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선필 '음울한 귤'

  • 박민선 에디터

입력 : 2025.05.30 15:26

●전시명: '음울한 귤'
●기간: 5. 27 ─ 7. 12
●장소: 페리지갤러리(반포대로 18)
'음울한 귤'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특촬(特撮)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돈선필의 이번 전시는 《음울한 귤》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지닌다. 이는 우리말로 번역된 일본 만화에 등장했던 가상의 책 이름으로, 원서의 언어 유희적 표현을 알아차리지 못한 번역가의 오역으로 나타났다. 이후 개정판에서는 각주로 수정하여 번역되었지만, 이미 뭔가 어색한 단어는 존재하게 되었다. 작가는 이와 같은 번역의 오류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그렇다면 오역과 특촬은 이번 전시에서 어떻게 연결될까? 특촬은 아직 도래하지 않거나 이미 사라진 것 모두를 포함하여, 가상의 시공간을 현실로 재현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결합된 과정이다. 여기서 작가가 주목하는 지점은 영상 촬영 이후 그것이 실체를 가진 존재들로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가면, 슈트, 괴수의 몸체, 도심 공간을 표현한 디오라마 세트 등은 필요와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조건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만들어지고, 촬영이 끝난 뒤에도 현실에 남겨져 기묘한 형상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음울한 귤'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전시장 입구에 '끽태점(喫態店)'이라 쓰인 포렴(布簾)을 지나면, 특촬 작업실이나 수장고처럼 꾸며진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작가가 수집하고, 제작하며 써온 다양한 조각, 책, 영상, 글들이 놓여 있다. 과거 전시 제목이었던 '사물의 모습과 형태를 즐길 수 있는 상점'을 의미하는 《끽태점》의 요소를 사용한 점으로 미루어,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업 여정에서 축적된 총체적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돈선필의 작업은 자신의 삶과 밀착된 다양한 관심사 – 망가와 아니메, 피규어, 특촬 – 에 기반하고 있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전문가적 영역까지 확장된 작가의 활동을 살펴보면,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의 고유한 언어를 해석하여 들려주는 통역가 같은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이번 도록에 실린 글 「특촬_재현을 위해 가공한 사물」은 이런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는 아마도 그가 다루는 독특한 문화가 모두가 즐기는 대상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관객들이 각기 다른 거리를 유지하며 이해하게 되는 차이를 의식하게 된다. 번역에 관한 작가의 이야기처럼, 각자의 상황이나 이해도에 따라 편견, 오해, 왜곡의 단계를 거쳐 원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앎이 생성된다. 
 
한편 전시는 개인의 삶, 취미, 일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이 조각에서 글로, 영상으로, 다시 사물로 퍼져나가고 돌아오는 순환 구조를 촘촘하게 펼쳐 보인다. 작가는 텍스트와 조형적 형태 사이의 간극, 물성이 가진 외적 변화와 표면이 균열하는 순간, 그리고 새로운 것들이 솟아오르는 과정을 억지로 봉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정확하게 헤아릴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하는 과정에서 발생해 새롭게 나타나는 것들로부터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한다. 피규어에 대한 연구는 특촬의 구조와 성격을 함축하는 좋은 예시다. 작가는 피규어가 가진 정확한 모습의 재현뿐 아니라, 현실적 비율과 균형에서 벗어난 요소들이 혼재된 모습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이러한 접근은 어떤 이에게는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괴상하고 기묘한 혼합물로 다르게 읽힌다. 작가는 특촬이라는 호기심의 대상을 따라가며, 과장이나 누락 없이 자신이 인식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펼쳐낸다. 이는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느끼게 하며, 아직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무언가를 표현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음울한 귤'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돈선필이 시간성을 의식하는 이유는 작업이 경험의 축적을 통해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마주하는 순간의 인상과 감각은 자극적이지만, 무언가를 가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계속 바라볼 때,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초기의 인상과는 다른 차이를 느끼게 된다. 작가는 이런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을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시작점으로 인식한다. 
 
전시의 출발점인 번역으로 돌아와서, 돈선필에게 오역은 색다른 표현으로 보이지만, 사실 불충실한 정보이다. 그러나 사실에 충실한 번역 또한 완벽할 수 없는 실패한 번역이 된다. 이에 작가는 그 편차가 가져오는 마찰을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내재한 토대로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Re-Reset>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속적인 리셋 행위는 반복되는 순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같을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특촬 역시 가상과 실재의 표면이 분리되지 않는 양가적 시공간을 끊임없이 열어 보인다. 그 역사 속에서 축적된 시간은 흔적으로 남아 독특한 형태를 보여준다. 
 
'음울한 귤'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음울한 귤》 은 하나의 원형에서 새롭게 나타나 여러 갈래로 이어지는 길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이는 작가의 완결된 판단이나 확정된 작업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특정 분위기를 통해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감정들, 그리고 무언가를 가로지른 후에야 도달할 수 있는 가상과 실재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길을 드러낸다. 전시에서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요소에 이끌릴 것이다. 우리는 여러 지점 중 무언가를 선택하게 되고, 그 뒤에 찾아오는 오차, 오류, 그리고 불가피한 오해를 당연한 절차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새롭게 마련된 토대 속에서 다층적으로 쌓여 가는 시공간을 재설정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창조 가능성을 여는 길이 될 것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