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발견한 화면 속 숨은 감각… 알렉스 카버 ‘승화’

  • 김현 기자

입력 : 2025.04.30 16:15

6월 14일까지 신사동 화이트 큐브 서울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알렉스 카버 작가의 모습. /아트조선
 
“회화는 감각적 피부다.”
 
전시장에 이글거리는 화염이 가득하다. 괴로운 얼굴을 한 화면 속 인물은 전시장 입구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그들의 피부 아래 알 수 없는 설계도면이 비쳐보인다. 활활 타오르는 이미지 속 창조적 파괴의 가능성이 열린다.
 
‘승화(Effigy)’전시 전경. /화이트 큐브 서울
‘승화(Effigy)’전시 전경. /화이트 큐브 서울
 
보이시와 뉴욕을 오가며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알렉스 카버(Alex Carver)의 개인전 ‘승화(Effigy)’가 6월 14일까지 신사동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인사이드 더 화이트 큐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현대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화이트 큐브에서 전시 이력이 없는 비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다층적 층위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새로운 예술적 담론을 제시한다. 알렉스 카버는 1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알렉스 카버가 묘사하는 고통은 작가에게 있어 예술적 관습을 해체하고 새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다. 전시 제목인 ‘승화(Effigy)’는 초역사적인 사회적, 정치적 불안에 기반을 둔 고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한다.
 
작품 디테일 컷. /아트조선
Hollow Fire, 2025, oil on linen, 198.5x198cm. /화이트 큐브 서울
All That Is Solid, 2025 oil on linen, 55x54.5cm. /화이트 큐브 서울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스텐실 스크린, 프로타주, 붓질의 레이어링 등을 활용해 인간의 내면을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화상 피부 의료기기의 설계 도면을 작품에 활용하기도 했다. 전시는 두 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공간은 작가가 ‘지옥(Inferno)’ 혹은 ‘불(Fire)’ 이라 부르는 연작이 전시된다. 이 시리즈는 단테의 14세기 서사시 ‘신곡’의 ‘지옥’ 편에서 영감을 받아, 아홉 개 원을 통과하며 하강하는 여정을 모티브로 삼아 사회적, 정치적, 형이상학적 맥락에서 신체를 고찰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진다.
 
The Devoted, 2025, oil on linen, 198.5x198cm. /화이트 큐브 서울
 
한편, ‘지옥’ 연작은 화상 환자에게 이식할 피부를 넓게 펴기 위해 사용하는 식피 확장기(skin-graft mesher) 도면을 회화의 구성 요소로 차용하며, 피부와 회화의 유사성을 탐구한다. 화면 속 인물들은 불길 속에 뒤엉켜 있으며, 고통과 황홀 사이의 긴장된 감정을 기독교 성화의 구성과 중첩시킨다. 대표작인 ‘승화’(2024)는 작가가 회화를 향한 열망을 종교적 은유로 표현한 작품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끌어들여 ‘지옥’의 현장을 마주하게 한다. 이어지는 작품 ‘무심한 시선’(2024)에서는 수술실 구조를 모티브로 삼아 뒤틀린 인물들과 혼돈의 장면을 회화적으로 담아낸다. 공간의 마지막은 삼면화 구조의 ‘숭배자들’(2025), ‘상변화’(2025), ‘공허한 불꽃’(2025)이 이어지며, 연소하는 인체 형상이 배경 속으로 흩어지듯 사라진다.
 
  • CP