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하인두예술상 박종규 수상 기념전, 비트의 유령들 Spectres of the Bitstream

입력 : 2025.06.12 16:19 | 수정 : 2025.06.12 17:16

참여  작가     박종규 J.PARK
기       간      25. 06. 20 (금) ─ 07.19 (토)
주       최      ART CHOSUN, TV CHOSUN
기       획      ACS(아트조선스페이스)
장       소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21길 30
                  화 ― 토, 오전10시 ― 오후6시
                  일 ― 월 및 공휴일 휴관
 
 
디지털적 회화의 공(空), 그리고 점의 우주
​-박종규의 정보적 사유와 존재의 시학-
글_김윤섭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 미술사 박사)​
 
1. 디지털 너머로 피어난 존재론적 회화​
‘회화는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은 디지털 시대에 더는 자극적이지 않다. 이제 중요한 것은 회화의 생존이 아니라, 회화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박종규의 작업은 이러한 동시대적 질문에 깊은 통찰로 응답한다. 그는 회화를 하나의 기술적 표면이 아닌, 정보와 감각, 기억과 시간성의 총체로 받아들이며, ‘회화적인 것’의 본질을 정보화 사회의 시공간 구조 속에서 다시 묻는다.
박종규의 화면은 일견 전자적 오류, 혹은 코드의 파편처럼 보이지만 그 근원은 오히려 철학적이다. 점과 선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그의 작업은 동양철학의 고유한 미학, 특히 불교의 인드라망 사상과 공(空)의 개념과 깊은 연관성을 보여준다. 인드라망은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우주의 구조 속에서 모든 존재가 상호의존하고 반영된다는 원리이다. 박종규의 픽셀 구조는 바로 이 ‘상호적 존재론’을 시각화하는 방법이며, 화면을 구성하는 미시적 단위들은 개별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전체를 형성한다.
적어도 박종규에게 있어 ‘공(空)’은 단순한 비어있음이 아니다. 오히려 가능성과 관계의 장(場)이며, 그는 이 공백을 통해 ‘감각적 여백의 미’를 구현한다. 작업의 제작 과정에선 반복적인 레이어링(layering)―중첩된 층위― 구조, 붙이고 떼어내는 시트지의 물리적 조작, 수십 차례의 아크릴 채색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의식적이고 의례적인 행위’로 전환된 것이다. 이 과정은 마치 불경이나 성경을 베껴 쓰듯, 또는 서예의 한 획씩을 새기듯 정제된 집중의 산물이다.
박종규는 회화적 행위란 단지 ‘이미지 생산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시간과 기억, 감각이 체류하는 ‘데이터적 용기(容器)’ 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러한 사유는 ‘정보예술’처럼 즉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사유의 여백과 감정의 느린 호흡을 남기는 데서 차별성을 드러낸다. 이 점에서 그는 포스트-미디어 시대 이후에도 여전히 회화라는 형식을 고수하며, 그 내부에 감각적 사유를 삽입하는 작가적 태도를 보여줄 것이다.
 
2. 수직의 시간성에 올린 감각적 파장​
박종규의 작업은 전통적인 회화의 도구나 물질성에서 탈각한다. 물감 대신 데이터와 빛, 선, 패턴이 주재료가 되며, 이것은 ‘비물질적 회화성’이라는 새로운 장르로서 기능한다. 동시에 박종규는 회화적 리듬과 조형의 구조성을 해체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지각의 교란’을 통해 관람자가 다시 회화를 감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재배열한다. 이는 단순한 시각의 차원을 넘어서, 청각적 리듬, 촉각적 질감, 심지어 시간의 흐름까지 내포된 ‘감각의 총체화된 회화’라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작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수직적 시간(Vertical Time)』이라는 제목은 박종규 회화의 시간성을 상징적로 드러낸다. 이 개념은 시간의 흐름을 수평적 연속성으로 보기보다, 층층이 쌓여온 존재의 깊이로 이해하려는 철학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마치 디지털 데이터가 반복 저장되고 필터링되며 누적되는 과정처럼, 작가의 화면 역시 수직적 레이어들이 포개지며 구성된다. 이는 동시대 삶의 축적된 기억과 흔적,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이행해온 미술사적 시간성까지 품어낸다. 각 선은 흔적이며, 점은 기록이고, 그 집합이 바로 ‘지금도 진행 중인 시간’의 현현이다.
가령 ‘수직적 시간’ 시리즈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는 정제된 도트 패턴이 일정한 수직 리듬을 이루며, 화면 전체를 관통하는 유기적 구조를 형성한다. 금속성의 얇은 빛이 스며드는 바탕 위로, 반복적인 데이터 라인이 잔잔한 진동처럼 이어지며, 화면 전체가 하나의 ‘파장’처럼 감지된다. 관람자는 그 앞에서 기계적인 균형에 놀라다가, 이내 감각의 깊이를 자극하는 패턴에 빠져든다. 이는 단순한 시각 정보의 나열이 아닌, 정서의 리듬이자 기억의 재구성이다. 하나의 그림이 아닌, 일종의 ‘정보적 풍경’이자, 무수한 점과 선으로 직조된 ‘감각의 우주’라 하겠다.
그의 작업은 전시장 벽에 걸린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감각의 안테나처럼 작동한다. 멀리서 볼 때는 하나의 질서로, 가까이 들여다보면 픽셀 구조와 색면의 진동이 오히려 시각적 어지러움을 불러온다. 이 지점에서 관람자는 단지 ‘본다’기보다 ‘탐색’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이미지가 과잉되었지만 감각은 고립된 시대, 즉 AI가 감각을 대체하는 시대에 오히려 인간적인 ‘불완전한 시각’의 매력을 복원하는 박종규만의 회화적 방식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박종규는 이와 같은 회화적 실험을 통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복합’을 제안한다.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역에 까지 침투하고, 디지털 이미지가 현실을 재편하는 시대에, 그는 오히려 기계적 반복 속에서 인간적인 흔적을 되살려낸다. 이것은 데이터와 감정, 정보와 기억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하나의 미학적 모델이기도 하다. 작가는 반복된 이미지 위에 ‘손맛의 노동’을 덧입히고, 알고리즘적 질서 위에 ‘감각적 결정(結晶)’을 더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박종규의 회화는 오늘날 더욱 유효하게 다가온다.
 
