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하·서민우·이용재 'Don’t be Hasty (서두르지 마시오)'

  • 여혜주 에디터

입력 : 2025.08.14 12:34

●전시명: 'Don’t be Hasty (서두르지 마시오)'
●기간: 8. 8 ─ 9. 6
●장소: 페리지갤러리(반포대로 18)
'Don’t be Hasty (서두르지 마시오)'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Don’t be Hasty (서두르지 마시오)'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페리지갤러리는 35세 이하 젊은 작가에 주목하는 기획전 프로그램 ‘Perigee Unfold’의 2025년 전시로 김상하, 서민우, 이용재 작가가 참여하는 《Don’t Be Hasty(서두르지 마시오)》를 개최한다.
 
《Don't Be Hasty》는 역행하는 사회와 반복되는 과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동시대 작가들이 다루는 '시간성'에 주목한다. 김상하, 서민우, 이용재는 과거를 현행시키거나(actualized) 현재를 유보함으로써 다층적인 시제의 작업을 하나의 ‘사건’으로 제시해왔다. 시간은 세 작가의 작업을 구성하는 공통된 축으로 작용하지만, 이를 감각하고 구현하는 방식은 서로 다른 매체 – 영상, 소리-조각, 회화 – 를 경유한다. 한편으로 각자가 담지하는 시간성은 매체가 작동하는 내재적인 특성으로 수렴되는 동시에, 그로부터 발현되는 결과값에 다시금 영향을 미치는 변증법적 구조를 이룬다. 전시는 이들이 다루는 매체의 고유성이 실재의 등가물로서 시간이라는 개념에 천착하는 대신, 그 너머로 추동하는 비스듬함(obliquité)을 지향한다는 점을 조명한다. 
 
'Don’t be Hasty (서두르지 마시오)'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김상하는 불가역적인 과거가 현재에 잔존하는 양상을 사진, 영상, 출판, 설치 등 매체를 통해 능동적으로 전유해왔다. 〈그 그림자를 죽이거나, 혹은 따르거나〉(2025)에서, 작가는 영화 〈아리랑〉(1926)을 둘러싼 소문을 따라간다. 〈아리랑〉은 당시 큰 성공을 거둔 민족 영화로 회자되지만, 원본 필름이 소실되어 현재는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모순을 지닌다. 영상에서 목소리가 거세된 무성영화 속 배우, 영화 속 살인 액션을 반복적으로 따라 하는 퍼포머, 두 얼굴 위로 드리우는 말(소리)과 글(자막)은 여기 저기 산포되어 있던 소문을 한곳에 투사된 여러 겹의 레이어로 엮어낸다.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의 형식을 통해 김상하가 보여주는 것은 영화의 실체보다는 또 다른 소문-이야기가 될 기제에 가깝다. 한편 작가는 〈아리랑〉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공모하기 위한 배우 중 한 명으로 관객을 전치시킨다. 이는 영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존재감 있는 등장인물인 거울 이미지로 드러난다. 관객과 배우 사이의 관계는 영화가 상영되던 극장 안 변사와 순사의 대립, 그리고 피식민지 민족이 내재화한 정체성의 분열과 맞물리며 복층적 구조로 확장된다.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가 서로를 의식하는 크고 작은 맥락에서, 영상을 관통하는 살인 액션과 따라 하기의 전략이 패배자적 몸짓으로 읽히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서민우는 음악과 소음, 조각의 요소를 기호화한 소리-조각을 만들어왔다. 〈해안선을 위한 사행 운동〉(2025)은 파헤치고자 할수록 멀어지고, 지워내려 할수록 깊게 얽히는 시간에 관한 사유에서 시작되었다. 작가는 녹음된 소리와 전자음을 파편화한 뒤 다시 재배치한 소리-조각을 전시장에 구현한다. 다층화된 시간의 소리는 일종의 주의 분산을 일으킨다. 이때 외재적으로 분산된 주의는 곧 다른 쪽으로 열린 집중으로 흘러든다. 수평성을 지향하며 해체했던 소리들의 위계 구조는, 복수의 지속들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의 매듭이 된다. 이를 유도하는 장치의 한편에는 시각적 대상 없이 청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리의 잠재적 차원이, 다른 한편에는 조형적 배치와 외연을 통해 공간을 구획하는 조각의 현실적 차원이 자리한다. 서민우는 서로 반대급부의 성질을 지닌 두 경험이 소리-조각을 통해 유기적으로 맺는 구조를 역동적인 기호의 개념으로 수렴시킨다. 여기서 관객은 의미의 고착과 유동 사이를, 몰입의 순간과 분산의 지속 사이를 오간다. 한편, 5대의 스피커를 뱀의 허물과 닮은 모습으로 감싸고 있는 라텍스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식해갈 것이다. 특정한 시간성을 지닌 라텍스의 물질적 저항은 일말의 지향에서도 벗어난 희미한 이미지로 남는다.
 
 
이용재는 리서치에 기반하여 그림을 재현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불가지론에 이른 시간의 본질 앞에, 시간이 되기를 자처한 그림들을 선보인다. 이러한 접근은 시간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독특한 방법론으로 구현된다. 〈itself〉(2025)는 〈세례자 요한(Saint Jean Baptiste)〉(1517/1520)이 복원되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 낡아 버린 모습으로 재현한 그림이다. 작가는 〈itself〉 속 손가락을 그리지 않기 위해 앞서 〈dummies_1〉(2023)을 그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더하여 결정론적으로 사고하는 습관 또한 그림이라는 매체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다시 살피면, 이는 메타적 그림의 내면에서 과거가 현재에 배어든 결과로 보인다. 조금씩 다른 톤의 초록색으로 빛나는 〈chroma-key〉(2025), 〈background independent〉가 ‘배경’으로서의 시간을 정의하는 방식의 작업이라면, 〈a clown〉은 전경에 있어야 할 인물의 텅 빈 껍데기를 가리킨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무언가를 지시할 때에만 가치를 얻는 이 그림들은 상호 구성적인 관계 내에서 자리를 바꿔가며 역학을 이룬다. 이용재는 이처럼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여러 시간을 유영하는 자유로운 태도를 보이다가도, 완성한 후에는 결정론적 사고를 구사한다. 그림은 두 태도 간의 접점을 도약 삼아 결핍을 통한 기호로 기능한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