술의 경계를 오가는 작품 14점이 내걸린다.



이번 전시 제목 ‘others vs others’은 테아 조르자제의 동명 작품에서 따왔다. 조르자제는 입체 작품을 통해 전시 공간에 대한 탐구를 거듭하고 송현숙은 평면 회화 작업으로 시공간을 오가는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선사한다. 매체와 성질이 대조적인 두 작품이 한 공간에 공존하며 오늘날 동시대 미술이 지향하는 대화와 확장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이번 전시는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한 스푸르스 마거스와 ACS(아트조선스페이스)가 함께하는 두 번째 기획 전시다. 첫 번째 협업은 지난해 9월 프리즈 기간에 열린 카렌 킬림닉(Karen Kilimnik, b.1955) 개인전이다. 1983년 개관한 스푸르스 마거스는 제니 홀저, 바바라 크루거, 신디 셔먼 등 혁신적인 여성 작가들과 협업하며 현대 미술의 최전선을 개척해 온 세계적인 갤러리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료. 화~토 10:00~18:00. (02)736-7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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