3. 숭고와 사유, 하인두를 계승하는 신감각​
박종규의 작품 제목들—『Phantom of Time』, 『Beacon Code』, 『Kreuzen』—은 시공의 교차와 항해, 오류의 잔여성과 같은 비물질적 개념을 함축하고 있으며, 회화라는 전통적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적 확장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만의 전시 형식을 통해 감각의 복합적 체험을 유도한다. 평면 회화뿐 아니라 미디어 아트, 설치적 구성까지 병치해, 감상자의 지각을 전방위적으로 자극하며 사유를 확장 시킨다.
박종규는 강조한다. “회화의 숭고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그것을 기계의 언어로, 디지털의 흔적으로 증명하고 싶다.” 이는 고전에서 시작되어 인공지능 시대에 도달한 회화의 미래에 대한 제언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회화가 여전히 질문할 수 있다는 것, 사유의 촉매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감각의 여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아마도 ‘하인두예술상’이 지닌 의미 또한 이번 전시와 공명할 것이다. 전통 회화의 정신성을 현대미술의 감각으로 계승한 하인두의 태도는, 박종규의 디지털적 실험과 맞닿아 있다. 형식보다는 사유, 재현보다는 감각, 표현보다는 존재의 밀도를 중시하는 태도는 두 작가가 공유한 지점이다. 박종규는 하인두가 열었던 질문을 다시, 그러나 전혀 다른 언어로 답하고 있다. 하인두가 물감의 물성을 통해 감성의 진동을 표현했다면, 박종규는 데이터의 질서를 통해 감각의 파장을 구성한다. 바로 이러한 차이 속 유사성이 이번 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또한 박종규는 국내외 다양한 현대미술 플랫폼에서 실험성과 감각성의 균형을 인정받으며, 동시대 회화의 새로운 문법을 제안한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 전시를 비롯해, 디지털과 감각을 결합하는 실험은 단지 기술을 넘어 철학적 깊이로 평가받고 있다. 더불어 박종규의 회화는 동시대 미술이 지닌 불확정성과 기술의 가속 속에서, 여전히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보기 드문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거대한 미디어의 파장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부표처럼, 우리 앞에 다가선다.
결국 박종규의 회화는 단지 새로운 기술을 수용한 시도가 아니라, 동시대 회화가 지닌 감각적·존재론적 가능성을 끈질기게 탐색해 온 작가적 응답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계성과 인간성, 질서와 우연이 교차하는 그의 화면은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 이상의 깊이를 품고 있다. 반복과 레이어, 점과 파장으로 이어지는 그의 조형 언어는 우리가 마주한 세계와 감각을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이번 ‘하인두예술상’ 수상 기념전은 박종규가 회화의 경계를 확장하며, 우리에게 던지는 하나의 응답이자 제안이다. 디지털 시대의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정직한 질문과 가장 섬세한 해석이 담겨 있다.
 
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 2024, Acrylic paint on canvas, 200×150cm
 

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 2024, Acrylic paint on canvas, 200×150cm

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 2024, Acrylic paint on canvas, 200×150cm
 

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 2025, Acrylic paint on canvas, 200×150cm

 
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 2025, Acrylic paint on canvas, 200×150cm
 

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 2023, Acrylic paint on canvas, 130×91cm
 

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 2025, Acrylic paint on canvas, 162.2×130.3 cm
 

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 2025, Acrylic paint on canvas, 162.2×130.3 cm
 

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 2024, Acrylic paint on canvas, 110×91cm
 

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 2024, Acrylic paint on canvas, 90.9×72.7cm
 
 
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 2024, Acrylic paint on canvas, 90.9×7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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